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진원지 월가·LA를 가다  

뉴욕·LA | 유희진기자

금융인·서민 ‘몰락의 두 얼굴’
월가 구직시장 썰렁해도 “아직 버틸만”…LA선 집 가압류 사태속 ‘빈털터리’ 증가

뉴욕 월가와 로스앤젤레스는 신자유주의의 황혼에 물들어가는 2008년 11월의 미국을 상징한다. 월가 금융인의 추락, 그들의 자본 놀음에 이용당한 서민의 절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두 도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의 99센트숍은 13일 밤 늦게까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고가의 상품을 파는 백화점 매출은 줄었지만 반대로 99센트숍의 손님은 두배 이상 늘었다. 뉴욕 | 유희진기자

뉴욕 맨해튼의 99센트숍은 13일 밤 늦게까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고가의 상품을 파는 백화점 매출은 줄었지만 반대로 99센트숍의 손님은 두배 이상 늘었다. 뉴욕 | 유희진기자

두 도시는 대륙의 동과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라는 폭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2000년 초반에 시작됐던 빚잔치를 끝내가고 있었다. 그 파티에는 너나 없이 초대받았고, 모두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 파멸의 기획자와 피해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7년 가까이 월가에서 모기지 채권 파생상품 판매를 담당하던 코그네티(33)는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올 초 구조조정으로 자기 부서가 없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전같으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순간부터 헤드헌터들이 일자리 제의를 하며 몰려들었을 테지만, 이번엔 썰렁하다. 그래도 그는 매를 먼저 맞아 나은 경우였다. 비교적 일찍 해고됨으로써 구직 시장이 달아오르기 전에 부동산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회사에서도 경제위기로 끊임없이 해고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 이 자리도 그렇게 안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은 버틸 만하다.

100년 동안 세계 금융의 심장이었던 월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계 경제 대국 미국에서도 명실상부한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다. 미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내 금융산업 종사자 중 평균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은 이 월가가 위치한 뉴욕주였다. 뉴욕주 금융업계 종사자의 평균 임금은 13만1660달러(약 1억5000만원)에 달했다.

그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주저앉게 됐지만, 그동안 자기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위험이 있었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액 연봉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코그네티처럼 인생에서 한번 실패를 맛보았다 해도 새로운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금융위기 진원지 월가·LA를 가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아무 것도 몰랐고, 그리고 가진 것을 다 잃었다. 금융 자본은 마리사츠 루세로(37·여) 같은 가난한 자를 위험한 돈놀이 게임에 끌어들여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는 빚쟁이로 전락시켜 길거리로 내팽개쳤다. 이제 다 끝난 마당인데 돈이 없어도 내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미끼에 걸려든 루세로의 고통을 누가 알아주기나 할 것인가.

LA카운티 남부 란초쿠카몬가시에 사는 루세로는 생애 처음 가졌던 집에서 단 4년을 살고난 후 은행의 가압류에 밀려 쫓겨났다. 2004년 집값 100%를 은행 대출로 받아 집을 샀다가 상환액이 4개월 밀리면서 신용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죽을 고생을 하면서 모았던 금쪽 같은 그 모든 돈들이 집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미국에서 루세로처럼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샀다가 가압류당한 주택은 2007년 한해 동안만 100만채가 넘는다. 가압류 주택의 수는 올해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해서 월 2500달러 정도를 벌고 있는데 한달에 월세로 1300달러를 내고 있어요. 남은 돈으로 다섯 식구가 먹고 사는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길거리에 나앉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그는 왜 이렇게 됐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밤낮으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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