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소수 반대 뛰어넘어야…14년 지체엔 민주당 책임도 커”

윤호우 논설위원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변호사)이 지난 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이 2007년 처음 발의된 지 14년이 지났다.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변호사)이 지난 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이 2007년 처음 발의된 지 14년이 지났다.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1980년생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2011년 사법연수원(40기) 수료 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펠로로 1년 활동했다. 2012년에 동료 변호사들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을 만들어 장애·성적지향·성별 정체성 인권을 대변하고 있다. 기업 내 인권과 집회의 자유 침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창립 초기에 참여해 2017년 공동집행위원장이 됐다. 올해 5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올해 1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수여하는 공익봉사상을 수상했다.

차별금지법을 연내에 제정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10만명이 동의한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기한(10일)을 이틀 앞둔 8일 시민단체가 국회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10일에는 부산에서부터 걸어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국회 앞에 도착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법사위는 9일 국민동의청원심사 기간을 21대 국회 임기만료일인 2024년까지 연장했다. 여기에 대선 후보들도 표를 의식한 듯 법 통과에 소극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8일 “긴급한 사안이라면 모르겠지만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지침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아예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변호사·41)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며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소수의 극우적이고 반헌법적인 주장이 14년 동안 입법을 막아섰다”며 “정치의 역할은 이런 것을 단호하게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성에 들어가기 직전 만난 조 위원장에게 9일 다시 전화를 했다.

2007년 참여정부 때 ‘7개 사유’ 삭제로 극우에 힘 싣더니
이재명 후보는 보수 기독교계 의식해 속도조절론으로 문제
‘차별하면 처벌한다’는 법안에 없는 내용으로 가짜뉴스
종교 자유는 평등 가치와 충돌 안해…일부 단체 과잉대표화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만 유일하게 방치하고 있고
국민동의청원심사 기간 2년여 연장 등 정치권 반응 미지근
여야 분명한 입장 밝히고 이번 국회서 반드시 통과 시켜야

- 이재명 후보가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합의 사안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후보는 이 법이 시급하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도 다양한 차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다. 민생에 관한 시급한 문제이다. 정치인들이 이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 대선을 앞두고 교회 대표자들에게 선심성 발언을 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전체적인 맥락은 결국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반대하는 측의 말에 귀를 기울여 차별을 도와주는 발언을 한 꼴이다. 여당 대선 후보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문제가 있다.”

- 최근 몇몇 의원들이 차별금지법 논의를 여야에 촉구했다.

“20대 국회에서 모두 네 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도 1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논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2007년 법안이 발의된 지 14년이 지났다. 너무 늦었다.”

-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여당인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의 원칙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몇 가지 사유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07년 참여정부 때 법무부가 같은 이유로 7개 사유를 법안에서 삭제했다. 이렇게 되면서 극우세력은 ‘아, 반대하면 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졌고,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됐다.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시 참여정부는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지향·학력 등 7개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한 형태로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는데, 결국 제정이 무산됐다.

-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참모들에게 차별금지법을 검토할 단계라고 언급했다고 보도됐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논의의 장을 만들겠다고 했고.

“문 대통령이 처음 대선 후보로 출마한 2012년에는 차별금지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2017년에는 공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대선 토론 때는 관련된 질문을 받자 ‘나중에’ ‘나는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전향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칭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문재인 정권 내내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2017년 장애인차별철폐의날 행사 현장에서의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 모습.    공익인권 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제공

2017년 장애인차별철폐의날 행사 현장에서의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 모습. 공익인권 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제공

-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전에도 연대모임은 있었다. 2007년 참여정부가 차별금지법안에서 7개 사유를 삭제하면서, 시민단체가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장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반차별공동행동을 만들었다. 그것을 더욱 폭넓게 조직한 단체가 제정연대다. 2011년 1월 발족했다.”

- 반대 쪽에서는 차별금지법안에 처벌 조항이 들어가 있다며 문제 삼고 있다.

“차별하면 처벌한다는 것은 가짜뉴스다. 차별금지법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다. 차별이 발생하면 형사처벌이 아니라 민사적인 접근 방법을 찾는다. 국가인권위의 시정 권고가 한 축을 이루고, 다른 한 축은 법원으로 갔을 때 차별 시정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손해가 발생했으면 배상이 있다. 악의적이고 지속적이며 피해가 심대할 때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간다.”

- 형사처벌이 없는 이유는.

“차별금지법의 목적은 차별이 없도록 원상회복시키는 것이고 재발 방지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형사처벌이 없다. 단 하나 있다면 차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불이익이나 보복 조치를 하는 경우다.”

- 입증 책임을 가해자에게 지운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별을 따지려면 판단 자료는 행위를 한 쪽에 있다. 가령 회사에서 승진 차별이 있다고 하면 어떤 근거로 처분을 했는지 모든 자료는 회사에 있다. 피해자에게 입증하라고 하면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 헌법 11조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상에 차별과 혐오가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것이 차별인지,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를 배울 기회가 없다. 2007년 입법이 됐어야 했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국가에는 이미 이 법이 만들어져 있다. 10년 정도 뒤처져 있다. 차별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이를 없애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차별은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지만 점차 없어지게 된다.”

- 지난해 6월 인권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을까.

“차별금지법은 지극히 상식적인 법이다. 인권위 TF에서 만든 안으로 10년 넘게 충분히 검토했다. 극우적이고 반헌법적인 주장이 14년 동안 막아섰다. 정치의 역할은 이런 것을 단호하게 넘어서는 것이다. 어느 영역은 빼고 가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도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차별은 주로 어떤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보나.

“단순 비교가 어렵다. 실제로 다양한 차별 사유들은 대부분 고용과 관련이 있다. 외국에서도 그렇다. 이런 부분들이 성소수자와 종교계의 대립 프레임에 가려져 있다.”

- 성소수자 차별이 가장 많아 보인다. 변희수 전 하사의 극단적인 선택도 이런 차별 때문이었다.

“인권위 진정 숫자를 보면 성적 차별에 대한 건수가 적다.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차별적인 환경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시다. 성소수자와 종교계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이 두드러져 보인다. 성소수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 중 한 명이다. 고용, 교육, 재화·용역의 행정 영역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할 시민이다. 차별금지법은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 일부 기독교·보수 단체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이들 단체가 과잉대표화돼 있다. 종교계가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는 적극 찬성하고 있다. 개신교 내부에도 차별금지법을 기본적인 법으로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모든 사회가 평등권을 요구하는데 종교가 막아설 수 없다. 종교의 자유가 평등의 가치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평등권이 실현되어야 한다. 종교 내부의 성찰도 필요하며, 비상식적인 주장이 나오지 않게 사회에서 이들과 선을 그어야 한다.”

- 2007년 처음 발의된 후 지금까지 국회에서 6차례나 입법이 안 된 것도 이런 이유라고 보나.

“2013년 발의된 법안이 철회되는 상황이 있었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정치인들은 몸을 사리고, 극단 주장을 하며 실력 행사를 하는 이들에게 이 법안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줬다.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인권 관련 법도 철회시키려는 행위가 시작됐다. 한국 사회의 인권 수준을 후퇴시켰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은 피하는 주제이다. 사회적 합의가 없다고만 말한다. 10년 이상 그렇게 논의할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 성소수자 숫자가 늘어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법이 통과되면 내가 성소수자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지금은 차별이 심해서 숨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대 여론이 있다.

“차별금지법은 결혼제도를 다루는 법이 아니다. 고용, 교육, 재화·용역 행정에서 우리 모두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법이다. 그런데 이것(동성혼)을 싸잡아서 종교계 일부에서 반대하고 있다.”

- 차별금지법은 동성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동성혼을 논의할 때 차별인지 아닌지 이야기하기 때문에 크게 봤을 때는 연결이 돼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어떤 식의 혼인제도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에 관한 원칙을 확인하는 법이다. 동성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도 이 법을 토대로 합리적으로 토론을 할 수 있다.”

-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공포를 조장하는 쪽의 이야기일 뿐이다. 성소수자도 역시 시민이고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해 10여년을 끌고 있는 것 자체가 혼란을 만들었다. 일선 공공기관에서 성소수자 행사를 취소시키고, 이들이 인권위에 가서 차별이라고 판단받는 소동이 벌어진다. 인권 개선은 지금까지 차별인지 몰랐지만 다른 방식으로 조치를 취해가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혼란이라 부르면 안 된다. 이것을 겪지 않고서는 더 좋은 사회로 갈 수 없다. 그것이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과정이다.”

- 차별금지법의 수위를 낮추자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차별금지법의 내용은 소프트하다. 지지하는 분들이 내용을 알고 나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차별이 없어지겠느냐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이 법은 차별을 합리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 시정하도록 하는 기본적인 법일 뿐이다.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을 법제화하는 수준이다.”

- 민감한 문제를 빼고 시행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누군가를 빼고 가는 것은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차별적인 주장이다. 지금까지 확인한 기준을 역행해 차별적 관행을 인정하게 되면 오히려 인권이 후퇴하는 결과를 낳는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 이미 평등법과 유사한 법이 존재한다.

“일본은 포괄적 금지법은 아니지만 정책적으로 성소수자 차별 금지 등을 각 법률에 넣어서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방치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에서도 한국에 대한 인권 권고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한국이 즉각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일하고 있다. 일반 로펌과 다른 것인가.

“비영리다. 착수료를 받지 않는다. 풀뿌리 후원으로 재정이 이뤄진다.”

- 일반적인 소송을 다 맡나.

“모든 사건을 다 다룰 수는 없다. 소송은 법·제도 관행을 바꾸는 것에 의미를 둔다. 장애·성소수자·기업 인권 침해·집회 자유에 관한 사건을 수임하고 있다.”

-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갖게 됐나.

“대학 때 인권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어떤 직업을 가질까 고민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1년 연수원 수료 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펠로 과정을 거쳤다. 이후 곧바로 ‘희망을만드는법’을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만들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차별금지법, 소수 반대 뛰어넘어야…14년 지체엔 민주당 책임도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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