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이 아닌 사회공헌 기업인 꿈꿔…자원봉사 ‘흰띠’ 양성”

안호기 논설위원

‘텐트 폴 히든챔피언’ 라제건 회장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각당복지재단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텐트 폴 생산업체를 일군 라 회장은 사회를 따뜻하게 할 자원봉사자 양성을 다음 목표로 잡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각당복지재단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텐트 폴 생산업체를 일군 라 회장은 사회를 따뜻하게 할 자원봉사자 양성을 다음 목표로 잡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1988년 인천 서구에 동아알루미늄(DAC)을 설립해 텐트 폴을 생산하고 있다.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기술 개발에 매달려 2000년 이후 전 세계 프리미엄 텐트 폴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009년 DAC의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해 만드는 아웃도어 퍼니처 브랜드 ‘헬리녹스’(2013년 회사를 분리해 아들인 라영환 대표가 경영)를 세웠다. 텐트 폴 제작 초기부터 개발자로 직접 참가하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친구들이 붙여준 영어 이름(Jake)을 딴 텐트 브랜드 ‘JakeLah(제이크라)’도 갖고 있다.

“텐트는 DAC 폴을 사용한 것과 그러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어요. 최고급 텐트 브랜드라면 모두 DAC 폴을 쓴다고 봐도 좋습니다.”

라제건 동아알루미늄(DAC) 회장(67)의 어조에는 강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전 세계 프리미엄급 텐트 시장에서 DAC 폴의 점유율이 90%라는데 사실이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변이었다. 한국 중소기업이 만든 텐트 폴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백패커나 캠핑 마니아에게 상식이다. DAC 홈페이지에는 힐레베르그, 노르디스크, 헬스포츠 등 글로벌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가 파트너로 올라와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일반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기업을 흔히 ‘히든 챔피언’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캠핑용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DAC가 세계 각국에서 받은 납기물량이 최대 2년6개월에 이를 정도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세계 최고 텐트 폴 제작회사를 키워낸 라 회장은 최근 두 번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원봉사자가 많은 사회가 건강하다는 신념 아래 자원봉사 ‘흰띠’를 대거 배출하는 것을 당면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차근차근 올라서 세계 최고의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직접 텐트까지 설계하는 라 회장답게 자원봉사 육성 전략도 치밀하게 설명했다.

혁신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 내놓으며
기술력으로 세계 최고 텐트 폴 기업 일궈
텐트는 DAC 폴의 전후로 나뉠 수 있게 돼

- DAC 제품은 세계 최고이자 일등이라는 평가는 받는다. 어떤 표현이 더 마음에 드나.

“같은 듯해도 어찌 보면 다르다. 일등은 추월하고 미끄러지고 뒤집어지는 경쟁을 통해 나온다. 최고는 경쟁이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부쟁(不爭·다투지 않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게임이든 스포츠든 남들과 경쟁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절대적 기준을 정해 최고에 이르는 과정을 추구해왔다.”

- 문과 출신(라 회장은 대학에서 사학과 경영학 전공)이 제조업체를 차렸는데.

“주변에서 다들 무모하다며 걱정했다. 창업 당시에는 미국 이스턴사가 전 세계 텐트 폴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텐트 폴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경쟁도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 개발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충분히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알아내고, 그 요구에 부응해 품질을 개선하는 데 진력했다. 그 결과가 세계 최고로 이어진 것이다.”

- 후발주자로서 경쟁 업체와 차별화한 성공 포인트는.

“기술력이 첫 번째다. DAC 제품의 기술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줬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내놓았다.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판매처에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는 해답을 내놓는다. 소비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아웃도어 업계에서 자체 풍동실험실을 만든 것도 DAC가 세계에서 처음이다. 혁신이 없으면 최고를 유지할 수 없다.”

- 주문이 밀려들어 좋겠다.

“나는 싸구려 장사꾼이 아니다. 주문이 확정되면 바이어는 계약에 따라 제품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2년 반 뒤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때 캠핑 수요가 급감한다면 고객인 바이어는 큰 손실을 보게 된다. 그게 걱정이다. DAC는 우리 제품을 사가는 바이어 브랜드도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두세 달에 한 번씩 글로벌 동향에 대해 바이어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실제로 캠핑을 좋아하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어렸을 때 어머니(한국에 걸스카우트를 도입한 김옥라 여사)를 따라서 여름철이면 구의동 캠핑장에서 캠핑을 하면서 지냈다. 당시에는 텐트와 관련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창업하면서 세계 최고에 도전할 분야를 찾을 때, 평소 간직했던 캠핑에 대한 향수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 폴은 텐트 부품 중 하나인데 하청의 설움은 없었는지.

“유명 브랜드가 갑, 텐트 제조사가 을이라면 DAC 같은 폴 제조사는 병이다. 당연히 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DAC는 브랜드나 제조사에 앞서 소비자 요구를 반영했다. 강성을 높이면서도 무게를 줄이는 등 먼저 품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제품 경쟁력이 뛰어나면 세 번째 위치에 있는 병이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전 세계 100여개 회사가 DAC에 폴을 주문할 정도가 됐다. 텐트 설계를 의뢰받기도 한다.”

- 경량 폴 두께는.

“처음 폴을 만들 때 두께는 0.7㎜였다. 지금은 0.4㎜인데 세계에서 가장 얇지만 강도는 오히려 강해졌다. 0.3㎜를 줄이는 데 30년 넘게 걸린 셈이다.”

- DAC 폴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스킨과 폴이 조화를 잘 이뤄야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텐트가 나온다. 과거 시에라디자인에서 시속 160㎞(초속 44.4m)에 견딜 수 있는 텐트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만든 적이 있다. DAC 풍동실험실도 시속 160㎞까지 테스트할 수 있다(강력한 태풍의 풍속을 시속 160㎞로 분류한다). 악천후에도 견딜 수 있는 엑스페디션 텐트는 초속 30m까지 설계하는 게 보통이다. 레저용은 보통 초속 8m 안팎에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한다. 풍동실험에 대한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DAC가 유일하다. 대다수 회사는 설비를 빌려서 풍동실험을 한다.”

- 폴을 전량 국내에서 생산한다는데.

“공정이 자동화돼 있어 노동력보다 설비 비중이 큰 업종이다. 인건비가 싼 나라로 설비를 이전했을 때 가격을 낮출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현재 인천공장 직원이 120명인데, 창업 때부터 재직해온 직원도 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장사꾼이 아닌 사회공헌 기업인 꿈꿔…자원봉사 ‘흰띠’ 양성”

직선형 텐트 곡선화와 폴의 경량화 선도
또 헬리녹스로 아웃도어 퍼니처 시장 개척
새 장르 탐구로 글로벌 트렌드 주도 자부

- 텐트 디자이너로서도 유명하다.

“폴은 건축물 뼈대에 해당하는 만큼 텐트 설계와 관련이 깊다. 1990년대 일본에 텐트 열풍이 불었다. 스노우피크, 몽벨, 오가와 같은 유명 회사의 텐트 새 모델 상당수는 내가 설계했다. 당시 일본 아웃도어 업계에서는 ‘민나 동아데스(전부 동아네요)’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최근에는 미국 브랜드 빅아그네스가 내가 설계한 모델에 ‘Architecture by JakeLah(ABJL)’를 붙이기 시작했다(Jake는 미국 유학 시절 라 회장의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독일 바우데도 ‘ABJL’을 붙이고 있다. 호주 씨투써밋이 30년 만에 내놓은 텐트 모델 ‘텔러스’도 설계했다. 텔러스는 미국 ‘아웃도어매거진’과 ‘백패커’에서 올해의 텐트로 소개할 정도로 성능을 인정받았다(라 회장은 최근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JakeLah(제이크라)’ 텐트를 국내에 출시했고, 제품은 단기간에 품절됐다).”

- 아웃도어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한 셈이다.

“민망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부한다. 1990년대에는 직선형 일변도였던 텐트에 탄성이 뛰어난 폴을 넣어 곡선화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한결 가벼운 알루미늄 합금 폴로 경량화를 선도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헬리녹스를 통해 아웃도어 퍼니처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 헬리녹스도 최고인가.

“헬리녹스의 출발은 트레킹 폴이었다. 폴의 강도는 이미 최고로 인정받고 있었는데, 여기에 쉽게 결속할 수 있지만 잘 안 풀리는 잠금장치를 갖추는 게 문제였다.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유럽 브랜드에 트레킹 폴을 납품했는데 호평을 받았다. 거기서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자체 브랜드인 헬리녹스를 내놓을 수 있었다. 아웃도어 업계의 에르메스 등으로 불리지만, 세계 최고라고 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부분이 있다. 다만 헬리녹스가 새로운 아웃도어 장르를 개척했다는 자부심은 갖고 있다. 그 장르에서는 최고이자 선두라고 생각한다.”

- 새 장르라면.

“인도어의 편리함을 아웃도어로 끌어낸 것이다. 그 시발점은 체어원이었다. 145㎏을 견디는 의자 무게가 890g에 불과한 데다 신발주머니에 쏙 담을 수 있다. 이전에는 이런 아웃도어 용품이 없었다. 물론 체어원을 흉내 낸 짝퉁이 판치고 있기는 하지만(웃음). 체어원 시리즈는 10개가 넘을 만큼 다양해졌고, 지금도 신제품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앞으로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할까.

“편리함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방향이 될 것 같다. 예컨대 재난구조 현장을 보자. 대형 텐트에서 먹고자고 생활하면서 일까지 모두 해결한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30명가량 들어갈 수 있는 대형 텐트가 일상화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지금 개발 중인 텐트 중에는 테이블 위에 컴퓨터를 놓고 작업할 수 있을 정도 크기의 텐트도 있다. 성인 2명이 20~30분 안에 설치할 수 있는 편리함도 갖출 것이다.”

- 본인은 경영자인가, 개발자인가.

“스티브 잡스는 어떤가.”

- 잡스는 직접 개발에 나서기보다는 자신의 아이디어로 직원들을 다그쳤으니 경영자 아닐까.

“내 아이디어를 드라이브하는 경영자지만, 직접 디자인도 하고 있으니 개발자에 가까운 모양이다. 하지만 애플만큼 우리 회사가 커진다면 직원을 다그치는 역할만 하게 되지 않을까(웃음).”

- 직함이 많다(라 회장은 각당복지재단 이사장,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상임대표, 한국죽음교육협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한국은 성장 가능성이 큰 나라다. 시민 각자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는 시민정신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몸담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자원봉사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 자원봉사 정신이 뿌리박혀야 제대로 된 사회이다. 30년 넘게 사업을 했고 나름 성공도 했다. 그냥 장사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생각한 기업인으로 남고 싶다. 우리나라가 품격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원봉사와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어떤 계기가 있었나.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왔다(라 회장 부친은 상공부 차관과 산업은행 총재 등을 지낸 라익진 박사이다). 무엇이든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성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나중에 하나님 앞에 나갔을 때 ‘너에게 그렇게 많은 걸 줬는데 뭘 했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라고 변명거리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세상을 다시 둘러보고 의미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시민 각자가 주인 되는 시민정신 필요하고
사회 따뜻하게 할 자원봉사 운동 확산돼야
봉사정신이 뿌리에 박혀야 제대로 된 사회

- 자원봉사자를 어떻게 키우나.

“자원봉사도 재미와 보람이 있어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 처음 자원봉사 하려는 사람들에게 심오한 철학이나 국가관에 대해 얘기하면 자신과 상관없는 따분한 얘기라고 여길 것이다. 태권도 배울 때 흰띠에서 청띠, 홍띠 이렇게 올라가듯이 자원봉사 흰띠가 많이 생겨야 한다. 일단 재미있고 보람차야 한다. 흰띠 중에 10%는 조금 더 자원봉사에 빠져서 청띠를 맬 테고, 거기서 10%는 홍띠, 또 그중 일부가 자원봉사 유단자가 될 것이다. 남이섬 같은 곳에 대형 텐트를 여러 동 설치하고 자원봉사 희망자를 초대해 음악회 캠프를 여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흰띠 자원봉사자를 육성하는 첫 단계이다.”

- 기업을 통한 사회공헌은.

“옛날에 ‘사농공상’이라는 사회계급이 있었는데, 비효율적인 것으로는 가장 앞에 있는 ‘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반면 맨 뒤에 있는 ‘상’은 신뢰가 있다. 신뢰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30년 전 창업할 때 생각했던 두 가지는 세계 최고와 신뢰 구축이었다. 기업뿐 아니라 사회도 신뢰가 중요하다. 돈 버는 것보다 경영을 멋지게 한 기업인들이 많다. 복지재단을 3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데, 조그만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 여기에만 현금이 30억원 넘게 들어갔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익 창출이라고는 하지만 사회공헌 또한 매우 중요하다. 좁게는 직원들의 근무 여건과 복지 향상에 힘쓰고, 나아가서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좋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장사꾼이 아닌 사회공헌 기업인 꿈꿔…자원봉사 ‘흰띠’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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