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를 사이에 둔 두 노년 여성의 사랑...'우리, 둘'

백승찬 기자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마도(마틴 슈발리에, 왼쪽)와 니나(바버라 수코바)는 오랜 연인이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마도(마틴 슈발리에, 왼쪽)와 니나(바버라 수코바)는 오랜 연인이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은발의 노년 여성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듯 능숙하고 다정한 손길이 오간다.

니나(바버라 수코바)와 마도(마틴 슈발리에)는 프랑스 한 지방 도시의 아파트 이웃이자 20년 넘은 연인이다. 은퇴 후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둘은 집을 정리하고 처음 만났던 로마로 이주해 여생을 보낼 계획을 세운다. 다만 마도는 사별한 남편과의 자식들에게 오랜 시간 숨겨왔던 연인의 존재를 고백해야 한다.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던 마도는 어느날 뇌졸중으로 쓰러져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마도의 집에는 간병인이 이주해 들어온다. 이전처럼 마도를 쉽게 만날 수 없게 된 니나는 속을 태운다.

이성애를 그린 로맨스 영화가 그러하듯, 퀴어 로맨스 영화도 젊은이들의 사랑을 주로 다뤄왔다. 영화 <우리, 둘>(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드물게도 두 노인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하는 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은 청년이나 노년이나 마찬가지다. 동성애에 적대적인 기존의 가족제도와 부대껴야 한다는 점도 나이에 관계없이 동일하다.

다만 노년에게는 청년만큼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 사랑하는 이와 보낼 나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마도는 자꾸 주저한다. 마도는 기존의 결혼제도 바깥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았지만, 여전히 결혼제도 안쪽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이자 ‘할머니’로서의 정체성이 마도의 팔목을 잡아끈다. 말 한마디면 쉽게 얻을 것 같은 행복을 눈앞에 두고, 두 노년 연인은 병마와 제3자에게 가로막힌다.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마도가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마도와 니나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마도가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마도와 니나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는 대부분 마도와 니나의 아파트, 그리고 두 집 사이의 복도에서 진행된다. 마도의 아파트에는 고인이 된 남편, 가끔씩 찾는 자식들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다. 홀로 사는 여느 할머니들과 비슷하다. 니나의 아파트는 좀 더 세련되고 단촐하다. 마도가 쓰러지기 전, 두 집 사이의 복도는 쉽게 오갈 수 있는 이웃사촌의 공간이자 연인의 만남 장소였다. 마도가 쓰러진 이후, 복도는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좁은 관문이 된다. 연인을 되찾기 위한 니나의 몇 가지 행동으로 인해 영화는 중반 이후 일정 수위의 서스펜스를 띤다.

한정된 공간에 한정된 인물들을 등장시켜 밀도 있는 전개를 보여주는 영화다. 배우들은 과장 없지만 세밀한 연기를 한다. 두 주인공뿐 아니라 엄마의 비밀에 당황하는 딸, 일자리를 지키려는 간병인 등 조연까지 입체적으로 구축됐다.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에 수상작인 <미나리> 등과 함께 후보작으로 올랐다. 28일 개봉했다.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노년의 연애는 격렬하진 않지만 부드럽고 정감 있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노년의 연애는 격렬하진 않지만 부드럽고 정감 있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니나와 마도는 복도를 사이에 둔 아파트 이웃이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우리, 둘>의 한 장면. 니나와 마도는 복도를 사이에 둔 아파트 이웃이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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