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 열풍, 독특함이 만든 필연…이날치만의 음악 꿈꿔”

도재기 논설위원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

대안적 대중음악을 만드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는 “모두 자연스레 녹아들어 몸을 흔들 수 있는 독특하고 즐거운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며 “정규 2집은 판소리 다섯 마당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로 작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이크 제공

대안적 대중음악을 만드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는 “모두 자연스레 녹아들어 몸을 흔들 수 있는 독특하고 즐거운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며 “정규 2집은 판소리 다섯 마당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로 작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이크 제공

대안적·실험적 대중음악을 추구하는 얼터너티브 팝(alternative pop) 밴드다. 영화·인디 음악으로 잘 알려진 장영규(베이스)를 중심으로 국악을 전공한 소리꾼 안이호·이나래·권송희·신유진(보컬), 이철희(드럼), 박준철(베이스·게스트 멤버) 등 20~50대 6명으로 구성돼 있다. 2019년 결성하고, 지난해 5월 판소리 ‘수궁가’와 힙합·솔·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킨 1집 앨범 <수궁가>를 냈다. 1집의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를 현대 팝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댄스뮤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등을 수상했다.

‘이날치’(LEENALCHI)는 여러모로 독특한 밴드다. 느닷없이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는 판소리 ‘수궁가’ 한 대목으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것부터 그렇다. 아이돌 노래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수궁가로 제대로 한 판 소리를 펼쳐냈다. 400여년의 뿌리는 깊지만 잊히는 판소리. 그 한 자락을 단초 삼아 모두의 어깨춤을 부르는 독창적 댄스뮤직을 빚어냈다. 하기야 판소리도 한때 ‘핫한’ 대중음악 아니었던가.

‘범 내려온다’의 열풍은 사실 느닷없거나 우연이 아니다. 이날치가 추구하는 음악, 구성원들, 작업과정 등의 독특함이 만든 필연이다. 이날치란 밴드명만 봐도 그렇다. 소리와 더불어 줄을 잘 타 ‘날치’로 불린 조선 후기 명창 이날치(이경숙·1820~1892)를 그대로 차용했다. 밴드 구성도 베이스 두 대(장영규·게스트 멤버인 박준철)와 드럼(이철희), 국악을 전공한 보컬인 소리꾼 4명(안이호·이나래·권송희·신유진)이다. 흔히 아는 구성이 아니다. 저마다 활동하던 20~50대가 하나로 뭉쳤다. 신진 밴드지만 멤버들의 음악활동을 모두 합치면 150년이 넘는다.

이들을 의기투합시킨 게 바로 이날치가 추구하는 음악일 것이다. 이날치는 30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얼터너티브 팝(alternative pop) 밴드”로 규정했다. 실험적이고 독특하며 대안적인 대중음악이다. ‘퓨전 국악’ ‘조선 힙스터’ ‘크로스오버’ 같은 기존 틀과 수식어를 거부한다. “익숙하고 쉬운 것보다 낯설고 어렵지만 새롭고 독특한 이날치만의 음악”을 위해 “일단 해보고 잘 안 되면 또 해보고, 더 해본다”고 말한다. “끝없는 실험과 도전으로 누구나 자연스레 몸을 흔들 수 있는 즐거운 음악”을 원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그냥 수궁가’가 아니라 ‘이날치의 수궁가’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날치를 주목하는 이유다.

20~50대 뭉쳐 각자의 소리 존중
기존 틀 거부한 그들만의 수궁가로
어깨춤 부르는 댄스음악 빚어내

- 코로나19로 무대가 많이 줄었는데, 어떻게 지내나.

“우리도, 주변 뮤지션들도 공연이 취소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춤추기 좋은 이날치 음악 특성상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무대가 없다보니 영상물을 만드는데 라이브 무대와는 다르다. 그래도 거리 두기 속이지만 얼마 전 LG아트센터, 울산에서 공연해 아쉬움을 달랬다.”(신유진)

- 이날치가 큰 주목을 받은 요인은.

“시작은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익숙한 줄 알았던 게 생소해지고, 생소하다고 여겼던 게 익숙해지는 기묘한 전복. 그것을 즐거운 경험으로 여긴 것 같다. 지인이 ‘애써 섞이려고 한 것 같지 않은데 신기하게 잘 맞아들어가는 게 재밌다’고 하던데, 중요한 지점이다. 전통에 대한 편견이 흐려진 것도 한 요인으로 본다. 그동안 전통이 귀하거나 고루한 것으로 여겨졌다면 이젠 조금 다른 ‘어떤 것’이 됐다고 할까. 그런 흐름 속에서 이날치 음악이 편견없이 일상적 음악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또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음악을 즐기는 방식의 변화도 큰 요인이다. ‘보는 음악’의 즐거움을 협업으로 완성시켜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네이버 온스테이지, 한국관광공사, HS애드 등 많은 이들이 참 고맙다.”(안이호)

- 신진 밴드임에도 멤버들 각자 쌓아온 내공이 잘 조화되는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활동 목표랄까, 음악적 목표 등이 뚜렷했다. 저마다 맡은 역할을 확실히 잘 인지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자신의 역할을 잘해내는 과정에서 하나로 모이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장영규)

- 멤버들이 20~50대, 혼성이다. 세대차이를 느낄 때는 없나.

“이해나 공감이 부족해 나오는 문제는 전혀 없다. 가족같이 편하게 지낸다. 다만 유행한 트렌드나 놀이방식이 다른 경우를 확인할 때 세대가 다름을 느낀다. 나는 고무줄놀이를 하고 놀았는데 막내 유진이는 해본 적이 없다고 해 놀랐다.”(권송희)

- 보컬들은 소리꾼 특성상 서로 다른 선생님을 사사해 소리가 다를 텐데, 어떻게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나.

“한 소리만을 고집하지 않고 각자의 소리를 존중한다. 각자의 버전을 녹여 같은 가사라도 다르게 불렀다. 하나로 모아야 할 때는 전체 분위기에 가장, 더 잘 어울리는 소리를 선택했다.”(권송희)

- 이날치의 특징을 꼽는다면.

“우선 악기 편성이 특별하다. 판소리는 원래 소리꾼이 리듬악기인 북과 호흡을 맞춰간다. 그래서 화성을 덜어내고 리듬을 더 살리기 위해 기타 대신 베이스 두 대와 드럼으로 편성했다. 보컬도 소리꾼이고, 그렇기에 노래 내용이 ‘이날치만의 수궁가’란 것도 특징이겠다.”(신유진)

[논설위원의 단도직입]“‘범 내려온다’ 열풍, 독특함이 만든 필연…이날치만의 음악 꿈꿔”

- 이날치가 추구하는 음악,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싶다. 좋은 음악, 이날치만의 음악을 많이 만들면서 오래오래 활동할 생각이다(이철희). 한마디로 관객들이 우리 음악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 수 있는 즐거운 음악을 원한다(신유진).”

- 판소리와 여러 현대음악 장르를 절묘하게 재해석·융합해 독창적인 사운드, 음악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개인적으로 다른 장르 음악을 만날 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펼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날치 음악은 판소리, 밴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가장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운드가 나왔다. 판소리 본질인 리듬을 중심으로, ‘수궁가’를 차용해 해체·조립하는 과정이었기에 본질에 더 집중해 만들 수 있었다. 발성을 바꿔 노래처럼 부르거나, 화음을 쌓거나, 드럼으로 전통 장단을 치는 것을 하지 않았다. 부족한 걸 채우기보다 잘하는 부분을 더 집중해 펼쳐낸 것이다.”(권송희)

판소리·밴드 한쪽 치우치지 않고
잘하는 부분 집중적으로 펼쳐
잘 안 되면 또 해보고 더 해보며
재해석과 융합의 독창적 사운드

- 도전과 낯섦의 추구는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할 텐데, 그럼에도 도전을 가능케 하는 힘은.

“장영규·이철희님은 다양한 장르의 협업 활동을 오래해왔고, 그 분야의 최전방에 있다. 보컬들 역시 저마다 창작활동을 계속해왔다.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모이니 낯섦을 즐겨한다. 이상하거나 안 될 것 같아도 일단 하고 본다.”(권송희)

- 익숙하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대중음악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애쓰는 부분이 있다면.

“논의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일단 실행해 본다. 잘 안 되면 또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더 해본다. 물론 안 되는 것이 있지만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또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은 피한다. 초반엔 이게 어려웠는데 결과물이 하나씩 만들어지면서 확신이 생겼다. 1집 소재인 ‘수궁가’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다. 쉽게 잘 어울리는 것을 찾아 만들었다면 ‘그냥 수궁가’는 될 수 있어도 ‘이날치의 수궁가’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안이호)

- 이날치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를 강조하며 특정 장르로 구분되거나, ‘퓨전 국악’ 등 특정 시각도 거부한다.

“그냥 조금 독특한 어떤 음악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음악 외적인 가치를 덧씌우는 순간 음악을 즐기는 스스로가 불편하고 재미없을 것이라 본다.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렇다. ‘이날치 음악이 노동요로 좋다’는 말이 참 좋다. 일상에 녹아들어 일상을 공유하고 즐거움을 주는 음악이란 뜻으로 이해돼서다. 그걸로 충분하다.”(안이호)

- 보컬들이 생각하는 국악의 현대적 계승은 어떤 것일까.

“여전히 그 답과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다만 과거의 것을 억지로 지금 여기에 끌어오는 건 분명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전통이라는 큰 이념의 틀을 극복하고 판소리라는 예술을 순수하게 행위하다 보면 자연스레 두 시간이 맞닿는 지점이 생기지 않을까. 과거나 지금이나 살아있는 예술을 하는 일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과 관계 맺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이나래)

- 대중음악은 음악성과 더불어 상업성도 중요한데, 고민하는 부분은.

“어릴 때는 대중성과 음악성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편견을 가졌다. 지금은 좋은 음악도 대중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일단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만 집중한다. 그 후 만들어진 결과물이 어떤 대중과 만날지, 어떤 규모의 시장에서 대중성이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시장에 가고자 한다.”(장영규)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2집 준비
판소리 다섯 마당 떠나 새 얘기로
밴드 이날치의 결과물 내고 싶어

- 어떤 분야든 다양성이 있어야 그 생태계가 건강하다. 음악도 마찬가지인데, 우리 음악시장은 독립(인디) 뮤지션, 밴드가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쉽지 않다. 이날치의 경제적 지속 가능성과 이날치가 보는 음악시장은.

“우선 이날치가 해외에도 잘 알려진 것처럼 보이는데 민망하다. 해외시장에서 활동한 적이 없고, 그러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비된 것, 유튜브 조회수 등을 음악활동이라 할 수 있을까. 해외에서 활동하고 알려진다는 것은 적어도 해외 음악신에서의 활동, 또 국가보조금 등이 아니라 그 경제구조 안에서 자체 수익을 낼 때라고 본다. 현재 우리 음악계는 한쪽의 시장은 과잉되고, 다른 쪽은 시장 자체가 없다. 두 시장이 연결돼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독립 뮤지션들로 이뤄지는 작은 시장이라도 함께 만드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이건 개인이나 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음악신에서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장영규)

- 해외 진출 계획은.

“작년과 올해 말까지 계획돼 있던 해외 공연, 페스티벌들이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됐다. 영상으로 참여하는 공연은 있지만, 실제 국제 무대를 이날치의 음악으로 뜨겁게 달궈보고자 하는 열망이 크다. 대형 페스티벌이나 작은 공연장, 클럽들을 투어하며 관객들과 호흡하고 싶다. 하지만 모두 불투명한 상태다.”(이나래)

- 국제적으로 이른바 ‘K팝’이 더 주목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K팝이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대중음악을 지칭한다면, 말 그대로 한국의 문화와 생각으로 소화된 음악이어야 매력적으로 비칠 것이다.”(이나래)

- 정규 2집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팬과 대중이 특별히 기대할 점이 있다면.

“아직 구체적 단계는 아니다. 다만 내부에서 합의된 것은 기존의 판소리 다섯 마당(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을 소재로 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작업해 보자는 정도다. 1집이 멤버 개개인의 기량·음악 구성의 완성도가 좋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 이제는 밴드로서의 완성도와 정체성을 더 다듬어야 할 때라 본다. 여전히 판소리 소리꾼과 밴드의 결합 정도로 이날치를 보는 분들이 계시다는 건 아직 우리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2집은 무엇과 무엇의 결합이 아닌 ‘밴드 이날치’의 결과물이 되도록 잘 준비하겠다.”(안이호)

- 앞으로 예정된 일정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페스티벌 등이 있다. 또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에서 임민욱 작가와 병행 전시를 한다. 임 작가와 오랜 파트너로 여러 작업을 해왔기에 파트너십에 집중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장영규)

- 이날치 명창이 지금의 이날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할까.

“‘허허, 내 이름을 사용하다니 뿌듯하군’ 하고 웃지 않을까. 그러곤 ‘자네들 음악을 들으니 판소리는 익숙하지만 저 요상한 악기 소리는 낯설구먼. 희한하게도 들을수록 어깨춤이 절로 나니 이 음악에 맞춰 내 줄타기도 같이함세’라며 어깨춤을 출 것 같다.”(권송희)

[논설위원의 단도직입]“‘범 내려온다’ 열풍, 독특함이 만든 필연…이날치만의 음악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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