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삼킨 섬, 탈출하는 노인…‘지구 반대편 먼나라 이야기일까’ 소름돋는 반전

손버들 기자
[그림책]바다가 삼킨 섬, 탈출하는 노인…‘지구 반대편 먼나라 이야기일까’ 소름돋는 반전

마지막 섬
이지현
창비 | 1만3000원

잔잔하게 물결치는 푸른 바다, 키 큰 나무들로 이뤄진 울창한 숲, 환하게 내리쬐는 태양, 신비하고 사랑스러운 야생 동물들…. 우리가 ‘로망하는’ 파라다이스 같은 섬에 한 노인이 살고 있다. 그는 새소리에 기지개를 켜고, 작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다. 나무 열매를 따서 먹고, 살림살이는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노인은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무해’한 존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잡은 물고기를 나뭇가지에 걸어 말리고 있던, 어제와 같은 평범한 날. 노인은 보았다. 수평선 너머 피어오르는 불길한 연기를. 시커먼 연기는 날이 갈수록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연기의 덩치가 불어날수록 해수면은 높아진다. 검은 연기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바닷물은 넘친다. 발목을 적시던 바닷물은 이내 종아리, 허리, 머리 위까지 차오른다.

노인은 살기 위해 분투한다. 돌을 쌓고, 나무로 지지대를 세워 집을 더 높게 짓는다. 하지만 친구처럼 정다웠던 바다는 거친 파도가 되어 집을 집어삼키고 만다. 섬은 사라졌다. 노인은 작은 배를 타고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가 목숨을 걸고 탈출해 다다른 곳은 아주아주 거대한 공장이다.

<마지막 섬> 본문 이미지.

<마지막 섬> 본문 이미지.

이 책은 글자 하나 없이 오롯이 그림으로 채웠음에도 서사는 자연스럽고 흡입력은 쫄깃하다. 스웨덴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 ‘사일런트 북’ 부문에 전작 <문>이 선정됐던 이지현 작가의 ‘조용한 내공’이 느껴진다. 자연의 생명력과 경쾌함을 색연필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푸른빛, 무채색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색조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를 노련하게 끌고 간다.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환경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는 책은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끝이 난다. 두 얼굴이 그려진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소름이 돋는다.

<마지막 섬>의 모티브가 된 곳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다. 해발 고도가 2~3m에 불과한 이 나라는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100년 안에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삶의 터전을 잃은 폴리네시아 원주민은 ‘기후 난민’이 되었지만 그들을 받아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들에게 ‘나라를 잃는’ 고통을 안긴 가해자는 바로 우리다. ‘편의’라는 이름 속에서 방관해 온 사소한 것들이 지구 반대편 선량한 사람들의 평온한 삶을 빼앗고 있다. 책은 말한다. 가해자인 우리가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이것은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책머리에 쓴 작가의 말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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