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무작정 걷던 내 발자국을 확인한 순간

박선민

당선소감

[2023 경향 신춘문예] 길을 잃고 무작정 걷던 내 발자국을 확인한 순간

도쿄에 도착한 첫날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서툰 언어로 길을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을 실천할 손짓, 발짓은 또 용기가 없었습니다. 제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요. 다행히 출발 전, 사진으로 보았던 건물의 모양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길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걷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첫눈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길을 잃은 걱정보다 첫눈에 설레었던 마음이 더 오래 남은 것 같습니다. 시 쓰는 일을 잠시 접어두면서 선택한 도쿄행이었습니다. 나쁜 버릇 중에 하나는 그게 무엇이든 생각이 깊어지면 무작정 선부터 긋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그곳에서는 단 한 편의 시도 쓸 수 없었어요. 작은 방에 혼자 누워 있을 때면, 가족이나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보다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저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다시 글을 쓰게 된 결심은 생각나지 않아요. 그저 돌고 돌아 다시 이곳으로 온 거 같아요. 시를 쓰는 건 잃어버린 길처럼 모르겠으면서도, 그러나 기어이 찾아가야 하는 곳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당선 소식을 들은 이 순간이 그날의 첫눈 같다면 다행히도 헤맨 내 발자국을 내가 확인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감사한 얼굴들이 많이 생각나는데, 이렇게 이름을 불러도 되는 건지 고민되었어요. 조금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이렇게나마 표현해봅니다. 먼저 아빠, 엄마 저에게 먼 곳을 가르쳐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박시연, 나의 아토씨와 함께 기쁨을 나눌게요.

남진우 교수님, 박상수 교수님, 천수호 교수님, 편혜영 교수님 저를 지도해주신 모든 명지대학교 교수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곁을 함께해주는 우리 지원이랑 지은이 항상 고마워. 미쿠야 고마워. 그리고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를 숙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선민

△1997년 경기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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