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아 타이거즈 팬의 한화 이글스 다큐멘터리 ‘클럽하우스’ 관람기

위근우 칼럼니스트

“야구도 인생도 내일은 다르다” 매일져리그·보살의 ‘믿음’ 직관

지난달 24일 공개된 왓챠의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는 2021시즌을 포함해 약 1년2개월, 총 141경기를 따라가며 2020시즌 KBO리그 최다 연패 타이기록인 18연패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성적을 거뒀던 한화이글스의 ‘꼴찌 탈출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왓챠 제공

지난달 24일 공개된 왓챠의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는 2021시즌을 포함해 약 1년2개월, 총 141경기를 따라가며 2020시즌 KBO리그 최다 연패 타이기록인 18연패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성적을 거뒀던 한화이글스의 ‘꼴찌 탈출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왓챠 제공

10년 전 5월이었다. 기아 타이거즈 레전드 선수인 이종범의 은퇴식을 직접 보러 광주행 기차를 탔다. 중고나라를 통해 표를 수소문했고, 고맙게도 어떤 분의 호의로 정가에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디테일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은퇴 경기가 아닌 은퇴식이었고 이종범은 뛰지 않았다.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의 첫 등판이었고, 어쨌든 경기는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에야 이종범은 그라운드에 등장해 소감을 밝혔고 카퍼레이드로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차가 내가 있던 내야지정석 근처까지 왔지만 별로 울진 않았다. 4월 초 자취방에서 혼자 라면을 먹다 은퇴 기자회견을 보며 충분히 울었으니까. 한화 이글스의 2021년 시즌을 담은 왓챠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클럽하우스> 첫 화도 이종범처럼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슈퍼스타 김태균의 은퇴식으로 시작한다. 목이 멘 한 팬은 “항상 감사했습니다”라는 한마디도 힘겹게 말했다. 한밤의 은퇴식에서 김태균은 “팬들이 염원하시는 정상에 서는 그날이 꼭 올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라며 팀과 팬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Rebuilding(리빌딩)’이라는 1화 타이틀이 지나간 후, 이글스 전략팀장은 인터뷰를 통해 밝힌다. 솔직히 팀 리빌딩을 위한 가장 큰 난제는 김태균이었노라고. 그의 말대로 “혁명 수준의 뭔가”가 필요한 시점이긴 했다. 2018년 잠깐 반짝하며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2021시즌 직전까지 9년간 8-9-9-6-7-8-3-9-10위를 기록했으니까. 침체기에서 벗어나 강팀의 토대를 쌓기 위한 한화 이글스의 선택은 리빌딩, 즉 자체 유망주 육성이다. 젊은 선수들에겐 경험을 쌓을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고, 나이 든 베테랑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래서, 그 혁명은 성공했을까.

한화 이글스 2021년 시즌 담은 6편, ‘꼴찌’ 스포일러 알고 보니 어떤 포장을 해도 가설될 수밖에
‘리빌딩’편, 혁명 실패로 끝나지만…마지막 편 ‘우리 만의 길’에선 매 경기 다르다는 믿음 보여줘
다큐가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올 시즌 144경기 꼬박 치르며 포기 않는 팀의 저항 의지 아닐까

2022년 프로야구 시즌 개막 즈음 공개된 <클럽하우스>는 존재 자체가 이미 스포일러인 시리즈다. 지난 2021시즌에도 한화는 10위를 기록했다. 야구팬이라면 모두가 아는 결말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6개 에피소드를 굳이 봐야 하나 싶을 수도 있다. 1화에서 외국인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선임하고, 그가 어린 선수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강조하며, 20년 만에 한화 이글스는 시범경기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의 순위를 모르는 척, 그 모든 희망의 전조에 두근거리며 6화의 결말을 기대할 수는 없다. 동명 영화의 원작이 된 마이클 루이스의 책 <머니볼>(김찬별, 노은아 역)은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2002년 여름 20연승의 순간을 담아낸 바 있다. 반면 <클럽하우스>에서 이글스는 연승은커녕 10연패의 사슬을 끊는 게 최대 과제다. 시즌 막바지, 정민철 단장과 대표이사, 전략팀이 일희일비하는 순위 그래프는 와일드카드 획득이 가능한 5위까지의 거리가 아닌, 당시 9위 기아와의 게임차다. 2021년 4월, 5월의, 8월, 9월의 그들은 무엇을 믿거나 믿고 싶었을까. 다큐멘터리가 단순히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투명한 기록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의 사후적인 재구성이라면 2022년의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클럽하우스>는 2021년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 에피소드 제목이자 해당 시즌 한화 이글스의 캐치프레이즈는 ‘This is our way(이것이 우리의 길)’이다. 길이라는 상징의 핵심은 방향성에 대한 믿음이다. 2년 연속 10위지만 지난해의 10위와는 걸어온 길이 다르다는 믿음, 이 길은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 길의 저편에서 도래할 미래에 대한 믿음.

물론 팬들은 알고 있다. 매 시즌 초 거의 모든 구단은 팬들을 향해 올해는 다를 거라는 공수표를 남발한다. 지난해 한화와 함께 맨 뒷자리를 향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엉망진창인 시즌을 보냈던 기아도 마찬가지다. 에이스 양현종이 돌아왔고, FA 최대어 나성범을 6년 150억원에 영입했으며, 한화로 간 문동주와 함께 최고 유망주로 꼽힌 김도영을 1차 드래프트에서 지명했다. 시범경기에선 전통의 인기 구단 엘지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와 공동 1위를 차지했고, 신인 김도영은 4할 타율을 기록했다. 올해는 다르리라 기대할 많은 근거가 있었고, 엘지와의 개막전에서 타선의 침묵과 중요한 순간마다의 수비 실책으로 0 대 9 영봉패를 당했다. 통탄할 일이지만, 또한 매년 겪는 연례행사기도 하다. 올해는 다를 거라는 기대와 설마 되겠냐, 사이에서 그래도 희망을 선택하고 배반당하는 경험. 그런데 이번 시즌 한화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클럽하우스> 6화에서 특급 기대주 문동주와의 계약에 함박웃음을 짓긴 했지만, 스토브리그 중엔 굉장히 수준 높은 FA들, 특히 한화의 아킬레스건인 외야수들이 시장에 나왔음에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안에서 지적하듯 리빌딩으로 성공한 팀의 공통점은 자체적으로 주요 선수 3~4명을 육성하되 외부 FA 등으로 검증된 베테랑을 추가하는 것이다. 우주의 기운이 도왔던 2017년 기아의 우승도 기본적으로는 기존 선수들의 성장과 FA 최형우 영입이라는 공식을 따랐다. 존중받고 떠난 김태균과는 달리 선동열 감독에 의해 이종범이 쫓기듯 은퇴한 이후 한동안 기아가 구심점을 잃고 얼마나 흔들렸는지도 좋은 반면교사다. 정민철 단장이 어느 정도의 장기적 계획을 짜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또한 그것이 나중에 모두를 놀라게 할 수도 있지만, 당장 팬들에겐 지켜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속아줄 약속이 필요하다.

<클럽하우스>가 그러한 약속을 대체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다. 수베로 감독 특유의 수비 시프트나, 팀의 미래인 정은원, 노시환에게서 확인한 가능성, 국가대표가 된 김민우의 성장, 새로운 주장으로서 한 단계 성숙해진 하주석의 책임감 등 기대요소들이 다큐멘터리 곳곳에 박혀 반짝이긴 하지만, 어떤 포장을 해도 이것은 지난해 10위를 한 팀에 대한 기록이다. 그 모든 기대요소가 이번 시즌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한다면 세상을 놀라게 할 수도 있겠지만 다큐멘터리 안에서 박찬혁 대표이사가 냉정히 말하듯 “제일 인정할 수 없는 게 희망적 가설로 판단하는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클럽하우스>를 보며 야구팬으로서 어떤 두근거림을 느낀다면, 2년 연속 10위라는 명백히 실망스러운 결과 앞에서도 적어도 팀이 먼저 포기하진 않겠다는 전망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실패할 자유’란 단순히 실패해도 괜찮다는 낙관이 아니라 실패라는 명백한 사실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시즌 한화가 여전히 하위권일 확률이 높다고 볼 꽤 많은 근거들이 있다.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신 저항할 수는 있다. 약체로 평가받는 팀이 그럼에도 꼬박꼬박 144경기를 치르는 건 패배에 대한 합리적 예측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합리적 근거와 진실에 저항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각 구단, 그것도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의 팬들이 그럼에도 야구를 보고 응원하는 건 바보라서가 아니다. 구단은 10개고 우승은 한 팀만 할 수 있다. 모두의 염원이 이뤄질 수 없는 게임이다. 야구팬은 이런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또한 그 진실을 그대로 삼키면 어떠한 사랑의 가능성도 남지 않는다는 것 역시 누구보다 잘 안다. 꼴찌여도 사랑할 수는 있지만 꼴찌가 될 걸 받아들이며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인과의 끝에 어떤 필연적 결과에 도달하리라는 기대가 아니다. 그건 귀납적이고 정적인 추리일 뿐이다. 믿음은 오히려 불가능해 보이는 미래를 위해 헌신할 내적 근거에 가깝다. 야구에서든, 삶에서든, 대부분의 경우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승리하더라도, 오직 믿음에 의한 헌신만이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예고하며 약자들의 패배를 유예한다. 이종범이 떠나고 김태균이 떠나고, 분노하거나 슬프더라도, 야구는 계속되고 삶은 계속되며, 실망할 백만 가지 근거 앞에서도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믿고 헌신할 자유가 있다. 시즌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Today`s HOT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