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오늘부터의 세계

장하준, 제러미 리프킨, 마사 누스바움

장하준, 제러미 리프킨, 마사 누스바움

코로나19로 문명이 한순간에 덜컹거린다. 혼돈을 돌파하고자 오늘의 문제를 세계 지성들과 살펴보려 한다. 경제위기 해법에 대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제러미 리프킨, 서구 중심 산업문명의 진실을 살피는 데 인도의 반다나 시바 박사, 중국의 농업경제학자 원톄쥔 런민대 교수, 정치·윤리적 위기로까지 퍼진 현안을 진단하기 위해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 공공보건의 현실과 대안을 짚는 데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 등 7인의 지성과 함께한다.

■“코로나, 효율성 위해 약자에 위험부담 지운 신자유주의 약점 드러내”

‘7인의 석학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첫 회는 장하준 교수와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25일 인터넷 화상 인터뷰로 진행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재미저널리스트 안희경씨가 세계 지성 7인과 인터뷰하면서 지속 가능한 세계를 살펴본다. 첫 회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다. 2019년 경향신문 신년기획 ‘세계 지성과의 대화’ 당시 자신의 연구실에서 안씨와 인터뷰하는 장하준 교수. ⓒ 황채영 사진작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재미저널리스트 안희경씨가 세계 지성 7인과 인터뷰하면서 지속 가능한 세계를 살펴본다. 첫 회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다. 2019년 경향신문 신년기획 ‘세계 지성과의 대화’ 당시 자신의 연구실에서 안씨와 인터뷰하는 장하준 교수. ⓒ 황채영 사진작가

안희경(이하 안) = 왜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이렇게까지 경제위기로 퍼져가고 있을까요?

장하준(이하 장) = 전에는 주로 금융이 꼬인다든가 유가가 올라간다든가 하는 식으로 한 부분에 충격이 와서 위기로 퍼졌는데, 이번에는 생산, 소비, 유통 모든 분야가 영향을 받았죠. 거기에 지난 30~40년 동안 세계화를 하다 보니 전 세계가 공급망으로 얽혔어요. 코로나19로 중국 경제가 마비됐을 때 한국과 독일에 있는 자동차 공장들이 영업을 못했잖아요. 중국에서 부품이 못 오니까요. 경제시스템이 안전이나 유연성보다는 효율성, 특히 단기적인 효율성을 중심으로 구조화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약점이 노출된 거예요.

안 = 세계 곳곳을 돌아 일고여덟 단계를 거쳐 하나의 제품이 나오고 시장이 굴러가도록 만든 근본 이유는 단가 때문이죠?

장 = 뭐든 제일 싸게 만들어야 되니까요. 브렉시트 논쟁할 때 영국 사람들이 걱정하던 점이 있어요. 유럽의 자동차 공장들은 영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벨기에로 보내고, 거기서 뭘 끼워 독일로 보내고, 독일에서 더 큰 파트를 끼워 다시 영국으로 보내면, 또 다른 공정을 해서 프랑스로 가는 식인데,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면 그 공정 안에 있던 회사들이 영국을 떠날 것이라는 우려였죠. 지금 경제시스템이 이렇게 값싸게 만들려고 세계 구석구석을 엮어놔 한 군데가 안 돌아가면 유지가 안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안 = 코로나 위기가 지금까지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까요? 세계화는 끝나고 국가주의로 갈 것이다, 아웃소싱한 기업을 자국으로 불러올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장 = 몇 십년 두고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쉬운 얘기가 아닙니다. 미국이 갑자기 ‘수입은 없다. 옷도 LA에서 만들고 아이폰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들자’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되지 않죠. ‘세계화는 끝났다’는 말을 저는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무엇이 취약점이고, 무엇이 잘된 점인지 추려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하죠. 이번에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효율성을 높이려고 모든 위험부담을 약자에게 지우는 겁니다. 긱이코노미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노동자인 사람들을 법적으로 자영공급자로 만들어 권리를 빼앗아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들은 병가를 쓸 수 없습니다. 아파도 일하도록 전염병에 취약하게 내몰았고, 그 속에서 병이 확산되도록 방치했어요.

안 = 지금이 전시와 같다고 한다면, 버틸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후방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산층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이 찾아왔고요.

배달·돌봄 등 저임금 노동자
모두의 생존에 기본 되는
필수 노동 해 온 것 알게 돼
위기 이후 ‘대우’ 달라져야

실업, 자살 등 사회적 비용 커
미국처럼 해고 방치하며
단기로 돈만 주는 것보다
고용 유지·월급 보전이 효율

장 = 전쟁으로 치면 전방과 후방이 섞여 있는 거죠. 복지가 안된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야 돈을 벌어요. 병에 걸려 죽을지 안 죽을지는 몰라도,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은 확실하죠. 전방이에요. 영세 자영업자들도 거의 대면 서비스 업종에 있고요. 그런데 손님들이 못 오니 문을 닫으면 망하고 열어도 불안하고, 딜레마죠. 이분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안 = 각국에서 전에 없던 방식으로 지원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도 자영업자들에게 두 달치 비용을 지원해주고, 성인 1인당 1200달러를 주고요. 캘리포니아주의 경우는 불법체류자들에게도 500달러를 지원합니다. 이 정도면 경제에 미칠 파장을 막을 수 있는지요? 아니면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까요?

장 = 긴급상황이니까 현금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맞아요. 문제는 이를 얼마나 유지할 용의가 있는가입니다. 유럽식으로 해고를 안 하도록 하면서 나눠주는 방식과, 미국식으로 해고를 방치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돈을 주겠다는 정책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최소한 2차 세계대전부터 1970년대까지 많은 나라의 주요 정책 목표가 완전고용이었습니다. 대공황 때 겪은 실업 트라우마 때문에 국민들이 고용안정을 원했고 국가가 이를 따랐는데, 신자유주의가 나오면서 고용안정과 노동권이 다 약화됐어요. 미국은 지난 6주 동안 신규 실업보험 신청자만 3000만명입니다. 이도 유럽에 비하면 과소평가된 숫자예요. 미국은 신청자격 요건이 까다롭거든요. 설사 3000만명이 전부라고 해도, 미국 노동인구가 1억6500만명이니 18%에 해당하는데, 코로나19 전에 실업률이 4%였어요. 보수적으로 잡아 한 주에 300만명씩만 더 나와도 한 달 후에는 30%의 실업률입니다. 대공황 수준이죠. 경제적으로 봐도 돈만 쥐여주는 것보다 고용을 유지하고 월급을 정부가 보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효율적입니다.

안 = 실업은 사회적 비용이 더 크지요.

장 = 그럼요, 심리적인 타격을 어마어마하게 받습니다. 실업기간이 길어지면 갖고 있던 기술마저 노후돼 재취업하기도 힘들고요. 기업에서는 새 사람 데려다 훈련하려면 그 비용도 엄청나요. 제가 보기에 이 상태가 2년은 갈 텐데, 어떤 방식으로 풀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가요. 지금 당장은 돈을 준다고 하지만 그다음에 안 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안 = 더욱 자살을 권하는 구조가 될 것 같습니다.

장 = 미국은 빈곤층 가운데 5만명이 매년 오피오이드(Opioid·마약성 진통제) 중독으로 죽습니다. 지금처럼 실업자가 늘고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좌절해서 약 먹고 술 마시고 아프거나 죽는 사람이 더 생길 겁니다. 한국도 세계에서 자살률 1위잖아요. 우리나라가 1990년대 중반까지는 OECD 평균 이하였어요.

안 = 사회학자들은 자살이 급증하는 이유에 대해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지만, 뚜렷한 경향은 사회적 가치가 급변했을 때 나왔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치가 추락했을 때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성이 있죠. 집단해고와 같이 존재감이 무너지는 일들과 연결지어진다고 봅니다.

장 = 저는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급증한 이유를 IMF체제하에서 고용안정성이 줄고 고용불안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봐요. 점점 개인주의화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복지제도는 그에 발맞춰 발전시키지 않았고, 대가족제도에서 돌봄이 이뤄져오던 방식도 해체되어 생긴 사회현상이라고요. 이번에 코로나19 방역을 굉장히 잘했는데, 여기에 자만하기보다 우리는 왜 자살자가 많을까 생각하고 고쳐야 합니다.

안 = 전체 산업 체계가 변화할 경향이 보이나요?

장 = 이 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깨달은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에센셜 임플로이(essential-employees), 영국에서는 키워커(key-worker)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야말로 모두가 생존하는 데 기본이 되는 필수 노동을 한다는 점요. 의료진, 음식 파는 가게 직원, 배달노동자, 양로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지금까지 저임금으로 일해온 노동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록다운 속에서 이런 말들이 나와요. ‘이제 보니 투자은행가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이들 없으면 못 살겠구나!’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해요. 이 위기가 끝나고 이들 분야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같은 산업이라 해도 어떤 식으로 재조직되느냐에 따라 생산 방식이 바뀌는 분야가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이를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지나고 보면 패턴이 보이죠.

안 = 제일 저임금으로 방치된 부분이 돌봄노동인데요. 지방정부 소속이라든지 공적 영역으로 포용할 수는 없을까요?

기업에 국민 세금 쏟는데
세금 더 내라·병가 막지 마라
비정규직 줄이고 보호하라 등
지원 조건 많이 붙여야 해

한국, 재정건전성 최고 수준
재난지원·실업보험액 올려
정부가 수요 유지하게 하면
기업 수익…경제 더 크게 돼

장 = 여러 나라에서 양로시설 같은 돌봄 직종을 국유화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대부분의 의료가 국영이에요. 우리식으로 말하면 다들 공무원이죠. 아니면 규제를 강화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도 있습니다. 유아원에서 교사당 돌볼 수 있는 아이들 수를 줄인다든지, 양로원에서 돌봐줄 어르신 수를 줄이는 규제를 도입하면 일자리가 많이 생기죠. 이럴 경우, 기업이 부담하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니 자꾸 안 하려는 건데요. 규제가 처음 들어올 때는 굉장히 나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업과 사회가 조화롭게 적응합니다. 옛날에 미국과 영국에서 아동노동 없애자고 할 때, 미국에서 노예제 폐지하자고 할 때 격렬한 반발이 일었잖아요. 경제 망한다고요. 그때 안 망했어요. 시장이 갖는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그 논리는 결국 정치 논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바꿔야 해요.

안 =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안전망을 세울 만한 아이디어는 뭐가 있을까요?

장 = 이번에 보인 모습이 복지제도가 잘된 나라의 사람들은 고통을 덜 받고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미국 같은 경우 자꾸 록다운을 풀자고 시위합니다. 이를 단순히 인종주의나 국수주의, 트럼프 지지자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게를 열고 길에 나서지 않으면 밥 먹기 힘든 사람들이 지지하는 거예요. 유럽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그렇게 강하지 않죠.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나라들이 많으니까요.

안 = 돈이냐 목숨이냐 하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제도를 정비하며 일자리 보장 같은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장 = 그렇죠. 워낙 복잡한 문제라 고려할 점이 많지만 장기적인 조치와 단기적인 조치를 병행해야죠. 현금지원 못지않게 왜 취약한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며, 병을 통제하기 힘든가를 생각해 제도 개선을 시작해야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2년 갈지 3~4년 갈지 모르니 장기적으로 대비해야죠.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도 점점 늘어날 겁니다.

안 = 아시아나항공에 마이너스통장처럼 쓸 수 있는 한도대출 형식으로 지원한 데 이어 대한항공에도 1조2000억원 지원이 결정났습니다. 노동자들 중에는 지원받고도 똑같이 사주 논리대로 경영할 거면 국유화하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장 = 국민 세금에서 나가는 지원이니 국유화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국민을 잘살게 하는 방향으로 조건을 제시해야죠. ‘세금을 더 내서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협력해라. 노동권 강화하자. 비정규직을 최대한 줄여 안전하게 일하도록 해라. 병가 받도록 해서 전염병 걸려도 일해야 하는 환경을 없애라. 녹색기술에 더 투자해라…’ 붙일 수 있는 조건은 매우 많습니다. 사회가 너무 자본의 이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오다 보니까 생각이 자본중심적으로 굳어졌어요. 경제 문제가 불거진 후진국에 IMF에서 지원할 때, 얼마나 많은 조건을 붙입니까? 중앙은행에 독립성을 줘라, 지방분권 해라, 아주 웃기지도 않잖아요. 근데 기업들이 돈 받을 때는 조건 하나 없이 줍니다. 그게 뭡니까?

안 = 4월22일에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음날 시멘트 주가가 솟구쳤어요.

장 = 1930년대 뉴딜만 생각해 댐 짓고 길 닦을 것을 예측하니까 시멘트값이 올라간 건데요. 뉴딜 하면 길 닦고 댐 짓는 걸로 생각하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죠. 한국 뉴딜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해 코멘트하기는 힘들고요. 아직 정부 자체도 정교한 계획을 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의 뉴딜을 모델로 삼는다 하더라도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뉴딜이 두 번 있었어요. 1차 뉴딜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1933년에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라고 해서 길 닦고 댐을 지었습니다. 1935년 2차 뉴딜은 제도개혁이에요. 와그너법을 실행해 노조 권한을 강화했고,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진짜 미국을 따라간다면 제도개혁을 하는 뉴딜을 해야죠.

안 = 지금 지방정부에서 돈을 주고 중앙정부에서도 돈을 주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제 마이너스 성장인데, 이렇게 돈을 다 퍼주면 우리 애들은 어떻게 되냐? 우리 세대가 다 써도 되냐?’ 걱정합니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사육신처럼 나선 거 아니냐고요.

■“마이너스 성장 겁낼 것 없어…제도 잘 바꾸고 복지 잘하면 삶의 질 향상”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각국의 ‘봉쇄령’ 속에 전 세계 상품의 생산·공급망은 일시 멈추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소득 단절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신청이 시작된 지난달 20일 수원 화서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선불카드를 신청하고 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의 주의회 앞에서 일부 시민들이 봉쇄령 해제와 경제활동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식당 직원이 ‘물리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시험적으로 마련한 유리집에 앉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있다(왼쪽 사진부터). AP·AFP·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각국의 ‘봉쇄령’ 속에 전 세계 상품의 생산·공급망은 일시 멈추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소득 단절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신청이 시작된 지난달 20일 수원 화서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선불카드를 신청하고 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의 주의회 앞에서 일부 시민들이 봉쇄령 해제와 경제활동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식당 직원이 ‘물리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시험적으로 마련한 유리집에 앉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있다(왼쪽 사진부터). AP·AFP·연합뉴스

장 = 틀린 경제 논리입니다. 빚내서 돈 쓰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하면 대학 가려고 학자금 융자 받아선 안되고, 빚내서 사업하면 안되죠. 빚을 내더라도 나중에 소득이 더 늘어나면 빚을 내는 게 더 잘하는 일 아닌가요? 정부가 돈을 빌려 단기적으로 재난보조금을 주고, 실업보험액을 올려 수요를 유지하면, 기업들도 그 속에서 돈을 벌 수 있어요. 수요가 완전히 붕괴되면 기업들은 더 망합니다. 정부가 돈을 빌려 경제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곳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더 커지죠. 지금 돈을 빌리면 안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기업들도 부채 하나 없이 장사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해요. 독자분들이 아셔야 할 점이 한국은 엄청나게 재정이 건전한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GDP 대비 국채 비율이 40% 정도 되는데, 세계 최저 수준이죠. 제일 낮은 나라들이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나라들인데 35~40% 사이고, 한국이 그다음으로 낮아요. 그리고 재정이 가장 건전한 이 북유럽 나라들이 바로 복지가 세계에서 가장 잘돼 있는 국가들입니다. 복지 잘한다고 재정이 부실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미국이 맨날 재정건전성 입에 달고 살지만 GDP 대비 국채 비율이 100%도 넘어요.

안 = 북유럽은 경제가 전반적으로 안정을 갖췄기 때문에 복지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건가요?

장 = 우리는 복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잘못돼 있어요. 돈 있는 사람들한테 거둬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는 걸로 생각해요. 그런데 북유럽식 복지는 사회보험을 공동구매하는 겁니다. 의료보험, 교육보험, 연금보험 등을 국민이 공동구매하는 거예요. 미국이 복지지출을 적게 한다고 말하지만, 세계에서 복지지출이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부분이 개인 지출이죠. 공공지출만 보면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국민소득의 30%를 지출하고, 미국은 20%만 하니까 미국이 복지지출을 안 하는 거 같죠. 하지만 개인이 쓰는 복지지출까지 합하면 핀란드 다음으로 많아요. 그럼에도 의료보험 체계가 잘못돼 다른 나라의 2배를 쓰고도 선진국 중에 최하위 건강지표를 보이죠.

사회복지 제대로 안 된 미국
곳곳서 ‘봉쇄령 해제’ 시위
기본 생활 보장하는 유럽은
이런 움직임 강하지 않아

당분간 저성장시대 오지만
선진국은 성장할 필요 없어
‘얼마나 공평하게 나누느냐’
성장의 질 따지는 게 필요해

안 = 사보험이라 병원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높아 이번에 코로나19 피해도 큰 듯합니다.

장 = 그게 큰 문제죠. 말하자면 복지는 월마트 논리예요. 어느 한 병원이 제약회사에 가서 1만명분 당뇨병약을 달라는 것하고 정부에서 700만명분 당뇨병약 달라고 하는 것 중 누가 더 좋은 가격을 받겠어요? 공동구매를 해 가격을 낮추는 거예요. 어떻게 지금 돈 쓰면 나중에 자식들이 고생한다는 아주 저열한 논리로 얘기들을 하고, 그 말이 또 다수에게 먹혀들어가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불평등하면 잔인한 사회가 됩니다.

안 = 저성장 시간을 5년 이상 보냈습니다. 이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기본값이 된 듯합니다. 중국도 지난 분기 마이너스 6%로 발표했고요. 우리는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은데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요?

장 =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당분간은 성장률이 많이 낮아질 겁니다. 쇼크가 왔기 때문에요. 신자유주의체제에서 맨날 성장, 성장 외쳤지만, 그렇게 경제성장이 잘된 것도 아니에요. 도리어 옛날 케인스주의 시대보다 더 안됐어요. 저는 후진국의 경우 성장이 중요하지만 선진국은 다르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에 포함시켜야 하죠. 선진국들은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라도 성장을 안 하는 게 좋고요. 문제는 성장의 질입니다. 성장을 얼마나 공평하게 나누냐에 있죠. 온 국민이 편안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경제의 목표라면 성장은 수단입니다. 성장을 하면 덩치가 늘어나 나누기도 쉽고 목표를 이루기 수월하죠. 문제는 신자유주의체제에서는 성장을 해도 그 과실이 상류층에게만 집중되는 데 있어요. 보통 사람들한테는 별 의미를 못 줘요. 성장 수치를 셈하는 방법도 문제가 있었죠. 브라질에서 아마존 밀림을 파괴하고 소를 키워 소고기 수출해서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 해도 그 일로 가뭄이 들어 농사가 망하는데요.

안 = 마이너스 성장일 때는 문제가 달라지지 않나요? 경제의 활기를 잃게 되는데요. 마이너스여도 살 만할까요?

장 = 마이너스란 건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떨어진다는 얘기니까, 대처하기에 힘은 들겠죠. 환경주의자들 가운데는 역성장이라고 해서 선진국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요. 저는 마이너스 성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어떻게 마이너스 성장이 나왔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번에 코로나19로 록다운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보다 음식을 안 버리잖아요. 식품을 덜 생산해도 똑같이 잘 먹을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의류도 패스트 패션이라고 해서 한번 입고 버리는데, 안 입고 버려지는 옷이 예를 들어 10%라고 하면, 세계 의류 생산량이 10% 줄어도 우리 삶의 질은 관계없을 수 있죠. 마이너스가 어떻게 해서 왔느냐, 그 결과가 얼마나 잘 나눠지고 얼마나 지속 가능하냐를 포괄적으로 봐야 합니다. 당장 숫자 자체가 마이너스 6이다, 마이너스 3이다,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성장을 안 해도 제도를 잘 바꾸고 복지를 잘하면 국민생활의 질은 올라갈 수 있어요.

안 = 이상주의적인 질문을 하고자 하는데요. 제가 2014년 인터뷰했던 스리랑카의 민중 지도자인 아리야라트네 박사는 간디의 가르침을 강조했습니다. ‘The last is the first(가장 마지막에 놓여 있는 사람이 최우선이다)’입니다. 우리 사회 가장 마지막에 있는 자가 안전할 때 그 위에 있는 모두가 혜택을 누린다는 가치죠. 경제정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장 = 논리를 보자면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 같은 주장인데요. 롤스는 가장 안 좋은 사람들에게 제일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체제가 가장 정의로운 체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철학적으로는 간명한 얘긴데, 이 말을 직선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실제로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죠. 저는 모든 사람이 기본권을 누리고, 굶지 않고, 아플 때 돈 걱정 안 하고 병원에 갈 수 있고, 어느 수준까지 모두 교육받을 수 있는 정책이라고 봐요. 육아가 됐건 고등교육이 됐건, 노후가 됐건, 우리가 흔히 보험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분야에서 사회가 공동구매해 누구나 사도록 해주고, 자기가 태어난 계급이나 성별·지역에 관계없이 능력과 노력으로 올라가는 부분을 최대한으로 키우는 방식을 생각하면 구체적으로 아리야라트네, 롤스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안 = 코로나19 방역에서 월등한 모범국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고공 행진합니다. 총선을 통해 거대 여당도 탄생했습니다. 정부와 민주당이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는데요. 반드시 이뤄내라고 요구하고픈 당부가 있다면요?

한국 ‘방역’ 자랑스럽지만
자살률 1위·저출산 등 창피
손 놓은 채 건전재정 외치다
5년 뒤 ‘오명’ 그대로일 것

복지·교육·세제 개편부터
규제 강화로 노동 개선까지
코로나 극복 잘한 경험으로
힘 모아 큰 개혁 이룰 시기

장 = 이번에 한국 참 자랑스럽죠.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제일 잘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창피한 세계 최고기록이 너무 많아요. 자살률 1위, 간단히 볼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사람 죽는 건 안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죽는 건 괜찮은가요? 출산율은 거의 세계 최저에, OECD에서 남녀 임금격차는 최고예요.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이민 가고 싶다는 나라입니다. 잘한 거는 자화자찬이라도 해야 하지만, 잘한 걸로 못한 것을 덮을 수는 없어요. 잘해낸 경험을 계기로, 힘을 모으면 큰일도 할 수 있구나 깨달았을 때 큰 개혁을 해야죠. 복지제도도 제대로 도입하고, 교육제도도 최대한 공정하게 개선하고, 세제도 최대한 공평하게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하면서 연대도 조성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하고, 할 일이 많죠. 걱정은 코로나19 잘했다고 자화자찬하고, 계속 건전재정 외치고 예전처럼 하겠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코로나19 위기 끝나고 5년이 지난 후에도 자살률 1위, 출산율 최저, 남녀 임금격차 최고, 그런 한심한 나라가 될 거예요. 하지 않으면 안 바뀝니다.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다음 석학은 제러미 리프킨

코로나19 이후 과연 어떤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도래할지에 대한 의문과 기대가 부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는 저절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어제까지 축적된 문제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오늘을 파괴하듯, 풀지 못한 오늘의 고통이 내일을 파괴할 수 있다. 혹여 잔혹하게 다가올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피하고자 질문하고 대담하는 과정을 이어가고자 한다. 다음 회는 제러미 리프킨과 나눈 ‘코로나19 위기에서 그린 뉴딜로’이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①장하준 "코로나, 효율성 위해 약자에 위험부담 지운 신자유주의 약점 드러내"

▶장하준 교수는

장하준(55)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이다. 2003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2014년 영국의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Prospect)’가 선정하는 ‘올해의 사상가 50인’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 이사로 선임되어 5년 임기를 맡게 되었으며, 2019년부터 3년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개발정책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 경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Economics The User’s Guide)> <국가의 역할(Globalization,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 등이 있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①장하준 "코로나, 효율성 위해 약자에 위험부담 지운 신자유주의 약점 드러내"

▶필자 안희경은

재미 저널리스트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등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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