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한 소리와 ‘썰’들의 경연…이거 꼭 해야하나

위근우 | 칼럼니스트

<6자회담>과 <상암타임즈>, ‘아재 교양’은 이제 그만!

명절 연휴 집안 어르신 훈시라는 걸 실제 경험한다면 저런 걸까. 지난 5일 첫 방영한 KBS 파일럿 4부작 예능 <6자회담>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마나한 소리를 자기들끼리만 진지하게 길게도 한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아무도 관심 없을 본인들 신체 나이를 주제로 한참을 떠들다가 이를 계기로 시작된 ‘욜로’ 문화에 대한 토론에서 각 출연자들은 미래와 현재 중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삶의 태도를 이야기할 뿐 그에 대한 상호주관적 논거는 조금도 제시하지 않았다. 일종의 발제를 맡은 박명수는 미래보다는 오늘을 즐기자는 삶의 태도가 현재 시대상을 반영한다고는 말했지만, 그에 대한 논의는 조금도 진행되지 않았다.

KBS 파일럿 예능 <6자회담>(사진 위)과 tvN <상암타임즈> (사진 아래)는 기본적으로 중년 남성을 주타깃으로 삼아 지적 대화나 논쟁을 엔터테인먼트로 제공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출연자 인적구성부터 아재의 입장에서 이뤄진 이른 바 ‘아재 교양’이다. <6자회담>의 6자 중 장도연 단 한 명만이 여성이다.  해당 프로그램 캡처.

KBS 파일럿 예능 <6자회담>(사진 위)과 tvN <상암타임즈> (사진 아래)는 기본적으로 중년 남성을 주타깃으로 삼아 지적 대화나 논쟁을 엔터테인먼트로 제공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출연자 인적구성부터 아재의 입장에서 이뤄진 이른 바 ‘아재 교양’이다. <6자회담>의 6자 중 장도연 단 한 명만이 여성이다. 해당 프로그램 캡처.

왜 ‘욜로’이고 왜 ‘소확행’인가. 무주택인 젊은 세대는 아무리 열심히 돈을 모아도 임금 상승률이 집값 상승률을 쫓을 수 없고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욜로’는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어차피 오지 않을 안정성 대신 현재를 선택하는 행위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혼자는 몰라도 아이를 보면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박명수)거나 “책임감 없는 ‘욜로’는 안된다”(장도연)며 ‘욜로’를 단지 개인의 관점이나 책임감 문제로 환원하고, 정작 이 문제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이경규, 김용만, 박명수 세 명의 나이 든 남자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노래를 부르는 것이 <6자회담>에서 말하는 거침없는 토론이다.

이것은 깜냥이 안되는 출연자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운 기획의 실패일까.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6자회담>보다 2주 앞서 시작한 tvN <상암타임즈>를 보면 문제의 양상은 좀 더 뚜렷해진다.

어떤 의미로든 <상암타임즈>에서 시사전문가로 이름을 올린 이봉규, 박종진, 정영진, 최욱이 <6자회담> 멤버들보다는 토론에 능숙한 출연자일 것이다. 단 2회 동안 유튜브 정치 채널, 주류세 개편, 게임을 통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검증 등 다양하고도 동시대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의 논의 수준은 <6자회담>과 오십보백보 차이다. 경찰 공권력 과잉 논쟁에서 공권력이 강해져야 한다던 이봉규가 “본인이 칼로 위협당하면 어쩔 거냐”고 묻자 반대 측의 정영진은 “(총으로) 쏴야죠”라고 농담처럼 답한다. 공권력의 한계를 고찰하는 대신 네가 당해도 그럴 거냐고 묻는 이봉규의 화법은 저열했고, 과열을 피하기 위해 농담으로 회피하는 정영진의 태도는 얍삽했다. 논거는 휘발되고 말싸움용 꼼수만 남았다.

‘욜로’를 개인 관점이나 책임감 문제로 돌린 ‘6자회담’, 정작 나이 든 남자들은 ‘젊어서 노세’를 외친다 유튜브 정치채널·양심적 병역거부 등 동시대적 주제를 다룬 ‘상암타임즈’의 수준도 오십보백보
여성은 배제되고 한국 아저씨 평균의 통념과도 동떨어진 관점…논거가 휘발된 말싸움이 나만 불편한 걸까
‘3년 방영’ 예감하고 참여했다는 예능 달인 이경규, 그의 예측이 이번에는 꼭 틀리기를 바란다

이런 분위기에서 결국 말싸움의 승자는 좀 더 그럴싸하게 들리는 레토릭을 제공하는 쪽이다. 가령 바른미래당이 20대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는 최욱의 지적에 대해 정영진이 “전쟁은 사람의 목을 치는 것이고 정치는 사람의 목을 데려오는 것(이기에 표심을 얻기 위한 행위가 잘못은 아니다)”라고 답하자 허경환, 지투, 장대현 등 연예인 출연자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는 식이다. 바로 그런 표심에 의한 대의민주주의가 갈등 조정과 합의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6자회담>과 <상암타임즈>가 조우하는 건 이 지점이다. 이야기는 복잡해지지도 풍성해지지도 않는다. 정확히 말해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어디선가 써먹기 쉬운 ‘썰’만 유통되고 소비된다.

<6자회담>과 <상암타임즈>는 단순히 JTBC <썰전>의 망한 버전처럼 보이지만(또한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 <썰전>을 포함한 ‘아재 교양’이라는 흐름 안에서 본다면 나름의 의도와 전략이 드러난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열풍으로 시작된 정치 콘텐츠가 <썰전>, TV조선 <강적들> 등의 정치 예능으로 발전했다면, 역시 팟캐스트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인기는 OtvN <어쩌다 어른>이나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같은 지식 및 교양 예능으로 이어졌다.

두 흐름은 동일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중년 남성을 주타깃으로 삼아 지적 대화나 논쟁을 엔터테인먼트로 제공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해당 콘텐츠들은 나름의 지적 권위를 가지고 한 수 가르치는 입장에 서지만, 그것은 계몽적이라기보다는 청취자나 시청자의 자기만족을 강화하는 방식에 가깝다.

[위근우의 리플레이]하나마나한 소리와 ‘썰’들의 경연…이거 꼭 해야하나

정치 예능이 꾸준히 진영 논리 안에서의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면, 지식 예능은 지적 성찰보단 지적 포만감을 주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상암타임즈>의 정민식 PD가 연출했던 <어쩌다 어른>의 양대 스타인 최진기와 설민석은 전형적으로 떠먹기 좋고 써먹기 좋은 지식으로 인기를 얻은 강사다. 거기까진 괜찮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관계전문가, 소통전문가, 남아미술전문가 따위의, 학적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지만 술자리에서 써먹기엔 좋을 사적 차원의 ‘썰’마저 지식이란 이름으로 유통되기 일쑤였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알쓸신잡>에서조차 가끔 지적 통찰과 지적으로 보이는 아무 말은 혼동된다. 최고의 자화상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윤두서 자화상을 꼽은 황교익은 자화상은 보통 측면을 그리며(여기서 방송은 서구의 주요 자화상들이 거의 다 측면을 그렸다고 예시를 든다) 그 이유로 “(보통은) 시선을 자기 쪽으로 두지 못한다. 자신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내 안의 모든 것을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너무나 한국 아저씨들이 좋아할 해석이다. 하지만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화상 중 하나인 뒤러의 1500년작 자화상은 뚜렷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자화상에서 정면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자신을 직시하는 용기의 문제보다는 당대의 관습과 본인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황교익의 그럴싸하지만 아무 논거 없는 가설에 반박하는 대신 유시민은 정치 인생 중의 자기 얼굴을 돌아보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역시 나이 든 남자들이 좋아할 스토리다.

즉 이들 ‘아재 교양’은 진짜 지식과 정치적 식견, 교양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경우 세상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것만 같은 기분과 자기만족으로 지식과 교양을 대체한다. <6자회담>과 <상암타임즈>는 이 중 훨씬 쉬운 후자에 집중한다. 그러니 인적 구성이 그 모양이어도 된다.

어쩌면 처음부터 비판했어야 할 두 프로그램의 성비 불균형 문제를 ‘아재 교양’의 맥락에서 다시 읽어내야 하는 건 그래서다. <6자회담>의 6자 중 장도연 단 한 명만이 여성이고, <상암타임즈>에선 9명 출연자 모두 남성이다.

언제나 그렇듯 개중에 발언권이 더 강한 건 중장년 남성들이다. <6자회담>의 이경규, 김용만, 박명수는 평균 나이 54.3세이며, <상암타임즈>에서 20~30대 남성 출연자는 가르침을 받는 시사 비전문가 입장에 서 있다. 당연히 ‘아재 교양’은 아재의 입장에서 구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문제만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아재 교양’의 자기만족적 세계는 사실 지적으로 굉장히 허술한 토대 위에 서 있으며, 그렇기에 다른 입장에서의 반론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이 두 프로엔 유시민도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루며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건 비양심적이냐”는 이봉규의 궤변이 일침인 양 방송을 타기 위해선, 양심은 개인 신념의 영역이며 누구나 개인 신념에 따라 병역을 이행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는 반박이 제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한국 아저씨 평균의 통념과 많이 떨어진 관점과 의혹을 지닌 이들, 특히 여성은 배제되기 십상이다.

위근우|칼럼니스트

위근우|칼럼니스트

“모든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은 언제나 지배계급의 사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공산당선언>의 통찰은 현재 한국의 ‘아재 교양’에도 적용된다. 방송에서의 성비 불균형은 남성 권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남성 목소리의 권위 유지를 위한 중요한 통치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실제론 너무나 허약한 지적 기반 위에서 자기들끼리 천하와 인생을 껄껄껄 논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웃어주고 싶겠지만 그럴 문제는 아니다.

명절 연휴 어르신 훈시야 눈 딱 감고 하루이틀만 견디면 된다지만, 이런 ‘아재 교양’이 언제까지 지식과 교양 행세를 할진 알 수 없다. 이경규는 파일럿인 <6자회담>에 대해 3년 방영을 예상하고 참여했다고 말했다. 예능의 달인인 그의 예측이 틀리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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