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들인 ‘원전 해체 ’ 기술개발, 정책 바뀌면 ‘물거품’…“정부, 일관성 유지를”

김기범 기자

원자력산업회의·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 3년차 해체교육

한국수력원자력의 계획에 따르면 고리1호기는 2020년 최종해체계획서 제출, 2022년 계획 승인, 2026년부터 절단, 철거작업, 제염 작업 등을 거쳐 2030년 해체 작업을 마무리하고 2031년부터 2년 동안에는 부지 복원 작업이 예정돼 있다.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의 계획에 따르면 고리1호기는 2020년 최종해체계획서 제출, 2022년 계획 승인, 2026년부터 절단, 철거작업, 제염 작업 등을 거쳐 2030년 해체 작업을 마무리하고 2031년부터 2년 동안에는 부지 복원 작업이 예정돼 있다.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 제공

|학계
한국, 고리1호기 해체 성공해야
12년 후 쏟아질 세계 물량 확보
해외 진출 기회도 잡을 수 있어

|한수원
신사업 분류해서 준비하지만
국내도 그 시기 해체 원전 다수
해외에 눈돌릴 틈 없을 것

|관련기업
“2007년부터 기술 투자했는데
고리1호기 수명 연장돼 낭패”
쉽게 바뀌는 정책 ‘최대 리스크’

정부는 산업 키우기 관심 없고
업계도 방향 못 잡고 갈팡질팡
산업 활성화 대비 제대로 못해

지난 14~16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열린 한국원자력산업회의와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의 ‘2018년 하반기 해체제염교육’에는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경북도와 부산시 등 지방자치단체, 원전 관련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관련업계와 학계가 강사와 교육생으로 참가했다. 한양대 원전해체센터와 한국원자력산업회의는 2016년부터 상·하반기로 해체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상반기에는 국내교육만 하고, 하반기에는 해외의 원전 해체 현장교육까지 포함돼 있다. 올해는 해체 중인 스페인의 조리타 원전을 견학할 예정이다.

원전 해체산업이 충분한 가능성이 있고 원전 관련 기업들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측은 강사로 나선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와 강재열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이었다.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되기 전부터 세계의 해체사업을 연구하고 발 빠르게 원전해체연구센터까지 만든 김 교수는 “원자력업계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해체 공부를 한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며 “지금은 그런 시선이 많이 사라진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전 세계적으로도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 독일뿐”이라며 “고리1호기를 성공적으로 해체한 경험을 획득해야 세계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까지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 등이지만 일본과 스위스는 상업용 원전이 아닌 소형 원자로를 해체해 봤을 뿐이다. 결국 한국이 고리1호기 해체를 완료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적으로도 해체 경험을 보유할 것으로 보이는 나라는 몇 곳 없으며 한국이 선진국 원전 해체 시장은 물론 저개발국의 연구용 원자로 해체에도 진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김 교수는 경험이 있는 기업만이 진출할 수 있는 원전 분야의 특성상 2030년쯤까지 해체 경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2030년대에 중점적으로 쏟아져나올 해체 물량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고리1호기 해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월성1호기, 고리2호기 등 점점 확대될 국내 시장조차 해외기업에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영국 원전해체청 등은 한국의 해체시장에 관심을 두고, 국내 원전업계와 접촉하고 있는 상태다.

[커버스토리]수십억 들인 ‘원전 해체 ’ 기술개발, 정책 바뀌면 ‘물거품’…“정부, 일관성 유지를”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와 함께 이번 교육을 준비한 한국원자력산업회의 강 부회장은 “세계적으로 오래된 원전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곧 해체할 원전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가동 연수가 40년이 넘은 원전이 95기, 30~39년 사이인 원전이 203기이다보니 2020년대 이후 해체에 착수하는 원전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국내에서 원전 해체의 산업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원전 사업자이자 원전 해체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한수원에서는 해체산업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한수원은 원전 해체산업을 신사업으로 분류해서 준비하고 있다. 교육 마지막 수업에서 ‘고리1호기 해체 준비현황 및 향후 계획’에 대해 발표한 한수원 원전사후관리처 최영기 해체기술팀장은 “세계에서 원전 해체가 많이 진행될 때 우리도 많은 원전을 해체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 눈 돌릴 틈이 없다”면서 “외국 원전을 해체하겠다고 적극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해외의 폐기물 처리 분야에 진출 가능할 수 있지만, 이건 원자력환경공단의 몫”이라며 한수원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15일 원전 해체·제염 교육에서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가 강연을 하고 있다.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 제공

지난 15일 원전 해체·제염 교육에서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가 강연을 하고 있다.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 제공

그러나 외부에서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최 팀장은 교육생들에게 “프로세스상 아직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는 기술까지 개발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라며 “아직 해체 승인도 나지 않았는데 기술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부족에 대한 지적에는 “국내에서 확보되지 않았을 뿐 세계적으로는 이미 모든 필요한 기술이 확보됐다”고 주장했다.

미래를 두고 엇갈리는 전망만큼이나 원전 관련 업계 내에서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불안감도 높은 분위기였다. 원전 관련 업체 중 손꼽히는 대기업인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정부정책 변화로 인해 해체 관련 기술개발을 하다 물거품이 되었던 사례를 소개했다.

교육에 참가한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고리1호기가 수명을 다해 2007년부터 해체될 것이라는 예상하에 내부에서 기술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수명이 연장되면서 이를 중단했다”고 소개했다. 고리1호기의 설계수명은 30년으로 2007년까지였으나 2007년 6월 수명 연장이 결정된 바 있다. 이후 고리1호기는 10년 동안 더 운영되다 지난해 영구정지됐다. 노후원전 운영에 비판적인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이 고리1호기 수명 연장이 국내 기업들의 세계해체시장 진출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 게 타당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의 원천기술 확보는 물론 원전 해체시장의 선두주자그룹에 진입하는 것을 10년 이상 막은 셈이 됐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해체기술을 개발하다 비슷한 일을 겪을 경우 아예 문을 닫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수억원씩 투자해서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걸 써먹을 곳이 없어지거나 있다 해도 입찰에서 떨어지면 우리는 그대로 망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커버스토리]수십억 들인 ‘원전 해체 ’ 기술개발, 정책 바뀌면 ‘물거품’…“정부, 일관성 유지를”

기업들은 정부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많았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 관계자는 “원전 관련 업계에서 바라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라며 “가장 큰 리스크도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원전 소재 지역의 지자체 공무원들은 해체산업이 지역기업들의 먹거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이미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거나, 지원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한 지자체 공무원은 “대체로 중소기업들인 지역기업들이 아직 불확실한 해체산업에 뛰어들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의마다 해체나 제염의 기본개념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거나 원자로의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는 것에서도 해체산업에 대해 기업들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원전 해체의 성패는 결국 시간과의 싸움에 달려있다”며 “정부는 탈원전으로 원자력산업 방향을 전환한다면서 정작 반드시 필요한 해체산업을 키우는 데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체산업이 활성화될 경우의 전망을 넘어 사회적인 관심과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답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용어 설명

원전의 해체, 폐로(廢爐): 원자로의 기능을 영구히 정지시키고, 시설을 철거해 자연상태로 되돌리거나 다른 시설로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해체와 폐로라는 용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으나 폐로는 원자로를 멈춘다는 좁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유로 점차 해체 쪽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산업법상의 해체는 “허가 또는 지정을 받은 시설의 운영을 영구적으로 정지한 후, 해당 시설과 부지를 철거하거나 방사성 오염을 제거함으로써 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말한다. 또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전 해체를 시설의 일부 또는 전부를 규제 관리에서 제외하기 위한 기술적·행정적 조치로 정의하고 있다.

방사성물질 : 우라늄·플루토늄·라듐 등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

방사선 : 우라늄, 플루토늄 등 원자량이 큰 원소들이 붕괴되면서 다른 원소로 바뀔 때 방출되는 입자나 전자기파.

방사능 : 방사선을 방출하는 능력

반감기 : 일정량의 방사성 원자핵이 처음 수의 절반으로 줄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

제염 : 원전을 포함한 원자력시설을 해체할 때 시설, 장비의 표면으로부터 세척, 가열이나 화학적, 전기화학적, 기계적 세정 및 용융 등의 방법으로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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