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화조 구조와 유사한 대형 화장실이 경복궁에서 나왔다

김종목 기자

경복궁에서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대형 화장실 유구(遺構)를 확인했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8일 “경복궁 동궁의 남쪽 지역에서 화장실 유구를 발굴했다.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발표했다.

경복궁 화장실 유구 규모와 구조. 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화장실 유구 규모와 구조. 문화재청 제공

발굴 화장실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만들었다. 이 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를 뒀다. 북쪽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다.

경복궁 화장실 유구 조사 후 전경. 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화장실 유구 조사 후 전경. 문화재청 제공

연구소는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를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다. 오수는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식 정화조 구조(분뇨 침적물에 물 유입→ 분뇨 발효와 침전→ 오수와 정화수 외부 배출)와 유사하다고 했다.

경복궁 화장실 유구 북쪽 입수구. 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화장실 유구 북쪽 입수구. 문화재청 제공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은 “150여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분변이 잘 발효될 수 있도록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한 다음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된 기술”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발굴 유구의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g당 1만8000건)과 씨앗(오이, 가지, 들깨)을 검출했다. ‘경복궁 영건일기(景福宮 營建日記)’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년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복궁 화장실 유구 동측 출수구. 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화장실 유구 동측 출수구. 문화재청 제공

연구소는 화장실 규모는 4∼5칸인데,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소는 “1인당 1일 분뇨량 대비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16.22㎥)으로 보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물의 유입과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하여 약 5배 정도 많은 것”이라고 했다.

경복궁 동궁권역 화장실 유구의 평면 추정 이미지. 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동궁권역 화장실 유구의 평면 추정 이미지. 문화재청 제공

연구소는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 화장실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동궁 권역 건물들은 1868년(고종 5년) 완공됐다. 1915년 일제가 조선 강제 병합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박람회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훼손됐다.

경복궁 화장실에 관한 기록은 ‘경복궁배치도(景福宮配置圖)’ ‘북궐도형(北闕圖形)’ ‘궁궐지(宮闕志)’에 나온다. 이들 문헌에 따르면 경복궁의 화장실은 최대 75.5칸이다. 연구소는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지역에 밀집했다. 경회루 남쪽의 궐내각사(闕內各司)와 동궁(東宮) 권역을 비롯해 지금 국립민속박물관 부지 등에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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