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에 ‘급브레이크’ 밟는 유럽국가들, 왜?

박순봉 기자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최근 전기차 전환에 속도조절을 하는 모습을 잇따라 보이고 있다. ‘친환경’이란 미래지향적 가치를 앞세워 내연기관차 시대를 종식시키려던 움직임에 이상 기류가 나타난 셈이다.

숄츠 독일 총리(가운데)가 지난 7일(현지 시간) 폭스바겐과 포르셰 자동차의 최고경영자(CEO)들과 잘츠기터의 폭스바겐 자체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숄츠 독일 총리(가운데)가 지난 7일(현지 시간) 폭스바겐과 포르셰 자동차의 최고경영자(CEO)들과 잘츠기터의 폭스바겐 자체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 불안정성이 뚜렷해졌다. 여기에다 중국이 빠르게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면서 전통적 자동차 강국인 유럽의 지위가 위협당하는 현실도 영향을 준 걸로 해석된다.

유럽 국가들이 최근 전기차 보조금이나 세금 혜택을 줄여나가고 있다. 독일이 그 선봉에 서 있다. 독일은 하벡 경제부 장관 명의로 지난 27일(현지시간) 전기차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최종적으론 완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21일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이 EU가 제시한 ‘2035년 내연기관차 폐지’ 방침에 반대 입장을 내놓은 데 이어서다. 영국은 2011년 도입한 전기차 보조금을 11년만인 지난달에 폐지했다. 노르웨이도 지난달부터 전기차 혜택을 없애고 있다. 버스 전용차로 주행, 통행료 및 주차비 할인, 부가가치세 면제 등을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8일 2035년부터 내연기관을 탑재한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안을 가결했지만, 당시 반대표도 적지 않았다. 찬성 339표, 반대 249표, 기권 24표였다.

유럽 국가들이 전기차 시대에 제동을 거는 첫번째 이유로는 중국과의 패권 다툼이 꼽힌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25일 발표한 ‘친환경자동차 지원 사업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8~2021년 중국·유럽·미국·한국·일본 등 5개국의 자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에서 중국은 47.5~65.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 전기차 신차 판매량 중 57.6%를 차지했다. 두번째로 판매 비중이 높은 유럽은 14.1~35.3%였다. 3위가 미국(10.7~14.7%), 4위가 한국(1.9~2.1%) 순이었다. 일본은 5위로 꼴찌였고, 2018~2021년까지 연평균 ‘-6%’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여전히 하이브리드 차량을 중심에 두고 있는 정책의 결과로 보인다.

두번째로는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팩 역시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국가들이 독식하는 상황이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10위 배터리 회사 중 중국 기업이 6개이고, 한국 기업이 3곳, 일본이 1곳 순이다. 점유율로 보면, 중국이 48.6%, 한국이 30.4%, 일본이 12.2% 순이다. 특히 1위 업체인 중국 CATL은 점유율이 32.6%나 됐다.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4대 광물(리튬·니켈·코발트·망간)이 특정 국가에 한정돼 있다는 점도 유럽 국가들로선 부담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2022년 ‘국가별 주석 매장량’ 보고서를 보면, 각 광물의 생산량은 리튬은 호주 48.1%, 칠레 26.0%, 중국 16.1%로 3개국에 집중돼 있다. 니켈은 인도네시아 30.7%, 필리핀 13.3%, 러시아 11.3% 순이다. 코발트는 콩고 68.9%, 러시아 6.3%, 호주 4.0%다. 망간도 남아프리카공화국 34.4%, 호주 17.6%, 가봉 17.5%로 편중이 뚜렷하다. 광물이 편중된데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 불안정성, 미중의 갈등 구도 등도 종국적으론 전기차 전환의 부담 요소가 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전기차 혜택 축소는 한국 기업인 현대차·기아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독일은 4만유로(5320만원) 이하인 전기차에 지급하던 보조금 6000유로(798만원)를 내년 초부터 4500유로로, 2024년부터는 3000유로로 줄인다. 보조금 정책에 가장 민감한 모델은 현대차의 아이오닉 5와 곧 출시될 아이오닉 6, 기아의 EV6 등이 될 수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내연차 관련한 국내 일자리 보호도 골치거리다. 여기에다 ‘전기차가 어디까지 정말 친환경 차량이냐’는 근본적 질문도 여전히 꼬리를 물고 다닌다.

다만 일부 유럽 국가의 반발에도, 전기차로의 전환이란 큰 흐름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쪽에 힘이 실린다. 김철수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독일 같은 나라는 벤츠나 BMW가 전기차 시대에 기존의 위치가 흔들리는 상황이라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며 “RE100(100% 재생에너지로 충당)이나 2035년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큰 흐름 자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