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에도 불어닥친 'ESG 태풍'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나

박상영 기자
부산항 신선대부두. 연합뉴스.

부산항 신선대부두. 연합뉴스.

프랑스와 우간다 인권·환경보호단체는 2019년 프랑스 최대 에너지기업인 토탈(Total)에 경고장을 발송했다. 토탈이 우간다에서 원유 시추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의 토지를 강압적으로 취득하고 환경오염을 초래했다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했다. 토탈은 이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생물다양성 보존 계획을 수립하고 토지매입도 감독기구의 관리를 받으면서 진행했다. 시민단체의 이같은 견제는 프랑스가 2017년 ‘공급망 실사법’을 도입했기에 가능했다. 공급망 실사법은 기업에 원료나 부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는 없었는지, 환경파괴는 발생하지 않았는지 점검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제재하는 내용이 골자다.

투자를 결정할 때 주요 고려사항으로 자리 잡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급망 전 과정에 환경, 인권 등에 대한 책임이 부과됨에 따라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지역에서 ESG 준수가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17일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와 공동으로 ‘유럽 환경규제 동향 및 대응방안 웨비나’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최근 유럽연합(EU)이 ESG와 관련한 다양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에 맞춰 수출기업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업들이 가장 촉각을 세우는 규제는 ‘EU 공급망 실사지침’이다. 지난 2월 EU는 2024년 시행을 목표로 기업에 공급망 전체의 환경·인권 보호 현황에 대한 실사 의무를 부과하는 ‘공급망 실사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EU에서 매출이 일정액 이상 발생하는 한국 대기업들은 발효 2년 뒤, 섬유·농업·광물 등 고위험으로 분류된 산업의 중견기업은 4년 뒤부터 적용받는다. 이들 기업은 인권·환경에 관한 실사의무 내용을 사내정책에 반영하고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공급망 내 자회사 및 협력업체와의 협의를 통해 인권·환경에 대한 영향 평가도 진행해야 한다.

공급망에도 불어닥친 'ESG 태풍'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나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대응에 나섰다. 스웨덴 의류업체 에이치앤앰(H&M)은 판매하는 모든 의류의 공급자 정보를 제공 중이다. 소비자는 H&M 웹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손쉽게 생산지와 공급자, 생산 공장 이름, 주소, 노동자 수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 현황 감시에 유용한 정보”라면서도 “임금 조건, 생활임금 보장 약속 등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에너지 국영기업인 바텐폴은 인권 위험평가와 행동계획 관련 대화를 거부한 콜롬비아 드루몬드 광산을 거래처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EU의 공급망 실사 의무화에 대해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46%에 달했다.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1.0%에 그쳤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조선·기계 업종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투자증권은 “산업재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외주화라는 특성상 사회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자동차·화학·철강 업종도 중소협력사 비율이 높고 온실가스 감축이 요구되는 만큼 영향권에 놓일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수출 중소·중견업체를 대상으로 공급망 실사에 대비한 모의평가와 컨설팅을 제공하기로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공급망 ESG가 개별기업을 넘어 공급망 재편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EU의 공급망 실사법이 시행되면 기업에 대한 비영리기구 및 지역사회의 소송 제기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EU의 높은 인권·환경기준 충족 여부가 협력사 선정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급망 위험요소가 높은 중국, 아프리카, 남미의 기업 대신 실사의무 관련 대응이 쉬운 국가의 기업으로 공급망을 재편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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