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브이아이피’를 둘러싼 남녀 온도차

장회정 기자
영화 <브이아이피>의 한 장면.

영화 <브이아이피>의 한 장면.

23일 개봉한 영화 <브이아이피>의 평이 양극단으로 나뉜다. 특정 장면의 잔혹성을 놓고 SNS에서는 여혐 논란이 나온다.

“프롤로그 부분에 해당하는 초반 10여분을 여성 피해자 한 명이 강간 후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채우고 있다”고 언급한 SNS 이용자는 “그래서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필요한 도입부의 여성 대상 폭력은 쓸데없이 끔찍하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남성 폭력에는 한없이 관대하다”는 평도 있다. 이 영화를 본 사람과는 “겸상도 하지 않겠다”는 푸념도 나왔다. 더 이상 여성이 영화 속에서 타당한 이유 없이 범죄대상화가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진다.

“박훈정 (감독) 영화에서 여자란 시체뿐인 듯”이라는 글도 회자된다. <브이아이피> 출연자 리스트에는 실제로 여자 시체 역을 맡은 배우 아홉 명의 이름이 올라와있다. 주요 출연자는 모두 남성이며, 소녀 역의 정우림이 조연급 유일한 여자 출연자다.

영화 <브이아이피>의 출연자 리스트

영화 <브이아이피>의 출연자 리스트

<브이아이피>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기획탈북시킨 김광일(이종석)이 남한에서 벌이는 연쇄살인극을 중심으로 각국의 비밀조직이 벌이는 사건을 다뤘다. 영화가 공개된 직후 잔혹성에 대한 지적은 있었다. 주연 채이도 역을 맡은 김명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파격적인 장면을 두고 “내가 촬영한 영화지만 나 역시 많이 불편하다. 남자배우인, 남자 관객인 내가 보기에도 많이 불편했다”며 ”내가 생각하는 박훈정 감독은 잔혹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 특화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훈정 감독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신세계>, <대호>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다.

<브이아이피>의 개봉 이후 도드라지는 것은 남녀 관객 반응의 확연한 온도차다. 남초 사이트로 통하는 한 커뮤니티에서는 호평이 눈에 띈다. “잔인하다고 해서 좀 긴장하면서 봤는데 잔인한 장면 자체는 생각보다 없다” “단지 살인하는 과정을 길게 묘사해서 그게 좀 불편하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만족스럽다. 꿀잼이다” 등의 후기가 올라왔다. 게시물 중에는 “여초 사이트에서 단체로 몰려와서 평점 테러 중”이라며 “남초 커뮤니티 하시는 분들 홍보 좀 부탁드려요”라는 독려 글도 있다.

관객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네이버 평점 결과를 보면 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개봉전 평점’의 경우 8.26으로 10점 만점의 댓글이 베스트댓글로 상단에 올랐지만, ‘개봉후 평점’ 별 반개, 1점 평이 상단을 차지하며 이른바 ‘1점 테러’라 불리는 릴레이가 이어진다. 네티즌 평점 그래프도 1점이 31%, 10점이 41%로 극단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1점을 준 네티즌들은 “성폭행 트라우마 있으신 분들 절대 보시면 안돼요” “여자는 남자캐릭터를 위한 성적폭력의 대상이며 그저 남자캐릭터의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최소한의 인권의식도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썼다. 위 댓글들에는 1400개 이상의 공감이 표시됐다.

네이버 영화의 <브이아이피> 관객 평점 그래프.

네이버 영화의 <브이아이피> 관객 평점 그래프.

한 트위터 이용자는 영화에 대한 반응이 남녀로 갈리는 이유로 “(성적 폭력 및 살해를) 언제 당할지 모를 일이라 괴로운 입장과 그런 건 알 필요도, 겪을 일도 없는 강자의 입장 차이라고 느낀다”고 정리했다. “요즘 기준으로는 살인의 추억도 엄청난 여혐영화가 되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는 남초 커뮤니티의 이용자는 “물론 특정 장면에 있어서 너무 심하게 자극적이거나 과하면 수위를 자제하고 낮추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 <토일렛>,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삼는 범죄를 가볍게 그려낸 <청년경찰>이 여혐 및 여성의 대상화 관련 비판을 받아왔다. 한 영화 커뮤니티 이용자는 일련의 반응을 두고 “격세지감”이라 칭하며 “정말 한국영화판이 바뀌긴 많이 바뀌었구나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화 전문지 <씨네21>의 기자 및 평론가 5인의 <브이아이피> 평점은 5점. 5점을 준 임수연 기자는 “저렇게까지 여성에게 폭력적이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평했고, 7점을 준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아이디어 하나로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라는 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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