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알츠하이머·이인증 사례가 말한다 “자아는 허구”

허진무 기자

기억·인지력 점진적 퇴행 겪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사례부터

감각의 주체감 혼란 겪는 조현방까지

정신과 몸을 나눈 ‘이원론 철학’에

고정불변하는 ‘나’는 있다 되묻다

[책과 삶]조현병·알츠하이머·이인증 사례가 말한다 “자아는 허구”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변지영 옮김|더퀘스트|396쪽|1만9800원

‘나’는 무엇인가.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데카르트는 몸이란 정신(자아)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고 봤다. 자아와 몸을 완전히 분리된 실체로 보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근대 철학의 토대였다. 현대 뇌과학의 관점으로 보면 데카르트의 명제는 틀렸다. 자아는 섬엽피질, 측두정엽, 내측 전전두엽피질 등 뇌신경 프로세스의 종합 결과물이다. 자신이 처한 사회·문화적 환경과도 분리될 수 없다.

영국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의 고문이자 전 부편집장인 언론인 아닐 아난타스와미는 책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에서 코타르 증후군, 알츠하이머, 신체통합정체성장애, 조현병, 이인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유체이탈, 황홀경 간질 등의 정신병리 사례를 통해 자아의 존재와 상실을 탐구한다. 정신(자아)을 몸(뇌)의 위에 두는 통념은 자연스럽게 뒤집힌다.

정신병리에서 찾은 자아의 모습

아난타스와미는 책 전반에서 자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알츠하이머는 뇌의 기억 체계를 이루는 내후각피질에서 이상이 시작돼 기억력과 인지력의 점진적인 퇴행을 일으킨다. 시공간 정보를 담은 일화기억을 새롭게 만드는 능력이 망가진다. 또 일화기억을 자신에 대한 의미기억으로 전환시켜 자신이 누구인지 ‘서사적 자아’를 구성하는 능력도 파괴된다. 그러면 알츠하이머 환자는 자신의 서사가 구성돼 있던 과거의 기억으로 정체성을 구성한다.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이유이다.

알츠하이머 말기 환자의 눈동자를 보면 그 너머에 자아가 있는지 우울한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배우자와의 추억을 잊어버렸고, 자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만약 사람의 기억력과 인지력이 완전히 파괴됐다면 감각능력과 운동기능이 온전하다고 하더라도 자아는 남아 있는 것일까. 아난타스와미는 서사가 형성되기 전부터 몸에 내재돼 경험하는 존재인 ‘주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한다. 몸의 일부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 잘라내고 싶어하는 신체통합정체성장애도 이를 증명하는 사례로 본다. 심지어 자신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코타르 증후군 환자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는 있다.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을 낯설게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조현병은 행위의 주체가 자신이라고 느끼는 주체감에 균열을 일으킨다. 주체감은 뇌의 예측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팔을 움직이기 위해선 뇌의 운동피질이 팔 근육에 명령을 보내야 한다. 운동피질은 뇌의 다른 영역으로도 명령을 복사해 운동의 감각 결과를 예측한다. 실제 감각과 예측한 감각이 일치하면 팔을 움직인 행위가 내 것이라는 주체감을 갖게 된다. 조현병 환자는 이 주체감을 잃고 혼란을 느낀다. 나와 외부 세계 사이의 경계도 무너진다. 그러면 자신의 무의식적 생각들이 타인의 환청으로 들리는 것이다.

자아의 탄생에는 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인증은 현실감을 잃고 꿈을 꾸듯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분리된 관찰자처럼 자신을 느끼는 정신질환이다. 이인증 환자는 감정에 아주 무감각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신체 내부와 외부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통합하는 좌뇌 전방 섬엽의 활동이 저조하다. 인간의 감정이 신체의 감각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정불변하는 ‘나’는 없다

[책과 삶]조현병·알츠하이머·이인증 사례가 말한다 “자아는 허구”

자아가 온전해야 내가 나로서 살아가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아난타스와미가 취재한 가슴 아픈 사례들을 보면 자아가 이처럼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것에 두려운 마음이 든다. 매 순간 다양한 감각의 경험을 통일적으로 지각하는 자아가 실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아난타스와미는 뇌에서도 자아를 관리하는 유일한 영역이란 없으며, 자아는 몸이 지각하는 사회의 영향을 받아 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자아)’는 없으니 집착하지 말라는 불교의 무아론(無我論)을 지지하며 “자아가 대체로 허구적이라는 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뇌 활동의 대부분은 잠재의식에서 일어난다. 뇌과학은 밝혀진 영역보다 미지의 영역이 훨씬 큰 분야로 알려졌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사례, 실험, 이론을 소개해 다소 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아난타스와미는 에필로그에서 뇌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곧 ‘나’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증상을 경미하게 겪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아의 본질에 관한 통찰을 얻음으로써 치료적 도움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통찰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자아에 관한 병이 있는 사람만은 아니다.”

[책과 삶]조현병·알츠하이머·이인증 사례가 말한다 “자아는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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