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식 버섯 타르트, 해체주의 가리비 요리···니컬러스 케이지의 음식영화 ‘피그’

백승찬 기자
영화 <피그>의 한 장면. 과거 최고의 셰프였던 롭은 숲속에 은거하며 돼지 한 마리와 함께 트러플 버섯을 캐며 살아간다.  | 판씨네마 제공

영화 <피그>의 한 장면. 과거 최고의 셰프였던 롭은 숲속에 은거하며 돼지 한 마리와 함께 트러플 버섯을 캐며 살아간다. | 판씨네마 제공

스틸 사진 속 니컬러스 케이지의 옷에는 피가 묻어 있다. 그는 두려움과 분노가 반쯤 섞인 듯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다듬지 않은 허연 수염이 얼굴을 덮었다.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는 시놉시스를 읽으면 스크린 위에는 한바탕 핏빛 복수극이 펼쳐질 것 같다.

<피그>는 예상과 전혀 다른 영화다. 일단 케이지는 사람을 향해 주먹을 쓰지 않는다. 다툼이 생겨도 때리기보다는 맞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작품 소개만 보면 알아채기 힘들지만, <피그>는 의외로 따뜻한 음식영화다.

롭(케이지)은 숲속에서 트러플 돼지 한 마리와 함께 낡은 오두막에 사는 남자다. 오두막에는 전화도, 온수 시설도 없다. 롭은 돼지와 함께 트러플 버섯을 캐서, 1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식재료 바이어 아미르(알렉스 울프)에게 판매한다. 어느날 낯선 사람들이 오두막에 침입해 돼지를 빼앗아 간다. 롭은 아미르의 고급 자동차를 얻어 타고 오래전 떠난 도시 포틀랜드로 향한다. 그곳에서 누가 자기 돼지를 훔쳐갔는지 알아내려 한다.

영화 <피그>의 한 장면 | 판씨네마 제공

영화 <피그>의 한 장면 | 판씨네마 제공

줄거리는 계속 예상을 벗어난다. 롭이 포틀랜드에서 처음 찾아가는 곳은 식당 영업이 끝난 뒤 열리는 ‘직원들의 파이트 클럽’이다. 롭은 그곳에서 단단한 맷집으로 주먹을 버텨낸 후 사라진 돼지에 대한 정보를 캐낸다. 롭은 아미르를 통해 포틀랜드 최고의 레스토랑을 예약한 후 셰프 핀웨이를 불러낸다. 이 식당은 기묘한 요리 소개와 컨셉으로 손님을 홀려 인기를 끌지만, 롭은 그것이 모두 ‘가짜’임을 알아채고 핀웨이를 다그친다. “한때 자네의 꿈은 영국식 펍을 차려 소박한 안주를 만드는 것 아니었느냐”고 묻는다.

동료 셰프에게 영감을 주고 손님들에게 잊지 못할 식사를 선사하는 포틀랜드 최고의 셰프였던 롭이 왜 은둔을 택했는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연인지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고, 이후 큰 상실감에 하던 일을 모두 그만 두고 숲으로 떠난 것으로 보인다. 숲에서 산 15년의 세월 동안 롭은 마치 현자와 같은 풍모를 갖게 됐다. 롭의 눈에는 성공을 위해 발버둥치는 아미르, 핀웨이가 모두 안쓰러울 따름이다. 롭이 할 수 있는 건 낮은 목소리로 조언을 건네거나, 그마저 통하지 않으면 정성스럽게 구한 재료로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것 뿐이다.

영화는 각각 ‘시골식 버섯 타르트’ ‘해체주의 가리비 요리’ ‘새 한 마리, 술 한 병 그리고 소금 바게트’라는 제목이 붙은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에 실제로 이 요리가 나온다.

케이지는 수 차례의 이혼 소송, 낭비벽 등 사생활 문제가 있었고, 작품을 가리지 않는 다작으로 둘쭉날쭉한 필모그래피를 이어왔다. 한때 할리우드 톱스타였던 케이지는 최근 주요 스튜디오의 출연 제안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미스터리의 은둔자를 많은 대사 없이 분위기와 몸동작만으로 능숙하게 표현한 케이지는 <피그>로 건재함을 알렸다. 이 영화로 데뷔한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은 “상실감과 슬픔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익숙해질 충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피그>의 한 장면. 롭은 트러플 버섯을 캐서 판매한다.  | 판씨네마 제공

영화 <피그>의 한 장면. 롭은 트러플 버섯을 캐서 판매한다. |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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