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전복한 ‘소변기’는 21세기 ‘NFT’ 인정해 줄까

김창길 기자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혹은 마르셀 뒤샹에 의한, 또는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여행가방 속 상자)‘ 1961년 에디션. 상자 가운데에 그의 대표작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 복제품이 있고, 바로 왼쪽에는 스캔들을 일으켰던 미니어처 오브제 ’샘‘이 걸려 있다. /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혹은 마르셀 뒤샹에 의한, 또는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여행가방 속 상자)‘ 1961년 에디션. 상자 가운데에 그의 대표작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 복제품이 있고, 바로 왼쪽에는 스캔들을 일으켰던 미니어처 오브제 ’샘‘이 걸려 있다. /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프랑스 명품 가방이 한국에 들어왔다. 가로 40, 세로 37.5, 두께 8.2㎝ 크기의 갈색 가죽 가방 이름은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혹은 마르셀 뒤샹에 의한, 또는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이하 ‘여행가방 속 상자’)이다. 젠더를 넘나들었던 가방 디자이너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여자일 때는 ‘에로즈 셀라비(Rrose Selavy)’로 변신하는 초현실주의자다.

가방은 상자 안에 담긴 사은품과 재질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상자 속에는 그림, 사진, 오브제 등 69개의 미술 작품이 담겨 있다. 한정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A부터 G까지 7개 시리즈로 300개가 넘는 가방이 제작됐다. 1935년에서 1941년 사이에 제작된 20여개의 가방들이 A급이다. 사진제판술 콜로타이프를 이용한 복사본에 작가가 색칠을 했고, 소장자를 위한 작가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초현실주의 거장들 :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에 전시된 가방은 1961년 에디션이다.

1917년 잡지 <맹인>에 실렸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촬영한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 사진.

1917년 잡지 <맹인>에 실렸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촬영한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 사진.

상자를 열면 희대의 문제작 ‘샘(Fountain)’이 가방고리처럼 앙증맞게 걸려 있다. 1917년 독립미술가협회 주최 뉴욕 전시회에 출품됐던 원작의 축소 복제품이다. 자신의 신분을 숨긴 마르셀 뒤샹은 가명인 ‘리처드 머트(R Mutt)’라고 서명한 남성 소변기 ‘샘’을 전시회에 출품했다. 독립미술협회는 외설스럽고 저속하다는 등의 이유로 ‘샘’을 전시하지 않았다. 마르셀 뒤샹과 그의 친구들은 잡지 ‘맹인’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폭로했다. 사진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는 ‘샘’을 사진 찍고 “리처드 머트의 작품 ‘샘’이 독립전에서 거부되었다”라는 캡션을 달았다. ‘리처드 머트의 사례’라는 익명의 사설도 실렸다.

“머트씨가 자신의 손으로 ‘샘’을 제작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가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상용품 하나를 골라서 새로이 붙여진 제목과 대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에 의해, 그 실용성이 사라져버리도록 전시했다. 그럼으로써 사물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창조한 것이다.”(매슈 게일, <다다와 초현실주의>, 한길아트, 103쪽)

사설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레디메이드(readymades)’이다. 마르셀 뒤샹은 기성복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빌려와 새로운 미술 개념을 만들었다. 작가의 손놀림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존의 미술 개념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레디메이드는 초현실주의의 전신인 ‘다다이즘’의 속성을 지녔다. ‘무의미’를 뜻하는 다다이즘은 인간의 합리성을 불신하며 반(反)예술, 반도덕을 표방하는 급진적인 예술운동이었다. 마르셀 뒤샹의 명품 가방 사은품에 포함된 수염 달린 모나리자 ‘L. H. O. O. Q’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대표되는 화가의 천재성을 비웃는다. 알파벳 ‘L. H. O. O. Q’는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그 여성의 엉덩이는 뜨겁다’라는 뜻이 된다. 뒤샹의 동료였던 화가 피카비아는 ‘L. H. O. O. Q’를 ‘마르셀 뒤샹의 다다 그림’이라 불렀다.

레디메이드는 단어의 본래 의미처럼 대량생산된 물건(object)들을 선택해 미술 작품의 ‘오브제’로 변형시키는 새로운 미술 개념이다. 1917년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 ‘샘’ 하나만 생각하자면 젊은 작가의 치기 어린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마르셀 뒤샹은 그 이전부터 기존의 미술 창작 방법이 진부하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를 그렸던 1912년 이후 ‘붓질의 절필’을 홀로 선언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전거 바퀴’(1913)를 시작으로 ‘병걸이’(1914), ‘부러진 팔에 앞서’(1915), ‘빗’(1916) 등 레디메이드 작품을 만들었다.

인상파, 야수파, 미래파,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입체파로 이어지는 회화의 흐름은 그 유파의 속성이 어찌되었든 간에 미술가의 예리한 시선과 숙련된 손놀림으로 사물의 본질을 2차원의 평면, 혹은 3차원의 조각품으로 재현하는 수공예 작업이다. 하지만 마르셀 뒤샹의 방점은 ‘손’이 아니라 ‘정신’에 찍혀 있었다. “삶은 다른 곳에 있기에 모든 사람이 손으로 노동을 하는 이 세상에서 나는 결코 내 손을 갖지 않으리라”고 말했던 시인 아르튀르 랭보처럼 마르셀 뒤샹은 미술을 위해 손을 혹사시키는 일을 중단했다. 그리고 기계적인 이미지와 대량생산되는 물건들, 그리고 복제기술로 시선을 돌렸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위한 설명서’는 레디메이드를 사진술에 비유한다.

“어떤 순간에(그날, 그때, 그 시간에) 찾아온 계획에 의해 ‘레디메이드에 새겨 넣는 것’ -레디메이드는 (모든 종류의 지연(delay)과 함께) 나중에 나타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의 문제다. 이는 스냅 사진의 효과와 같다. 어떤 사건을 전달하는 말이 아니라 그때, 그 시간이 중요할 따름이다. 이는 일종의 만남(rendezvous)이다. -레디메이드를 위한 정보로서 당연히 날짜와 시간과 분을 기록해야 한다. 레디메이드의 특징들 역시 마찬가지다.”(돈 애즈, 닐 콕스, 데이비드 홉킨스 지음, <마르셀 뒤샹: 현대 미술의 혁명가>, 시공아트, 194쪽)

레디메이드 설명서에 따르면 기성품을 오브제로 선택하는 기준은 미적인 즐거움이 아니다. 레디메이드의 선택은 시각적 무심함에서 발생한 어떤 마주침이다. 바라보는 것이 즐거울 까닭이 없는 남성 소변기 ‘샘’과 마르셀 뒤샹의 만남이 이런 순간이었다. 무심한 마주침은 너저분한 넝마가 나뒹굴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사진가의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가가 포착해낸 기이한 이미지는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한 어떤 마주침의 순간인 것이다.

일식을 구경하는 파리의 시민들, 1912. / 으젠느 앗제, 뉴욕현대미술관

일식을 구경하는 파리의 시민들, 1912. / 으젠느 앗제, 뉴욕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의 체스 친구였던 만 레이(Man Ray)는 사진의 초현실주의적인 속성을 알아차렸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던 외젠 아제(Eugene Atget)가 찍은 파리의 풍경은 초현실적이었다. 새벽의 텅 빈 뒷골목, 장님 소녀와 거리의 풍금 연주자, 담배를 들고 포즈를 취한 성매매 여성, 그리고 거리의 풍경이 반사된 상점 진열장의 마네킹들. 30년 동안 외젠 아제가 무심히 찍었던 사진들은 파리의 실재 풍경과는 달라 보였다. 만 레이는 제목을 모른다면 어떤 장면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외젠 아제의 ‘일식(Eclipise)’ 사진을 1926년 잡지 ‘초현실주의 혁명’의 표지에 실었다.

초현실주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에 시작됐다. 1917년 초연된 <티레시아스의 유방>의 희곡을 쓴 프랑스 작가 기욤 아폴리네르는 서문에 ‘초현실주의’라는 새로운 형용사 단어를 써넣었다. 주인공 테레즈가 자신의 유방을 떼어내어 남자인 티레시아스가 된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초현실주의라는 개념으로 현실과 실재의 세계와 독립전쟁을 선포한 것은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었다. 그는 초현실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아폴리네르에게 경의를 표하며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했다.

“초현실주의. 남성 명사. 순수 상태의 심리적 자동운동으로, 사고의 실제 작용을, 때로는 구두로, 때로는 필기로, 때로는 여타의 모든 수단으로, 표현하기를 꾀하는 방법이 된다. 이성이 행하는 모든 통제가 부재하는 가운데, 미학적이거나 도덕적인 모든 배려에서 벗어난, 사고의 받아쓰기.”(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미메시스, 90쪽)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이 행하는 모든 통제”로 억눌려 왔던 광기, 환상, 백일몽, 신경증, 히스테리 등의 영역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꿈을 해석한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과 자유연상법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무념무상 혹은 반수면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유일한 길잡이로 삼아 재빨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자동기술법’으로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포착했다.

앙드레 브르통은 1926년 10월4일 파리의 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나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동기술법으로 써내려갔다. “포즈를 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과 같은” 자동기술의 기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브르통은 작가의 소실점을 일상적인 경계 너머로 멀어지게 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쓸모없다고 공격한 장식적인 묘사를 없애기 위해 많은 사진과 삽화를 소설 <나자>에 첨부했다.

소설 <나자>에 수록된 ‘에로즈 셀라비(Rrose Selavy) 사진, 1921. / 만 레이,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설 <나자>에 수록된 ‘에로즈 셀라비(Rrose Selavy) 사진, 1921. / 만 레이,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설 <나자>에 첨부된 사진들 중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만 레이가 찍은 마르셀 뒤샹의 초상 사진이다. “몇 가지 수수께끼 같은 ‘말장난(Rrose Selavy)’을 통해 뒤샹에게서…”라고 설명이 적힌 사진은 뒤샹의 여성 자아인 에로즈 셀라비가 모피털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장면이다. 무의식에 침잠해 있던 성적인 욕망이나 정체성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마르셀 뒤샹이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제작한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1915~1923)는 그의 성적인 욕망이 투사된 그의 대표작이다.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의 해석은 정신분석학만큼이나 쉽지 않다. 신부는 원통 모양의 기계적인 이미지로 표현됐고, 독신남의 욕정 역시 초콜릿 분쇄 기계로 형상화됐다. 캔버스를 대신해 유리판을 밑바탕으로 사용한 것은 카메라 렌즈, 사진의 네거티브, 원근법의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1912년 캔버스에 그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 역시 역동적이면서도 해체적인 기계의 이미지였다. 속도감과 운동성에 탐닉했던 ‘미래주의’자들과, 사물을 여러 시점으로 파악하려던 ‘입체주의’자들은 마르셀 뒤샹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뒤샹은 움직이지 않았다. 1946년 뉴욕현대미술관 회보에 수록된 ‘제임스 존슨 스위니가 엮은 뒤샹의 말’에는 달리는 말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포착한 사진술인 ‘크로노포토그래피’를 익히 알고 있었다는 마르셀 뒤샹의 말이 기록돼 있다.

영화의 전신이 되는 연속 촬영기법인 크로노포토그래피로 찍은 사진은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를 그린 마르셀 뒤샹은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릿지가 촬영한 말의 연속사진을 알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답변했다.

영화의 전신이 되는 연속 촬영기법인 크로노포토그래피로 찍은 사진은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를 그린 마르셀 뒤샹은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릿지가 촬영한 말의 연속사진을 알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답변했다.

런던 테이트 미술관의 큐레이터 매슈 게일은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등장인물이 스타카토식 동작으로 걸어 다니던 영화의 시대와 흑백사진의 시대에 속했던 동향들”이라며 당시에 유행하던 이미지 복제술을 이야기했다. 복제기술에 대한 반응은 상반됐다.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은 “기계복제 시대”라고 시대를 진단하며 사진 복제기술에 의한 아우라의 상실을 아쉬워했다. 반면 마르셀 뒤샹은 최첨단 이미지 복제술을 끌어안았다. 오브제와 그림 등을 축소 복제해 ‘여행가방 속 상자’에 넣고 서명을 하는 마르셀 뒤샹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뒤샹은 그의 서명이 새겨진 복제품이 많아질수록 작품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미술시장의 현상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태생부터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에 ‘대체 불가 토큰(Non-Fungible Token·NFT)’을 삽입해 값을 매기는 새로운 미술시장이 성행하고 있다. 원작의 복제를 즐겼던 마르셀 뒤샹은 NFT 미술시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자신의 원작 복제 프로젝트 ‘여행가방 속 상자’의 제작 노트에는 ‘동일한 것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어떤 가능성’ 등을 설명하는 ‘앵프라맹스(infra-mince)’라는 신조어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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