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굴다리 벽에 남은 ○△□…‘오징어게임’ 아닌 건축물이 기록한 ‘비극의 총상’

백승찬 기자
[이미지로 여는 책]노근리 굴다리 벽에 남은 ○△□…‘오징어게임’ 아닌 건축물이 기록한 ‘비극의 총상’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김명식 지음
뜨인돌출판 | 320쪽 | 1만8000원

건축가 김명식은 “건축은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한 징표”라고 말한다. 낭만적인 것, 종교적인 것, 현실적인 것, 전통적인 것, 권위주의적인 것들을 건축은 기록한다고도 설명한다. 공동체가 겪은 비극 역시 건축을 통해 기억할 수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을 다뤘던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2017)를 펴냈던 저자는 후속작 성격의 이 책에서 또 다른 비극의 공간, 대도시 속 추모공간, 해외의 기억공간을 탐방한다.

[이미지로 여는 책]노근리 굴다리 벽에 남은 ○△□…‘오징어게임’ 아닌 건축물이 기록한 ‘비극의 총상’

충북 영동군 노근리의 쌍굴다리(왼쪽 사진) 벽면에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 표시가 하얗게 남았다. 넷플릭스 인기작 <오징어 게임>의 기호 같기도 한 이 표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비행기 폭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양민을 학살한 흔적이다. 탄환이 아직 박힌 곳은 세모, 흔적만 남은 곳은 동그라미, 명확하지 않은 곳은 네모다. 당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인근에 지어진 평화공원 입구 역시 쌍굴다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으로 지어졌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양재톨게이트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헌시민의숲은 도심 속 추모 공간이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구심점으로 다양한 추모 시설이 마련됐다. 한국전쟁 당시 비정규군 전투부대로 참전한 이들을 기리는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탑,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탑 등이 이곳에 있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2011년 우면산 일대 산사태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일상의 추념’에 주목한다. 다른 추모시설이 비교적 웅장하고 격정적이라면, ‘일상의 추념’은 가로 2.35m, 세로 1.35m 사각 바닥 위 15개의 사각 대리석 기둥으로 구성됐다. 기둥 윗면을 경사지고 거칠게 표현해 산사태를 형상화했다. 기품 있고 우아한 추모의 마음을 간결한 건축 언어로 전한다.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만든 추상적 조형물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일상의 추념’의 “숙연한 공간감”을 호평하며, 이를 21세기식 추모를 위한 공간의 제안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이밖에도 순교한 천주교인들을 기리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오른쪽), 전태일기념관과 모란공원, 사하라 사막에 자리한 UTA항공 772편 추모비 등 주목할 만한 기억공간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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