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견 곰
벤 퀸 글·조 토드 스탠든 그림·임윤정 옮김
밝은미래 | 160쪽 | 1만8000원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시력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부여된 역할을 할 수 없으므로 장애인을 떠나야 할까.
<안내견 곰>은 그렇게 모진 책이 아니다. ‘곰’이라 이름 붙은 안내견의 혼란한 마음과 아슬아슬한 여행을 따뜻한 시선으로 살핀다. 무엇보다 시력을 잃어 당황하는 곰이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세상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래브라도와 골든레트리버 사이에 태어난 곰은 28세 시각장애인 패트릭의 안내견으로 분양된다. 패트릭은 자판기를 고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미국에는 시각장애인의 생계 보장을 위해 배정된 자판기가 있다고 한다.
패트릭과 곰은 좋은 동반자가 됐지만, 곰의 시력에 이상이 생기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웬만하면 짖지 않도록 훈련된 곰은 갑자기 어둠 속에 휩싸이면서 거세게 짖기 시작한다. 혼란에 빠져 있던 곰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겠다는 라쿤의 꾐에 빠져 집을 떠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곰에게 세상은 새롭고 위험한 곳이다. 숲에 처음 가본 뒤 크리스마스트리가 가득한 장소를 상상하기도 하고, 동굴에 가서 진짜 곰과 마주치기도 한다. 곰은 진짜 곰을 만난 적이 없고 볼 수도 없기에, 진짜 곰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큰 개라고 상상할 뿐이다.
시각은 사라졌지만 나머지 감각은 남아 있다. 주인이 혼란해할까봐 냄새를 너무 잘 맡지 않도록 훈련됐던 곰은 숲에서 나는 온갖 냄새로 나가는 길을 찾기도 한다. 박쥐에게서는 소리로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우연히 도시의 대성당에 들어와서는 공간을 가득 채운 성가 소리에 황홀함을 느낀다.
곰은 어떻게든 패트릭에게 돌아가려 한다. 패트릭 역시 곰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 필요하다는 실용적 목적에서가 아니다. 기쁘거나 힘든 모든 시간을 오랫동안 같이해온 둘은 이미 서로의 반려종이 됐기 때문이다. 곰이 집으로 돌아온 후 패트릭이 곰에 앞서 길을 안내하는 일도 생겼지만, 둘은 낙관적으로 세상을 살아나간다. 둘의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목적이 된다.
쪽수가 많아 그림책보다는 그래픽노블이라고 할 수 있지만, 텍스트가 길지 않아 초등 저학년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