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정책 비판했다 '밥줄' 끊긴 재정전문가…“유력 정치인 비판 전 '자기검열'하게 돼”

이창준 기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법적 다툼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법적 다툼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치우치지 않고 실명 비판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비판하는 게 두려워지더라고요.”

지난 3월4일, 국가 재정 전문가인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후보(현 국민의힘 분당갑 국회의원 후보)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했다. “대선 후보의 사회적 신뢰를 훼손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안 후보는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D4’라는 국가 부채의 종류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이를 두고 이 위원이 “안 위원장이 없는 개념을 만들었다”며 지적한 것이 발단이 됐다.

(관련기사: [정리뉴스]안철수 고발 논란 촉발한 ‘D4부채‘는 무엇?…“’동명이개념‘을 안 위원장이 혼합해 만든 오개념”)

고발장이 접수되고 3개월 가까이 흐른 지난 27일, 이 위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안철수 후보의 고발 이후 의회 강의가 뚝 끊겼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주로 강의와 연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안 후보에게 고발당한 이후 법적 제재와 무관하게 경제적인 타격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유력 정치인의 정책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고발되면 무죄가 나오거나 기소조차 되지 않아도 이미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며 “이제는 안철수 후보가 아무리 틀린 말을 해도 입조심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적었다. 지난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개인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고발 사건’ 이후 외부 강의가 끊겼다는 글을 봤다.

“저는 정당 세미나나 국회의원 모임, 혹은 지방 의회 등을 대상으로 재정 관련 강의를 꾸준히 해왔다. 작년 통장 기록을 보니까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한국의 모든 정당에게 강의료를 받은 내역이 있었다. 지역으로 봐도 경상도, 충청도 할 것없이 전국에서 정당이나 의회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오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 뿌듯했다. 그런데 고발 사실이 알려진 이후 국민의힘 측 뿐 아니라 모든 의회 강의 섭외가 한 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안 후보나 국민의힘 측으로부터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나.

“압박이야 없겠지만 아무래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한다. 지방 의회 강의의 경우 의회 사무처에서 추진하는데, 특정 정당에게 고발당한 강사를 섭외하는 것에 사무처가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처음 고발장을 받았을 때에도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나.

“처음에 고발됐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별 부담이 없었다. 유죄는커녕 기소될 일이라고조차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그냥 페이스북에 ‘이런 웃긴 일이 있다’고 쓰고 넘어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사실 법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그런데 법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하더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건.

“고발장을 받아들고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국가 부채 논쟁이나 재정 논쟁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지는 건 ‘이상민이 뭘 잘못했길래 고발을 당했나’에 대한 논쟁 뿐이었다. 모임이나 다른 강의를 나가면 이젠 ‘재정전문가 이상민’이 아니라 ‘안철수에게 고발당한 이상민’으로 소개된다. 유력 정치인이 고발만 하면 피고발인은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검증의 광장으로 끌려 나오게 되는구나 싶었다”

-수입은 얼마나 줄었나. 생활에 불편한 수준인가.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작년과 비교해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지방의회 강의는 완전히 없어졌다. 당연히 불편하다. 문제는 이게 한 때만 잠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런 상황이 굳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SNS에 “앞으로는 ‘입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예산과 재정은 정치의 영역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은 그에 따라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이유로 저는 재정을 연구하면서 정파를 가리지 않고 실명 비판을 해왔다. 그러나 이젠 두려워졌다. ‘자기검열’을 하게 되더라. 이젠 누가 재정과 관련해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해도 비판하기 주저된다.”

-그럼에도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이건 안철수와 이상민, 두 명만의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죄가 돼도, 기소가 안돼도 그냥 유력 정치인이 고발만 하면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기는 상황이 생겼다. 이를 통해 정치인은 ‘고발만 하면 나는 이긴다’는 교훈을, 시민사회는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고발만 당하면 정치적인 낙인과 경제적인 불편함이 생긴다’는 잘못된 교훈을 얻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잘못된 학습 효과가 점점 더 커지면 우리 사회는 정말 엉망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법적 다툼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법적 다툼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새 정부의 첫 추가 경정(추경)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재정전문가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추경 예산안의 핵심 중 하나는 53조원에 달하는 초과 세수다. 문제는 저를 포함한 어떤 전문가도 이 53조가 맞는지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기획재정부가 일일 세입·세출 징수 내역과 국세 수입 예상 시뮬레이션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에는 일일 세입·세출 내역은 공개해야 된다고 나와있다. 실제로 세출 내역은 매일 공개가 되는데 일일 세입 내역은 확인할 수 없다. 국가재정법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

-53조라는 세수 오차 추계도 틀릴 가능성이 있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검증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다. 자료가 공개되면 여러 민간 전문가들이 각자 검증을 통해 논리적 싸움을 하게된다. 그 과정에서 세입 추계가 정밀해지는 건데 지금은 이 논리적 싸움이 불가능하다. 기재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으니 그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게 ‘반지성’이 아니면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차기 정권을 위해 초과 세수를 ‘일부러 숨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단히 과소 추계한 것은 사실이다. 그게 그냥 관행인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건 기재부가 세입 징수 내역과 어떤 방식으로 세수를 추계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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