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범죄자의 팬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성덕’…과연 ‘실패한 덕후’일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사고 친 ‘최애’로 상처 입은 마음…그럼에도 또 다른 ‘나’의 사랑 찾아

‘최애’ 가수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음악 프로그램 방청권을 구하던 팬은 졸지에 범죄자의 팬이 되어 법정 방청권 배부 안내를 찾아보는 처지가 됐다. 성범죄자가 된 가수 정준영의 팬이었던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이다.

‘최애’ 가수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음악 프로그램 방청권을 구하던 팬은 졸지에 범죄자의 팬이 되어 법정 방청권 배부 안내를 찾아보는 처지가 됐다. 성범죄자가 된 가수 정준영의 팬이었던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이다.

‘최애’ 가수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음악 프로그램 방청권을 구하던 팬은 졸지에 범죄자의 팬이 되어 법정 방청권 배부 안내를 찾아보는 처지가 됐다. 성범죄자가 된 가수 정준영의 팬이었던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이다.

‘최애’ 가수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음악 프로그램 방청권을 구하던 팬은 졸지에 범죄자의 팬이 되어 법정 방청권 배부 안내를 찾아보는 처지가 됐다. 성범죄자가 된 가수 정준영의 팬이었던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팬들끼리, ‘최애’(가장 좋아하는 대상)가 누구인지 불문하고 주고받는 덕담이 있다. “모쪼록 여러분의 최애가 사회면 데뷔하지 않고… 법원 프리뷰 뜰 일 없기를….” 그만큼 남자 유명인이 범죄를 저질러 사회면에 보도되고, 법원에 출두하는 일이 잦다는 뜻이다. 최지은 기자의 책 <이런 얘기 하지 말까?>(콜라주, 2021)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최애거나 최애였던 ‘오빠’들의 음주운전, 성 매수, 성폭력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내가 쏟았던 열정은 환멸로 돌아왔다. 너무 많은 엔딩이 사회면이었다.”(52쪽) 9월28일 정식 개봉한 영화 <성덕>은, 성범죄자가 된 가수 정준영의 팬이었던 오세연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가슴에 싸늘하게 꽂히는 한 줄 요약.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OPPA! 팬들 마음이나 훔치라니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졸지에 범죄자의 팬이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즉시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제목 ‘성덕’은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로, 좋아하는 대상이 기억해주거나 본업 등에서 성공해 가까워질 기회를 얻은 팬을 일컫는다. 오 감독은 한복을 입고 사인회장에 나타나 가수에게 눈도장을 찍고, 방송까지 함께 출연했던 ‘성덕’이다. 하지만 스타가 범죄자로 전락하면서, ‘실패한 덕후’가 된다. 이제 좋아했던 과거도, 영광이었던 영상도, ‘흑역사’이자 조롱거리이다. 서글픈 사실은 이러한 경험이 특수하거나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는 오 감독처럼, 최애가 범죄를 저지른 후 ‘사랑한 죄’로 고통받는 10여명의 팬을 찾아 나선다.

좋아했던 ‘오빠’들의 잇단 일탈에
팬들도 함께 흑역사·조롱거리로
스타를 ‘사랑한 죄’로 고통과 혼란

한때 위안 받았던 순간의 기억은
침범 받지 않을 여러분의 것이죠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세상의 시선에 지나치게 위축 않고
‘좋아한 시간’ 나의 역사로 존중을

우사미 린의 소설 <최애, 타오르다>(이소담 역, 미디어 창비, 2021)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최애가 불타버렸다.” 한국에서 쓰는 “사고 쳤다”와 비슷한 용례다. 소설의 화자 아카리가 좋아하는 아역배우 출신의 아이돌 멤버 우에노 마사키는 팬을 때렸다. 팬을 싫어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속칭 ‘빠혐’은 종종 아이돌이 범죄보다 더 용서받지 못하는 7대 죄악에 속하는데, 때렸다면 범죄이기까지 하다.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괜찮아?” 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누군가의 안녕이 ‘나’의 안녕과 긴밀하게 연동되는 것이 바로 덕질. 손끝 하나 스쳐본 적 없는 사람이 행복하고 안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최애가 친 사고의 소용돌이 속으로 ‘나’를 즉각 끌고 들어간다. 좋아하는 대상이 범죄를 저지르면 팬들도 고통받는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대상의 일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괴롭다. 둘째, ‘나의 사랑’이 그의 ‘범죄를 가능케 한 권력’에 일부 기여하지 않았을까 의심스럽다. 특히 성범죄는 젠더폭력이기 때문에 여성 팬이 여성 피해자에게 부채의식과 ‘연대책임’을 느끼게 된다.

<성덕>에서 한 팬은 말한다. 좋아하는 것 그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같았다고. 다른 팬은 단호하게 말한다. 범죄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진 뒤에도 아직 좋아하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 내 친구라면 정신 차리라고 말할 거라고. 하지만 감정은 칼로 무 자르듯 싹둑 끊어지는 게 아니고, 인간은 옳은 판단이라는 걸 알면서도 즉각 행동에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아직 남아 있는 팬들이 궁금해서 시작했던 영화는 솔직하고 과감하게, 혼란스러운 팬의 마음을 파고든다. 추억 장례식을 하기 위해 감독과 조감독(승리의 팬이었다)은 그동안 모았던 물건을 꺼낸다. 언제 사인을 받았는지,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오래전 사진 속 어린 얼굴을 반가워하다 ‘라떼는’ 굿즈를 직접 손으로 그림 그려서 만들었다는 추억까지 방울방울이다. 그리고 조감독은 말한다. 지금은 범죄자지만, 그때의 승리를 미워할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해놓고 본인도 화들짝 놀란다. 그런데 어떤 마음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오빠’는 범죄자가 되었고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지만, 좋아했던 시간과 감정은 나의 역사이자 일부이기 때문이다. 신속하게 ‘손절’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감정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이는 범죄 사실을 직시하고 피해자에 연대하는 행위와 충돌하지 않으며 병행 가능하다.

감정 연구의 해석 패러다임을 참조한 강보라·서지희·김선희의 연구는 팬덤이 감정을 중심으로 어떤 관계성을 맺고, 어떤 집합적 양태를 형성하는지, 그리고 개인과 집합 간의 유동성이 어떤 지점에서 발견되는지 분석한다. 아이돌 팬덤 안에서 덕질은 팬들 간 친분 유지의 기능과 ‘자기만의 방’으로서의 기능을 제공하며 생명력을 연장해왔다는 선행 연구를 경유하여, 생애 과정으로서 아이돌 팬덤을 경험한 성인 팬에게 덕질이 “일상의 엔터테인먼트”(13쪽)가 됐다는 점을 확인하면 왜 ‘어린 여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덕질의 연령대가 점점 확장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이돌에 대한 상상적 대상화를 통해 자유롭고 주체적인 관계를 형성한 팬들은 다른 여성 팬과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집합적 감정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나아간다.

이러한 ‘감정 공동체’로서의 팬덤은 팬들이 가진 개별적인 맥락에 따라 분화 또는 재구조화되며, 이때 발생하는 많은 정동은 “때로 아이돌이라는 대상만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향하는”(41쪽) 감정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향하는 감정.’ 오 감독은 정준영을 좋아하면서 처음으로 서울에 가보고, 함께 정준영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러 다른 지역에도 방문하고, 기타를 구입하고, 편지를 쓰며 일기를 갈음했다. 스포일러라서 익명으로 처리하지만, ○○○를 좋아했던(이 부분에서 관객들의 탄식이 터진다) 오 감독의 어머니는 오 감독이 혼자 있어야 했던 밤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정준영에게 고마웠던 적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하루하루, 그리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지 않으냐는 어머니의 말에서,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지 선명해진다.

덕질에서 파생되는 감정과 마음의 주인은 ‘좋아하는 대상’이 아니라, ‘좋아하는 주체’이다. 여성을 폭행하고 불법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정바비와 ‘가을 방학’이라는 밴드로 활동했던 계피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누가 곡을 썼든 제가 불렀다면 저의 노래입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최선을 다해 한 인간으로서 제 경험과 감정을 담아 노래해왔기 때문입니다. (…) 마찬가지로 누가 쓰고 누가 불렀든, 노래로 위안받았던 순간의 기억은 무엇에도 침범받지 않을 오로지 여러분의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자기 수용에는 성찰과 자기비판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에 자아를 의탁하여, 잘못된 신념으로 가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크고 작은 물의를 일으키거나,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에게도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는 팬들이 있다. 여성 팬이 적극적·소극적인 2차 가해, 온라인 괴롭힘을 저지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성덕>에서도 오 감독이 정준영의 최초 성범죄 사실을 보도한 박효실 기자를 비난했던 일기를 발견하고, 직접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당시 조직적으로 기자를 공격한 팬들도 있었다. 기자와의 만남을 통해 성찰 없는 애정의 다른 ‘장르’를 발견한 오 감독이 향한 곳은… 박근혜 석방 시위 현장이다. 그렇지. 그쪽도 여러 가지 의미로 최애가 불타버리긴 했지. 이 지점에서 영화는 ‘좋아하는 대상 때문에 상처받은 나’를 넘어서, 좋아하는 행위의 윤리적 의미를 고찰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불완전한 인간을 열렬히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끝없이 실망하고, 최애가 사고를 치고, 나의 상상이 드높여 놓은 최애와 현실이 다름을 절절히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코미디언 김숙도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았던 첫사랑(과거의 최애)이 교도소에 들어가야 해서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아시는지? 그럼에도 영화의 마지막, ‘잔뜩 데었던’ 팬들은 다시 또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성덕>은 뜨겁게 사랑한 후의 상실과 실패를 애도하고 다시 사랑하는 용기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모쪼록 실패한 덕후들이, 잘못한 남자보다 남자 보는 눈 없는 여자를 조롱하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마음껏 사랑하며, 그 여정이 만들어가는 ‘나’에 집중하길. 아리아나 그란데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Thank you, next.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참고자료: 강보라, 서지희, 김선희, <20대 여성 팬덤의 감정 구조와 문화 실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미디어, 젠더문화 제33권 제1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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