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어쩌구···그 영화”의 흥행 이변, 그 저력은

오경민 기자

북미 젊은 세대 호응하며 흥행 견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서 주인공 에블린(양쯔충)은 멀티버스를 이동해 또 다른 자신들을 만난다. 사진은 인간이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것으로 진화한 멀티버스에서의 에블린이다. 워터홀컴퍼니 제공. 사진 크게보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서 주인공 에블린(양쯔충)은 멀티버스를 이동해 또 다른 자신들을 만난다. 사진은 인간이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것으로 진화한 멀티버스에서의 에블린이다. 워터홀컴퍼니 제공.

포스터를 봐도, 예고영상을 보거나 소개글을 읽어도 좀처럼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영화가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에올)>도 그런 영화다. 제목부터 길고 헷갈려서 관객들 사이에서 ‘에브리씽 어쩌구’로 불리기도 한다.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저예산 영화 <에에올>이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미국 10여개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어 몇 달 만에 3000여개 극장에서 확대 상영됐다. 인디 영화를 주로 배급해온 A24 작품 중 처음으로 1억달러의 수익을 넘기며 A24 최고 흥행작이 됐다. 지난달에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인공 에블린 역을 맡은 양쯔충(앙자경)과 남편 웨이먼드 역의 키 호이 콴이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해 2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 제95회 아카데미상(오스카)에서도 <에에올>은 최우수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남우조연상·각본상·음악상·주제가상·편집상 등 10개 부문, 11개 후보로 호명되며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특히 양쯔충은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에에올>의 흥행은 북미의 젊은 세대가 견인했다. ‘정신없다’ ‘이해 안 된다’는 반응도 있지만 국내외를 불문하고 젊은 세대가 열렬히 호응했다. 핫도그 손가락, 말하는 너구리, 새끼손가락으로 하는 쿵후 등 이상한 소재와 설정이 난무하는 독특한 영화는 어떻게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을까.

엄마가 딸을 이해하는 새로운 가족 서사

에블린(양쯔충)은 딸에게 “난 너랑 여기 있고 싶어”라고 말한다. 조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워터홀컴퍼니 제공. 사진 크게보기

에블린(양쯔충)은 딸에게 “난 너랑 여기 있고 싶어”라고 말한다. 조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워터홀컴퍼니 제공.

복스 등 미국 매체는 가족 드라마 장르에서 ‘밀레니얼 부모의 사과 판타지(millennial parental apology fantasy)’가 새로운 서브 장르로 떠오르고 있으며 <에에올>은 이 판타지의 전형이라고 해석했다. 이전에 가족 서사를 다뤄온 작품들은 자식들이 부모 세대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왔는지, 부모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깨달으며 끝을 맺었다면 요즘의 작품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사과하면서 부모와 자식 간 트라우마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먼저 다가가는 ‘밀레니얼 부모의 사과 판타지’ 서사는 최근 <엔칸토> <메이의 새빨간 비밀>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에에올> 역시 레즈비언 딸 조이(스테파니 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에블린이 변화하는 이야기다. 에블린은 조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이의 절망을 이해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바라던 결말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작품 곳곳에 녹인 소수자성

에블린의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여자를 만난다. 에블린은 조이가 자기 기대보다 살이 찐 게, 레즈비언인 게, 몸에 문신을 새긴 게 마음이 들지 않는다. 워터홀컴퍼니 제공. 사진 크게보기

에블린의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여자를 만난다. 에블린은 조이가 자기 기대보다 살이 찐 게, 레즈비언인 게, 몸에 문신을 새긴 게 마음이 들지 않는다. 워터홀컴퍼니 제공.

<에에올>은 아시아계 이민자, 성소수자, 중년, 여성,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소수자 정체성을 작품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였다. 인종, 성별, 성정체성, 정신장애 등 어느 하나를 주제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백인·남성·이성애자 중심의 서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쳤다. 이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중년의 아시아계 여성이 세상과 가족을 절망에서 구하는 영웅이 된다. 영화는 아시아계 이민자나 퀴어 커뮤니티는 물론 인종차별, 성차별 등에 반대하는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얻었다.

대니얼 콴 감독은 에블린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진 캐릭터로 설정했다. 에블린은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특히 세금 처리에서 고충을 겪는다. 영화 초반의 다소 정신없게 느껴지는 대화와 파편적인 화면 등은 에블린의 시선을 따라간 결과다.

신을 믿지 않는 세대에게 필요한 철학

혼돈과 절망을 상징하는 검은 베이글. 워터홀컴퍼니 제공. 사진 크게보기

혼돈과 절망을 상징하는 검은 베이글. 워터홀컴퍼니 제공.

영화는 신을 믿지 않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삶의 철학을 제시한다. 영화에는 혼돈과 절망의 상징인 ‘검은 베이글’이 등장한다. 모든 멀티버스에서 모든 것을 경험한 조이가 만들었다. 베이글을 바라보면 절망에 빠진다.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조이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요즘 세계의 청년들은 하나의 진리나 신을 좀처럼 믿지 않는다. 지난해 애리조나기독교대학의 조사 결과를 보면 베이비붐 세대는 28%가, 밀레니얼 세대는 43%가 “신이 존재하는지 모르거나, 신경 쓰지 않거나,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떤 선택에도 우열, 선악, 의미가 없다고 여기면 조이와 같이 허무주의에 이르기 쉽다.

<에에올>은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는 명제를 부정하지 않고도 어떻게 절망과 무기력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가를 다루며 희망을 제시한다. 유약해 보이는 웨이먼드는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다정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제발 다정하게 대해줘.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라고 에블린에게 말한다. 웨이먼드의 철학을 받아들인 에블린은 조이를 껴안고 세상을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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