내가 울면 고래도 따라 울어…그 소리를 들으면 너무 슬퍼서, 내 울음이 멎어

손버들 기자
[그림책]내가 울면 고래도 따라 울어…그 소리를 들으면 너무 슬퍼서, 내 울음이 멎어

고래 옷장
박은경 지음·김승연 그림
웅진주니어 | 68쪽 | 1만4000원

때때로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덮쳐,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 어금니를 꽉 문다. ‘참아야 해, 그래야 어른이야.’ 그럼에도 작은 어항 같은 눈물샘은 툭툭 터져버리기 일쑤여서, 스스로를 한심해했다. ‘난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 이 책 <고래 옷장>은 참는 것에 더 익숙한 어른들에게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들려준다.

한 소녀가 테이블에 앉아 유리병에 넣을 편지를 쓰고 있다. 표정이 꽤 심각하다. 그러다 옷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고래 배 속에 있어/ 여기는… 울기 좋은 곳이야.” 식도를 통과해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간 소녀는 오롯이 혼자가 된다. 소화되지 못한 슬픔이 질척이는 곳.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감정의 잔해들 사이를 소녀는 헤맨다. 신고 있는 노란 장화에도 덕지덕지 슬픔이 달라붙는다.

<고래 옷장> 내지 삽화

<고래 옷장> 내지 삽화

“내가 울면 따라서/ 고래도 깊은 소리로 울어 줘/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너무 슬퍼서 울음이 멎어.” 소녀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눈물이 방울방울 흩어지자 커다란 고래도 깊은 소리로 울어 준다. 고래 배 속에서 소녀는 오직 나의 슬픔, 나의 감정, 나의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고래의 울음은 곧 나의 울음이다.

“너도 오고 싶다면/ 옷장 문을 열고 들어오면 돼/ 혹시 장화가 있으면 신고 와/ 오는 길에 웅덩이가 많거든.” 화자였던 소녀는 이제 독자인 ‘너’에게 말을 건다. 슬픔의 한가운데에 닿기까지 수많은 눈물의 웅덩이를 지나게 될 거라고, 솔직한 조언도 건넨다.

“네가 바다처럼 눈물을 쏟아도/ 고래가 등으로 다 뿜어 줄 거야.”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던, 그래서 참아내려고만 했던 자신의 감정과 마주한 뒤, 비로소 소녀는 고래 등의 숨구멍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그토록 소녀를 힘들게 했던 슬픔은 유리병 속에 담긴 채 바다 위를 떠다닌다. 저 넓은 바다는 던져진 슬픔을 삼킨다. 소녀는 분명 전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고래 옷장>은 박은경 작가의 시 ‘울고 싶은 친구에게’의 전문을 텍스트로 실었다. 그림책 치고는 도톰한 두께인데, 정성 들여 그린 그림 덕분에 시의 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김승연 작가는 불 꺼진 방 안에서 홀로 울고 나온 아이가 걸었을 ‘마음의 길’을 그림에 녹였다고 밝혔다. ‘고단한 성장’을 향한 따뜻한 응원이 느껴진다. 슬픔이 들이닥치는 날,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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