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모두 파랑 모자를 써야 안전하다는데…어떤 색이지? 새벽하늘? 밤바다?

선명수 기자
[그림책]이번엔 모두 파랑 모자를 써야 안전하다는데…어떤 색이지? 새벽하늘? 밤바다?

미어캣의 모자
임경섭 글·그림
소동 | 42쪽 | 1만5000원

몇년간 이어지던 전쟁이 멈춘 어느 마을. 마을에는 긴 철조망이 생겼고, 마을 사람들은 다른 편을 구별하기 위해 하나같이 같은 모양의 빨간 모자를 쓰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마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빨간 모자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수리부엉이도, 반달가슴곰도, 저어새와 점박이물범도 모두 같은 모양의 모자를 써야 하는데, 이 모자가 동물들에게 맞을 리 없다. 모자를 쓴 채로 동물들은 예전처럼 달리고 헤엄을 치거나 날 수 없게 된다.

마을의 재두루미는 꼬박 열흘 밤낮을 날아 서쪽 지방 사막의 미어캣을 찾아간다. 패션 디자인 경험이 많은 미어캣에게 동물들에게 꼭 맞는 모자를 만들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마을의 동물들에게 초빙돼 재두루미의 등을 타고 날아온 미어캣은 동물들과 함께 각자에게 편한 빨간 모자를 척척 만들어낸다. 동물들은 다시 뛰거나 헤엄치거나 날 수 있게 됐다.

[그림책]이번엔 모두 파랑 모자를 써야 안전하다는데…어떤 색이지? 새벽하늘? 밤바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자, 사람들은 이제 노란 모자를 쓰라고 한다. 동물들은 새로 노란 모자를 만들어 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다시 파란 모자를 써야 한다고 한다. 동물들은 난감하다.

임경섭 작가의 <미어캣의 모자>는 비무장지대(DMZ) 인근 마을에 사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와 생태, 다양성의 가치의 대해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같은 색깔의 모자를 쓰는 이 ‘웃픈’ 이야기는 실화다. 1970년대 DMZ 인근 민간인통제구역 안쪽에 있던 파주 통일촌 마을에선 빨간 모자를 써야만 외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간첩 혹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이곳 주민이라는 일종의 증표였는데, 분기별로 지정되는 모자의 색깔도 바뀌었다고 한다. 지금에야 이상하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돌던 당시로선 어겨선 안 되는 엄격한 규정이자 전쟁과 분단이 낳은 슬픈 역사였던 셈이다.

이제 파란색 모자를 쓰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동물들은 모자 만들기를 잠시 멈추고 각자의 ‘파랑’을 떠올린다. 실타래가 끝없이 풀리듯 수많은 파란색으로 가득차 있던 수평선 너머의 하늘, 파도가 일렁이던 검푸른 밤바다, 지난 겨울 눈밭에 반짝이던 시퍼런 달빛, 동트기 전 어스름한 짙푸른 새벽 하늘….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파랑을 단 하나의 ‘파랑 모자’로 담을 수 있을까. 세상의 획일화된 규범 속에서 자신만의 색채를 찾아가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서정적인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동물들의 지혜를 빌려 건강한 생태계의 필수 조건인 다양성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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