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 ‘신의 흔적’을 처음 찾는 기쁨…인류 도약의 원동력이 되다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2) 헤우레카 : ‘발견’의 희열

벤자민 웨스트의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을 발견한 키케로’(1804). 로마 최고의 문인으로 꼽히는 키케로는 시라쿠사에 부임해 덤불과 잡초에 묻힌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을 찾아냈다고 한다.

벤자민 웨스트의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을 발견한 키케로’(1804). 로마 최고의 문인으로 꼽히는 키케로는 시라쿠사에 부임해 덤불과 잡초에 묻힌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을 찾아냈다고 한다.

‘발견한다’는 것은 인간의 지적 활동의 절정…원뿔·구·원기둥의 관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는 무덤에 남기고 싶어할 만큼 자랑스러워해

인공지능 핵심기술의 수학적 근간을 이루는 선형대수학에서 아이겐밸류는 행렬변환 후에도 변화가 없이 그 자신으로 남는 고유벡터의 고유값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모든 이들에게 다양하게 다가오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번에 예고한 대로 인공지능의 파고가 지나간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아이겐밸류를 되묻는 우리의 여정은 ‘발견하다’라는 동사로부터 시작한다. 발견한다는 것은 인간의 지적인 활동의 절정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그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있는 과학자들의 온갖 수고가 그 증거일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중요한 동사에 어떤 의미가 담기게 되었는지 고대에서부터 따라가 보려고 한다.

시작하기에 앞서, 발견한다는 행위는 비단 우리가 관심을 쏟고 있는 지적 탐구뿐 아니라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고찰해야 할 주제라는 점을 짚고 싶다. 모태로부터 태어나 이 세상에 언제부턴가 존재하기 시작한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 경위를 찾아 나간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존재하게 된 까닭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는 그 경위를 이해할 만한 수많은 설명들을 만들어 온 역사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때로 어떤 설명은 종교적인 색채가 아주 짙었고, 반대로 어떤 설명은 철저히 더 과학적인 증거들로만 무게추가 기울어졌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철저하게 자신을 초월한 존재로부터 찾고자 했다. 그 외에 달리 누가 인간에게 답을 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서 그런 존재를 만났고, 그 신은 자신을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나는 있다, 나는 나로 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했던 인간이 나는 나로 존재하는, 그래서 존재의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는 초월적 신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이렇듯 그리스도교 전통에서의 신의 발견은 흙으로 돌아갈 존재인 인간(인간의 원형인 아담의 이름의 의미 자체가 흙(아다마)에서 나왔다)과 영원한 초월적 존재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그려낸다. 그러면,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불멸의 명예를 추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고대 그리스의 세계에서는 어떠한가? 예를 들어 <신통기(Theogony)>를 펼쳐보자. 여기서도 헤시오도스는 성서의 창세기가 그러했듯이 신들과 우주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는다. 거듭 확인하는 것은 일찍부터 인간은 신을 발견하고 싶어했고, 이는 곧 인간 자신과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숙명적인 노력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견하다’라는 행위는 오늘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한참 더 그 연원을 깊게 거슬러 올라가야 할 성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발견하다’라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겠는가? 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신학자들이 하실 말씀이겠고, 대신 우리는 이 신이 남겨놓은 ‘흔적’을 발견하고자 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아 보인다. 필요에 따라 신이 만든 자연에 남겨진 흔적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발견을 추구했던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의 이름을 꽤 많이 알고 있다. ‘발견하다’라는 행위는 지적 성취를 위한 공통적 필수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정 개인에게로 이 동사를 우선적으로 귀속시키기가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단어를 대할 때 대개 한 사람을 먼저 머릿속에서 떠올릴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하다’라는 동사를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유레카, 더 정확히는 헤우레카라는 이 고대 그리스어 단어는 있는 그대로 번역하자면 ‘내가 발견해냈다’라는 뜻이다. 그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부력의 원리였다. 그는 <부체에 관하여(On Floating Bodies)>라는 작품을 통해 그 원리를 여러 상황들에 따라 상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그러나 ‘발견하다’에 내포된 의미를 찾아 이 단어를 재서술하려 하는 우리에게는, 그가 무엇을 발견했는지보다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발견에 대해 스스로 어떤 해석을 부여했는가가 더 중요한 물음으로 남는다.

‘발견한다’라는 것이 절정의 순간이라면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발견에 대해 무엇인가 이야기한 것이 남아 있을 법하다. 아쉽게도 왕관이 순금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시험해보는 과정에서 욕조에서 뛰어나와 헤우레카라고 외쳤다는 그 유명한 일화에 기대기는 어렵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가 불명한 그 왕관 일화보다 더 믿음이 가는 기록이 하나 있으니, 그 기록을 토대로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발견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좋겠다. 그 기록은 로마 최고의 문인 중 한 명이었던 키케로가 자신이 시라쿠사에 부임했을 때 남긴 것인데, 그가 <투스쿨룸 대화>에서 전하는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나는 재무관으로 그곳(시라쿠사이)에 있을 적에, 시라쿠사이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으며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던 그의 무덤을, 덤불과 잡초가 사방으로 덮인 곳에서 찾아냈습니다. 아르키메데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고 하는 일종의 육음보로 쓰인 명문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 명문은 묘비 상단에 원기둥과 구가 놓여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 그때 나는 덤불 가운데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작은 기둥에 주목하였고, 그 기둥에는 구와 원기둥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 동행한 시라쿠사이의 우두머리들에게, 저것이 내가 찾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그리하여 대희랍의 가장 유명하고, 한때 더없이 학문이 높던 도시는 더없이 명민한 한 자국민(아르키메데스)의 묘비를, 아르피눔 사람(키케로)이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망각할 뻔했습니다.”

- <투스쿨룸 대화> V.23 김남우 역


아직 키케로의 증언에 무게를 실어줄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비록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해외소식이 풍문으로 떠돌긴 했어도 말이다. 그러나 키케로의 말이 갖는 신빙성의 무게를 고려할 때, 아르키메데스가 무덤에 남기고 싶어했을 만큼 원뿔과 구와 원기둥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발견을 가장 자랑스러워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이 입체들의 겉넓이와 부피를 탐구하기 위해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On Sphere and Cylinder)>라는 작품을 저술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이 작품에서 그는 같은 반지름을 공유하면서 그 높이가 지름과 같은 원뿔과 구와 원기둥은 1:2:3의 아름다운 정수비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증명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발견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그는 이 작품의 서문으로 쓰인 편지글에서 이 아름다운 비율관계를 자신 이전의 그 어느 누구도 증명해 내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의 중학 교과과정에서 가르치는 원뿔과 구와 원기둥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이 부피 비를 계산해 볼 수 있을 텐데, 이 즈음에서 아르키메데스의 자랑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왜 이것을 자신의 무덤에까지 기록할 만한 위대한 성취로 해석했는가?

데이비드 그레고리의 유클리드 전집 그리스어 라틴어 대역본에 실린 권두삽화(1703).

데이비드 그레고리의 유클리드 전집 그리스어 라틴어 대역본에 실린 권두삽화(1703).

아르키메데스의 말에 답이 있다. “자연 속에 늘 그렇게 존재하고 성립했던” 그러나 “그 이전에 어느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던” 그래서 일종의 자연에 숨겨진 신의 흔적으로 남아 있던 이 관계를 자신이 처음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번 이 흔적을 찾는 희열을 맛본 사람은 결코 이 기쁨을 멈추지 못한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선에 관하여(On Spirals)>에서 나선의 넓이가 그것을 둘러싼 원의 넓이와 1:3의 관계를 갖는다는 또 다른 자연의 흔적도 밝혀냈다. 그렇게 그는 계속해서 더 복잡하고 낯선 도형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더 간단하고 친숙한 도형들의 관계로 풀어나갔다.

아르키메데스가 누구보다도 더 ‘발견하다’라는 동사에 어울릴 만하다고 말한 것은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의 흔적을 찾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대인들의 경우에는 생몰연대가 불명한 경우가 상당한데, 예외적으로 아르키메데스에 대해서는 그의 사망연도를 기원전 212년으로 거의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다. 그해에 로마군이 시라쿠사를 함락했고 지휘관이었던 마르켈루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르키메데스를 알아보지 못했던 한 로마 병사가 땅 위에 도형을 그려놓고 또 다른 자연의 흔적을 찾아내고자 집중하고 있던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의 고생 끝에 드디어 시라쿠사를 함락해 매우 흥분해 있었을 로마 병사로서는 이 난리통 속에서도 도형을 그려놓고 집중하고 있던 노인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할 만큼 마음의 차분함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 원을 망치지 말라(Noli turbare circulos meos!)”는 고령의 수학자의 말이 매우 귀에 거슬릴 만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날 시라쿠사에서의 일을 다 알 수는 없으나, 고대 지중해 세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수학자는 이렇게 자신의 마지막 도형을 피로 물들이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아르키메데스가 남긴 작품과 이후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들을 통해 그가 말하는 ‘발견하다’라는 동사를 재서술해보자. 나는 아르키메데스가 “자연(혹은 신)의 흔적을 찾아내는 희열을 누리다”라는 뜻을 ‘발견하다’라는 동사에 담아 두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이 희열을 혼자만 누릴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기 위해, 자연의 흔적을 더듬어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고 독자들을 끊임없이 격려한다.

그의 수학책이 때로 복잡한 길처럼 느껴지는 것은 “유레카”의 희열을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각별히 애썼기 때문

감춰진 신의 흔적을 찾은 인간은 그 결과로 자신의 흔적을 남겨…그것을 발견한 후세는 새 도약의 희망 품게 돼, 중세의 갈릴레이처럼

아르키메데스의 수학책이 친절한 가르침이 아니라 때로 복잡한 길로 안내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그가 자연의 비밀을 먼저 본 자로서 부주의하게 남들에게 발설하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고 각별히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자연의 흔적을 독자들이 따라오면서 스스로 그 희열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자주 돌아 돌아 이야기를 풀어가며 진행을 지연시킨다. 그렇게 아르키메데스는 늘 서스펜스를 잊지 않았다.

자연에 남겨진 신의 흔적을 찾은 인간은 그 결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는 여러 작품을 통해서, 또 심지어 자신의 무덤에까지 흔적을 남겼다. 인간의 흔적은 우리가 야만인이 아니라 자연 속 신의 흔적을 발견하는 인간이라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건축에 관하여(De Architectura)>로 유명한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도형으로부터 인간의 흔적을 읽고 희망을 품은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소크라테스학파 철학자였던 아리스티포스는 파선하여 로도스 섬으로 표류하여 밀려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그 섬의 연안에서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우리 최선의 상황을 한번 기대해 보세, 내가 여기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네(Bene Speremus, Hominum enim vestigia video).” 그러고는 그는 망설임 없이 로도스의 성읍으로 향했다고 한다.”

- 비트루비우스 <건축에 관하여(De Architectura)> VI.1 필자 역


해변가에 그려진 도형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발을 딛게 된 섬에 어떤 무시무시한 위험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워하던 아리스티포스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강력한 증표였다. 그 도형들은 신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흔적(Hominum Vestigia)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오랜 희열의 가뭄 끝에 아르키메데스의 수학책 속에서 위대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인류가 도약할 수 있는 새 희망을 품는다.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다.

갈릴레이가 태동시킨 근대과학은 “자연이라는 책(Book of Nature)”이 “읽을 만하며 이해할 만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발견’이라는 말에 ‘덮여져 있던 것을 드러나게 하다(dis+cover, ανα+καλυπτω)’는 뜻이 담겨 있듯이, 자연이 마치 감춰 놓기라도 한 듯한 법칙을 ‘드러내고자’ 했던 아르키메데스의 씨앗이 갈릴레이에 의해서 꽃을 피우게 된 셈이다.

그러니 이제 다음 이야기는 갈릴레이로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럽겠는데, 나도 아르키메데스의 모범을 따라 독자들을 위한 서스펜스를 남겨놓으려 한다. 갈릴레이라는 결말에 성급히 이르기 전에 중세에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고자 했던 어떤 이들의 노력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를 하고 지나갈 것이다.

이 연재 드라마는 본편 사이 광고가 좀 길다. 2주 동안 다음 화에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독자 여러분도 한번 ‘발견’해 보시길….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이은수의 아이겐밸류 - 인간의 고유함을 되묻다]자연 속 ‘신의 흔적’을 처음 찾는 기쁨…인류 도약의 원동력이 되다

서울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수학, 서양고전, 과학사를 공부하였다. 카이스트에서 수행했던 인문학과 기술의 상호 발전에 대한 연구 및 강의를 바탕으로 서울대에서 디지털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 고대로부터 과학혁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학 및 과학적 지식의 생성과 발전 및 혁신 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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