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같은 분? ‘틱낫한’이 걷는다···관람보다 체험에 가까운 영화 ‘나를 만나는 길’

백승찬 기자

틱낫한의 플럼 빌리지 공동체 다큐…12일 개봉

영화 <나를 만나는 길>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제공

영화 <나를 만나는 길>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제공

어떤 영화는 관람보다 체험에 가깝다. <나를 만나는 길>도 그렇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골길을 걷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인종, 성별, 세대가 다양한 사람들이다. 바람 소리, 새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만 들릴 뿐, 말은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가운데서 걷는 마른 남자가 베트남 출신의 평화운동가·영적지도자 틱낫한(1926~2022)이다.

<나를 만나는 길>은 틱낫한과 그가 프랑스 보르도 근교에 세운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하루를 일, 놀이, 사교로 가득 채운 사람들이 본다면 플럼 빌리지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명상하고 밥 먹고 걷고 차 마시고 다시 명상하는 삶이 반복된다. 카메라는 이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 이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그렇다고 깨달음을 위해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틱낫한과 수행자들의 행동은 느긋하고 평화롭다. 틱낫한이 눈을 감고 명상하는 동안 뒤에서 연신 하품을 하는 제자가 비치기도 한다. 이들의 행동은 영화 초반부 나온 ‘걷기 명상’으로 대변된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고 걷기 위해 걷는다. 발바닥이 땅에 접촉하는 순간을 알아차린다. 긴장을 내려놓고 주변의 소리를 듣는다. 이런 수행을 통해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도착”한다. 영화의 원제 역시 ‘Walk with me’(나와 함께 걸읍시다)이다.

15분에 한 번씩 종소리가 나면 모두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음악을 연주하다가, 밥을 먹다가, 대화 하다가도 종소리가 나면 그대로 멈춘다. 이런 방식으로 플럼 빌리지 사람들은 생활의 흐름에 함정처럼 빠지는 대신, 자신이 누구고 여기가 어딘지 문득 알아차린다.

영화 <나를 만나는 길>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제공

영화 <나를 만나는 길>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제공

영화 <나를 만나는 길>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제공

영화 <나를 만나는 길>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제공

틱낫한의 말과 행동을 떠받드는 영화도 아니다. 한 수행자는 틱낫한을 두고 “<스타워즈>의 요다 같은 분”이라고 표현한다. 틱낫한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은 반려견이 죽어 슬퍼하는 소녀에게 건네는 조언 정도다. 대신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내레이션으로 틱낫한의 지혜로운 말을 적절히 배치한다. 컴버배치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주연한 떠들석한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극장에서 상영중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마크 J 프랜시스·맥스 퓨가 공동 연출했다. 전체 관람가.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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