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아트 테크에 달아오른 미술시장…“감상 넘어 투자 시대로”

도재기 논설위원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최근의 미술시장 활황세는 미술품 감상의 시대를 넘어 투자의 시대가 됐음을 확인시켜 준다”며 “미술시장 특성상 신중한 투자, 시장 주체들의 내실 다지기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최근의 미술시장 활황세는 미술품 감상의 시대를 넘어 투자의 시대가 됐음을 확인시켜 준다”며 “미술시장 특성상 신중한 투자, 시장 주체들의 내실 다지기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 소장(65·강남대 명예교수)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경제학자로서 미술시장을 연구하고 있다. 경제사 등을 연구하던 중 20여년 전 일본에서 ‘문화경제’라는 개념에 매료돼 미술과 미술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의 미술시장을 문화콘텐츠산업 전반, 그리고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미술시장의 큰 틀 속에서 분석한다. 중학생 시절 국제 공용어·보조어인 에스페란토어를 접했으며, 현재 한국에스페란토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저서로 <문화경제의 이해> <고전경제학파 연구>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공저) 등이 있다.

미술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술작품 경매와 아트페어로 사람과 돈이 몰려들고 있다. 올해 화랑미술제와 아트부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판매액과 관람객 숫자에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서울옥션·K옥션 양대 경매사의 낙찰총액도 급증하고, 갤러리(화랑)에도 컬렉터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일부 인기 작가의 작품은 없어서 못 팔거나, 예약금이 걸릴 정도다.

미술품 감상의 시대를 넘어 투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술품을 활용한 재테크인 ‘아트 테크’도 일상용어가 됐다. 미술계 안팎에서는 ‘MZ세대’로 불리는 20~40대 젊은층의 시장 진입과 그들의 구매 방식,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대체 불가능 토큰(NFT) 시장의 태동 등 새로운 흐름을 주목한다. 한편에선 과열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일부 작가 작품값이 6개월 만에 10배 뛰는 등 단기간에 급등한 데다 묻지마 투자의 행태도 보인다. 미술에 대한 관심, 미술시장의 확대는 환영할 만하지만 투기적 시장 과열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로 미술시장을 연구하는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65·강남대 명예교수)은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서 소장은 “컬렉터는 작품이 좋아 컬렉션하는 사람과 되팔아 이익을 남기는 투자자로 나뉘는데, MZ세대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후자가 크게 늘었다”며 “본격적인 미술품 투자의 시대가 왔다”고 밝혔다. 서 소장은 “아직 영세한 한국 미술시장의 활황세를 크게 반기지만 과열은 경계한다”며 “지금은 미술시장의 각 주체가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내실을 다질 때”라고 말했다. 미술시장의 국내외 확장성 제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일 가을빛이 완연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서 소장과 마주했다.

경매·아트페어에 사람과 돈 몰려 판매액과 관람객 모두 최대 기록 세워
과시적 소비도 있지만 이건희 효과에 한류·BTS 등 유명인 관심도 일조
소비 세대인 젊은층 거침없는 구매…일부 작가의 작품은 없어서 못 팔아
사재기·묻지마 투자 경계해야…내실 다져 국내외적 확장성 제고 필요
미술시장의 특성상 공부해가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장기 투자가 바람직

- 미술시장 활황세가 어느 정도인가.

“주요 아트페어, 경매사 판매액을 보면 명확하다. (작년은 코로나19 사태로 비정상적이었으니) 2019년과 올해를 비교해 보면, 화랑미술제는 30억원에서 72억원, KIAF는 310억원에서 650억원으로 판매액이 급증했다. 아트부산도 350억원으로 대규모 판매가 이뤄졌다. 서울옥션·K옥션의 낙찰총액은 2019년 1375억원에서 올해는 10월 말 현재 2267억원이다. 갤러리들도 판매실적이 호조세고, 온라인 시장의 성장과 NFT아트 시장의 형성 등 미술시장의 활황세가 뚜렷하다.”

- 미술시장이 달아오른 이유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어느 때보다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데다 사회적 투자 열풍이 증시·가상통화 등을 거쳐 미술시장으로 확장됐다. 부동산 등 자산가들의 부가 증가하면서 투자자들이 제2·제3의 투자처를 찾았고, 세금 혜택과 과시적 소비라는 장점도 있는 미술품을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킨 것으로 본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과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지역 미술관의 관련 전시 등으로 미술에 대한 전반적 관심을 높인 ‘이건희 컬렉션 기증 효과’도 있다. K팝, K필름 등 한류 콘텐츠의 세계적 확산도 일조했다. 특히 MZ세대 등 젊은층의 미술시장 참여와 거침없는 구매는 주목할 일이다. 방탄소년단(BTS) 등 유명 연예인·인플루언서들의 전시장 방문과 작품 구입, 코로나19로 답답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아트 쇼핑’을 즐기는 측면도 일조했다고 본다.”

- 아시아와 세계 미술시장 상황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핵심인 홍콩 시장은 중국과의 정치적 갈등,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상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 양대 경매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에도 아시아 구매자들의 참여가 크게 늘어났다. 세계 미술시장도 뜨겁다. 크리스티의 경우 올 상반기 판매총액이 온라인 경매·프라이빗 세일의 증가로 2019년 대비 약 13% 증가했다. 이들 경매사는 기존 경매에 더해 NFT아트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지난 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는 8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 사상 최대의 관람객 수와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는 8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 사상 최대의 관람객 수와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최근 미술시장의 활황이 과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2006~2007년 미술시장 활황 때는 이른바 ‘국민화가’들이 활황을 주도했다. 또 부동산 시장에서 유입된 컬렉터가 눈에 많이 띄었다. 또 2015~2018년 단색화가 주목받을 때는 단색화를 핵심으로 추상미술가들이 주도하고, 서울~홍콩~뉴욕 시장이 연동되면서 해외 컬렉터의 국내행이 늘었다. 최근에는 유명 작가들과 함께 MZ세대의 ‘갬성’(감성)과 어울리는 작가 등 주도 작가들이 다양하다. 젊은층 컬렉터의 급증, 온라인 시장의 확대, 상담을 통한 구매의 증가 등도 달라 보인다.”

- ‘아트 테크’란 이름 아래 젊은층의 미술시장 진입이 주목된다.

“MZ세대의 시장 진입을 실제 피부로 느낀다. 온라인 시장 참여가 많지만 지난달 KIAF 현장에서는 ‘오픈 런’(백화점 등 매장을 열기 전부터 기다렸다가 열자마자 뛰어들어가 구매하는 일)까지 목격했다. 투자에 익숙하고, 커뮤니티로 정보를 공유하는 MZ세대가 미술시장에 새로 들어온 것이다. 국내 메이저 경매뿐 아니라 소더비·크리스티, 프랑스의 미술전문 온라인 아트플랫폼인 아트시 등에도 참여해 1000만~3000만원 내외의 미술품을 구입한다는 통계도 있다.”

- 젊은층이 미술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들은 한마디로 ‘소비 세대’다. 장년층이 소득을 ‘소비+저축’으로 나누는 ‘축적 세대’라면 이들은 ‘소비+투자’로 여긴다. 저축보다 주식·가상통화 등 다양한 투자에 관심이 많다. ‘동학개미’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저축으로 내집 마련이 불가능하고 자산 증식도 어렵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들에게 미술품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것에도 관심이 많은데, 일상의 평범한 시각물보다 미술품이 그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좋아하는 연예인 등의 미술에 대한 관심, 해외여행 등을 통한 미술 체험, 코로나19에 따른 온라인 활성화도 그들의 관심을 자극한 것으로 본다.”

- ‘아트 테크’란 말이 대중화됐다.

“서구와 중국에서는 투자 포트폴리오에 미술품이 포함돼 있고, 투자기관과 연구자들이 수익률을 제시한다. 국내에서도 미술품 투자 전반에 관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 ‘1억원어치를 구입하려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짜야 하나’ ‘쪼개기 투자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등 구체적 질문을 한다고 한다. ‘사두면 값이 올라가는 작가로 누가 있나요’라고 묻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저 작품이 좋아 컬렉션을 하는 사람과 작품을 사서 되팔아 돈을 버는 컬렉터가 있는데, 후자가 늘어난 것이다. 미대를 나와 작품활동보다 미술품 투자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 여느 시장과 다른 미술시장 특성은.

“대부분 시장은 모두가 투자형이지만 미술시장 구매자는 취미형과 투자형으로 구분된다. 미술시장은 한 작가의 작품도 시기·장르·재료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작가와 작품의 개별 정보가 많이 필요한 특수한 시장인 셈이다.”

- 미술 투자자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 태도나 성공적 투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원론적인 말이지만 미술시장의 특성상 공부해가며 신중하게 접근하기를 권한다. 미술품 가격은 장기적으로 작품성, 미술사적 가치와 관계가 깊다. 비평을 통한 평가, 다른 작품들과의 비교 단계를 거친 작품을 선택하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장기적인 투자를 권한다. 작품 감상도 하고 수익도 얻고 싶다면 처음 2~3년은 혼자 또는 그룹으로 감상과 더불어 미술사, 미술시장의 메커니즘 공부를 했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안목이 생기게 되고, 구매와 판매 시점도 알게 된다. 물론 호황기에는 분위기에 휩쓸려 신중한 투자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활동 이력, 화랑과의 협력 체계, 국제시장 진출 가능성, 작품의 특성 등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거친 후 구입해야 재판매도 쉽고 수익도 보장받을 수 있다.”

- 시장이 과열됐다는 우려도 나오는데.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미술시장도 사재기와 ‘묻지마 투자’는 개인과 시장 모두에 악영향을 끼친다. 시장 교란을 넘어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조그만 작품이라도 구입해 소장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국내 미술시장은 시장 규모 자체가 아직 작은 데다 투자 대상이 되는 작가와 작품도 제한적이다. 어떤 분야나 호황기엔 과열 우려가 나오고, ‘조심해야 한다’는 견해와 ‘물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미술시장도 2006~2007년의 큰 호황기, 단색화 붐 때 작품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했다가 급락했다. 지금은 투자자와 갤러리·옥션 등 미술품 거래 주체들이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내실을 다져 국내외적 확장성 제고를 위해 앞장서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 이런 흐름에 대해 미술품을 문화적 측면보다 투자 대상으로만 본다는 비판도 있다.

“문화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 둘 다 중요하다. 미술품을 미술관에서 잠시 감상하는 것과 구입해 감상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투자자로 구매를 시작했지만 문화적 차원의 진정한 완상(玩賞)자가 될 수도 있다. 또 완상을 위해 구입했는데 아트 테크의 복까지 누릴 수도 있다.”

- 한국 미술시장의 국제적 위치는.

“프랑스의 미술시장 조사업체인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20년 미술품 경매시장 점유율을 보면, 5대 강국인 중국(39%)과 미국(27%)·영국·프랑스·독일이 전체의 89%를 차지한다. 아시아 시장을 보면 중국이 67%, 홍콩 26%, 일본 2%, 한국이 1%다. 한국은 시장 규모가 5000억여원으로 아직 작다. 하지만 국내에 진출한 해외 갤러리의 해외 미술품 판매 실적과 한국인의 서구 미술에 대한 강한 선호도는 이미 알려져 있다. 최근 20여년 사이에 해외 작가들의 국내전, 국내 작가의 해외전도 급증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과 작가에 대한 해외의 관심과 인지도도 크게 높아지는 추세다. 내년에 국제적 아트페어인 프리즈 아트페어가 국내에 진출하는데 이를 계기로 여러 세계적 갤러리들이 서울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 미술시장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은.

“세계 미술시장은 교류 확대 등으로 많은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국내 갤러리 등 아트 딜러들은 실력이 탄탄한 작가를 꾸준히 발굴해 장기적으로 지원하고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 국내외 미술관과 국제적 에이전트의 협력을 통해 전시·아트페어 참여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작품세계를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는 ‘셀프 매니지먼트’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공립미술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 미술사상 주요 작가들의 작품 소장을 확대하고 상설전과 기획전 등을 통해 이를 선보여야 한다. 해외 미술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았을 때 한국 미술 전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미술사적 가치가 큰 작가의 표준작·대표작을 모르고는 제대로 된 가격을 형성하거나 시장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시장이 6조원 안팎인 영화·음악 산업의 절반으로라도 성장할 때까지는 미술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이 커지면 외국인들도 더 찾게 된다.”

- 전문가들의 역할도 중요한데, 향후 관련 계획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30여년의 경제학과 교수, 50여년의 에스페란토 인생, 지난 20여년 세계를 누비며 조사한 미술시장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자서전 성격의 책을 준비 중이다. 또 한국 미술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국제적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가칭 ‘21세기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도 계획하고 있다. 작가들의 국제화 전략을 도울 일도 모색 중이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MZ세대 아트 테크에 달아오른 미술시장…“감상 넘어 투자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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