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없는 ‘로컬식탁’은 어떻게 탈정치적 식탁이란 허상을 제시하나

위근우 칼럼니스트

서울 한복판에 앉아서 ‘지역 특산물’을 외치다?

지난 2월28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MBC <로컬식탁>은 “현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 로컬 음식부터 ‘로컬리안’들의 먹는 방법까지 완벽 재현하는 고품격 딜리버리 미식 토크쇼”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첫 화 여수(아래 사진)에 이어 2화 부산의 음식을 다뤘다. MBC 제공

지난 2월28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MBC <로컬식탁>은 “현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 로컬 음식부터 ‘로컬리안’들의 먹는 방법까지 완벽 재현하는 고품격 딜리버리 미식 토크쇼”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첫 화 여수(아래 사진)에 이어 2화 부산의 음식을 다뤘다. MBC 제공

로컬 없는 로컬식탁. MBC 새 예능 <로컬식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맷은 매우 단순하다. 이상민, 배성재, 주우재, 하석진 등 네 명의 남성 진행자와 역사강사 최태성을 비롯해 지역과 음식에 대한 지식을 담당하는 패널들이 지역 별미와 술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먹방’형 토크쇼다. 이처럼 지역 특산물을 서울의 스튜디오로 공수해 즐기는 대신, 정작 로컬의 풍경은 지역 MBC에서 제공하는 자료화면으로 대체하는 형식은 아무 고민 없이 스스로 제목을 배신한다는 점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로컬을 구성하는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맥락과 그 맥락을 삶 안에서 지켜오는 지역민들은 어디에 있는가. 당장 대표적인 로컬 음식 소개 프로그램인 KBS1 <한국인의 밥상>과 EBS1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호스트들은 직접 해당 지역에 가서 재료를 채집하고 음식을 만드는 지역민들과 소통하며 말 그대로 로컬리티의 맥락 안에서 해당 음식을 소개하고 즐긴다.

‘로컬 식탁’ 내세운 먹방 토크쇼
지역과 주민은 온데간데 없고
생산·손질·유통 생략한 완성품만
탈맥락화된 방식으로 로컬 소비

플랫폼 기업과 협업 형식이지만
식탁 위 배송만 있고 노동은 소외

물론 <로컬식탁>의 문제는 제목과 형식의 비일관성에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역을 주변부이자 타자화된 관광지로 소비하는 수도권 중심의 한국 사회와 미디어의 일관된 관점을 드러내기에 문제적이다. 앉은 자리에서 전국 각지의 음식을 맛보는 걸 시비하는 게 아니다. 그 앉은 자리의 기본값이 서울이며, 각 로컬은 서울이라는 중심지의 미식가들을 위해 재료를 공급하는 하위 파트너로 설정된 것이 잘못되었다. 여기엔 호남 출신 기자 조귀동의 책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말하는 “서울이 치킨을 소비하고, 대구가 치킨 회사를 만든다면, 전북은 치킨 원가의 10% 남짓인 닭을 길러 납품”하는 지역과 수도권 사이의 위계가 전제된다.

삼치회와 해물삼합, 서대회 무침 등이 등장한 첫 화 ‘여수 편’에서 여수라는 공간의 특수성은 김 위에 삼치회와 간장, 마늘, 고추를 얹어 먹는 자칭 ‘찐 로컬 방식’으로 등장한다. 실제 현지인의 방식일 것이며, 높은 확률로 맛있을 것이다. 다만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선 전남 고흥의 삼치 골목에서 방금 잡은 삼치를 나르는 사장님과 삼치의 크기와 연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식당까지 들어가 주방에서 삼치회를 간장에 찍어 김에 싸 먹고 귀향 후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의 사연을 듣는다. 해당 회차에선 나로도 어민들의 배를 세척하고 페인트를 칠하며 53년째 어민들과 함께하는 노부부가 등장해 자신들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횟감으로 쓰는 야구방망이만 한 ‘빠따’ 삼치가 서울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선 삼치 잡는 어선을 타는 누군가의, 그 어선을 관리하는 누군가의, 잡은 삼치를 손질하는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하며 그 노동의 주체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공간 안에 퇴적된 삶의 두께가 로컬리티(locality)다.

그걸 꼭 알아야 하느냐면,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에서 이미 기울어진 수도권 중심의 세계관을 한 번 더 강화하는 건 지상파의 책무를 배반하는 게 맞다. 생산부터 손질, 유통의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진행자들 앞에 도달한 완성품으로서의 로컬 식품으로부터 정작 로컬은 소외된다. 독보적 어류 칼럼니스트인 김지민이 여수에서 많이 나는 어종에 대한 박학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더라도 그러하다. 마르크스는 소외를 자신에게 속한 무언가로부터 분리되어 그에 대한 제어권을 상실한 것으로 보았다. 식자재 생산자이자 음식문화의 기여자인 로컬이 삭제되고 주변화될 때, 자신들이 만든 ‘로컬식탁’의 가치로부터 그들은 소외된다. 단지 ‘찐 로컬 방식’을 소비하는 서울의 중산층 남성들만이 맛과 즐거움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오늘 밤 미식 배송’이라는 노골적인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식재료 배송 서비스인 마켓컬리의 제작 협찬 및 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로컬식탁>의 형식에 대한 변명이 돼주진 못한다. 그보단 마켓컬리를 비롯한 서비스에서 플랫폼노동이 지워지는 방식과 <로컬식탁>의 형식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배송 서비스 없는 세계는 상상하기 어려운 팬데믹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이들 노동엔 흔적이 남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 문밖에서 포장된 상품을 만나는 새벽 배송을 비롯해 비대면 배송이 표준이 되며 이제 상품은 배송 노동의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소비자를 만난다. <로컬식탁> 2화에서 ‘2020년 2월 서울’을 배경으로 퇴근한 이상민이 집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들고 들어가며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프롤로그 장면은 노골적인 마켓컬리 PPL에 가깝지만, 또한 현재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그 존재가 비가시화됐다는 역설적 방식으로. 누구도 상품이 저절로 집 앞에 왔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갈수록 그 노동으로부터 피와 살로 이뤄진 구체적 인간을 떠올리기 어려워지고 있다. 고용 안정성은 보장되지 않고, 의사소통이 아닌 알고리즘으로 통제되는 플랫폼노동자들은 갈수록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존재가 되어 시민과 시민으로서 구체적 삶의 연결고리를 잃는다. 이것은 <로컬식탁>에서 지역민들과 서울 사이 삶의 연결고리를 지우는 방식과 동근원적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로 여행의 자유를 잃어가는 우리들’을 알리바이로 내세우는 자막은 구차하기보단 뻔뻔하고 조금은 사악하다. 과연 그 노동들로부터 분리된 ‘우리’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적어도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배송 노동의 현장에서 뛰는 이들은 포함되지 못할 듯하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섭외부터 구성, 대화의 질 모두 안일하고, 시청률은 2%도 나오지 못하는 실패한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코로나 시대, 대표적인 플랫폼기업과 협업하며 로컬을 철저히 탈맥락화된 방식으로 소비하는 지상파 방송의 모습은 차라리 징후적이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강우성 역)에서 “팬데믹은 시간이 갈수록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둘러싼 전 지구적 전망들이 실제로 충돌하게 만들었다”고 지난 2년을 회고한다. <로컬식탁>과 MBC에 해야 할 질문은 이거다. 팬데믹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삶과 노동에 기대어 그들을 호명하고 기억하지 않는 서울의 미식가만을 ‘우리’로 상상하는 방송은 과연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다음주에 서울 중구를 다룬다지만 이러한 비대칭적 인식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진다. 예고편에서 주우재는 “지금의 중구는 많이 다르다”며 ‘힙(Hip)’과 ‘젊은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든다. 아마도 ‘힙지로’로서의 을지로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각이 노가리 골목을 비롯한 을지로의 자생적 문화 공간을 관광지화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킨 주범이다. 인쇄 골목 노동자들이 퇴근길에 즐길 생맥주를 팔던 노가리 골목 원조 OB베어는 명도소송으로 언제든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앞서 인용한 프로그램들도 불편한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적어도 거리를 지키는 구체적 개인들에 대한 존중은 잊지 않았다. 기름밥 먹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 장사로 만들어진 서울 중구의 로컬식탁으로부터 누적된 미시사를 쏙 제거한 채 스튜디오에서 쪽갈비와 평양냉면을 먹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경험적 세계로부터 분리시켜 내놓는 이 탈정치적인 식탁은 그래서 실은 너무나 정치적이다. 탈정치를 가장한 무관심과 배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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