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서 신라 인신공희 유골 추가 발굴…“국가 형성기 대중 장악 목적”

김종목 기자

경주 왕성인 월성 서성벽에서 인신공희(人身供犧) 추가 사례가 확인됐다. 축조 시기가 4세기 전·중엽~5세기 전후(추정)라는 최초 분석 결과도 나왔다. 구체적인 축성 기술을 두고 진행한 연구 결과도 공개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월성 서성벽 발굴조사를 하며 2017년 발굴한 50대 남녀 인골(2구, 기저부 조성층과 성벽 체성부 사이)에서 북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곳에서 성인 여성 인골과 동물뼈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7일 발표했다. 여성 인골의 키는 약 135㎝ 전후로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 팔찌를 착용했다. 연구소는 목제 덮개와 착장 유물 등이 인신공희의 세부 정황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총 3구의 인골의 에나멜(법랑질) 질감 형성 정도를 봤을 때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고급 유물이 없는 점을 볼 때 낮은 신분인 것으로 추정했다.

경주 왕성인 월성 서성벽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발굴된 여성 인골. 얼굴 주변에 목에 거는 장식품인 경식(頸飾)과 아래팔 뼈에 팔찌가 보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왕성인 월성 서성벽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발굴된 여성 인골. 얼굴 주변에 목에 거는 장식품인 경식(頸飾)과 아래팔 뼈에 팔찌가 보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해방 이후 첫 발굴조사한 1979년 이후 논쟁이 끊이지 않은 월성(경주시 인왕동 387-1번지 일원, 21만2194㎡) 축조 시기를 두고 “문헌 기록과 약 250년 차이 나는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이르러 완공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파사왕 22년(101년)에 월성을 축조하고, 290년 홍수가 나서 무너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연구소는 “(삼국사기 등의) 축성 기록 시기는 실제 축조 연대보다 많이 앞당겨졌다. 출토 유물의 전수 조사와 함께 40여 점을 두고 가속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목재, 유기물질 등의 탄소를 측정해 과거 연대를 검출하는 방법)로 연대 분석해 축조 개시 시점은 4세기 전·중엽, 완공 시점은 4세기 중엽~5세기 초라는 결과를 확인했다”다고 한다. ‘기저부 조성→중심 토루(土壘)→4차례 성벽 성토’ 등 축성 소요 기간은 50~70년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연구소는 2017년 인신공희 사례 발견 이후 월성 성벽의 토목 기술과 축조 시기를 추가 조사해왔다.

월성 서성벽의 인신공희 지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 서성벽의 인신공희 지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 서성벽 발굴 조사. 국립경재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 서성벽 발굴 조사. 국립경재문화재연구소 제공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축성을 시작한 시기를) 4세기 중엽이라고 한다면 사로국 주변 지역을 병합해 신라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였다. 왕호를 마립간이라 하고, 적석목곽분이 경주 분지에 축조되는 시기와 맞물렸다. 초기의 신라 국가사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월성 서성벽은 ‘사람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낸 의식’인 인신공희 사례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곳이다. 2017년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나왔다. 연구소는 “(2017년과 올해 발견한 서성벽 인골 3구의) 인신공희는 기초부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 올리기 전 성벽과 문지(門址)가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차원에서 실시됐다”고 했다.

1985·1990년 시굴·발굴 조사 때 인신공희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출처 불명의 인골 23구가 출토됐다. 23구의 인골을 두고 연구소는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해 묻힌 것이다. 23구 출토 지점에서 동물뼈, 골각기(骨角器) 등을 확인했다”고 했다. 23구 중 1·4호 인골은 정연한 안치 형태, 공헌 유물의 존재, 목제 덮개의 존재(추정)로 볼 때 인신공희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만, 연구소는 이 1·4호를 인신공희 인골로 분류·발표하지는 않았다. 23구는 연령대도 다양하다고 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추가로 발굴한 여성 인골의 경화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추가로 발굴한 여성 인골의 경화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성주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는 “중국 주나라(기원전 1046년~기원전 256년) 때 의례 혁명이 있은 이후로 인신공희 같은 것들은 원시적인 예습이라고 폐기한다. 1000여년 뒤에 신라 경주 한복판에서 이런 의례가 행해졌다는 게 대단히 흥미로운데, 초기 국가 형성기 대중들을 장악하고,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는 권력 장악 측면에서 우리가 (기원전 1600년~기원전 1046년 존재하며 인신공희를 실행한 중국 상나라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2017년과 2021년 인신공희 인골 발굴 지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2017년과 2021년 인신공희 인골 발굴 지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1985·1990년 인골 출토 지점(오른쪽)과 2017년(A)와 2021년(B) 인골 출토 지점. 두 거리는 10m 가량이다. C표기지점은 동물 유체를 출토한 곳이다

1985·1990년 인골 출토 지점(오른쪽)과 2017년(A)와 2021년(B) 인골 출토 지점. 두 거리는 10m 가량이다. C표기지점은 동물 유체를 출토한 곳이다

서성벽 인신공희 지점엔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는 동물뼈가 나왔다. 연구소는 “늑골 부위 위주로 선별해 제물로 바쳤다. 인신 희생, 동물 훼기, 토기 매납이 세트로 이뤄졌다”고 했다. 성벽 의례용 동물 훼기(毁棄)나 음용 전용 토기 부장(副葬)은 국내 유일 사례다.

월성 성벽 축조 공정. 국립경재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 성벽 축조 공정. 국립경재문화재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이날 축성 기술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기초부 공사 때는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地釘) 공법과 목재나 식물류를 층층이 쌓는 부엽(敷葉) 공법으로 보강했다고 한다. 월성 지반이 지하수 용출이나 습지에 영향을 받아 연약했기 때문이다. 지정공법과 부엽공법은 성벽 기초부를 견고하게 다져 올리는 작업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한다. 신라 토성에서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가 월성이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관장은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신라가 가장 견고하고 높은 성을 쌓았다. 삼국통일의 근원적인 힘은 성곽에서 찾을 수 있다. 월성 발굴은 신라 토목 기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라고 말했다.

기초부 공사 종료 뒤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에서는 볏짚·점토 덩어리·건물 벽체 등을 다양한 성벽 재료로 사용했다. 높고 거대하게 만드는 토목 기술을 확인했다. 월성 성벽은 너비 약 40m, 높이 10m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월성과 주변 일대 발굴 조사 현황.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과 주변 일대 발굴 조사 현황.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첫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해방 이후인 1979~80년 월성 동문지를 발굴조사하고, 1984~85년 월성 해자를 시굴조사했다. 1985~2014년 : 월성 해자·계림 북편, 첨성대 남편, 월성 북서편 건물지를 조사했다. 2014년 A지구 성벽, C지구 중앙건물지군, 해자 발굴 조사에 들어갔다. 2016년 C지구에서 통일신라시대 문서행정 관청터를 확인하고, 벼루 유물도 출토했다. 인신공희 인골 2구가 발견된 해와 장소는 2017년 A지구 서성벽이다. 2019년엔 해자지구 1-1호에서 수혈 해자 범위와 삼국시대 최대 규모 판자벽 시설을 확인했다. 2021년 9월 기준 A지구 서성벽·남성벽 조사를 진행중이다. 해자지구 계림~월성 진입로 조사는 완료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