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방향

전문가들 "새 정부 경제정책인지 전경련 보고서인지 모르겠다"

반기웅·이창준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16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 첫 경제정책방향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경제’라는 슬로건에서 짐작하듯 기업이 경제를 주도하도록 설계됐다. 핵심 키워드는 대기업 법인세·보유세 완화, 규제 철폐다. 정부 나름대로 공을 들였겠지만, 이번 경방은 물가안정 등 민생 현안에 대한 고민이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낙수효과 내세운 ‘MB 노믹스’, 박근혜 정부 ‘줄푸세’를 반복한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다.

■하준경 교수 “감세하면 경제 성장, 검증되지 않은 논리”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백화점식으로 각종 성장 정책을 나열했지만 핵심은 법인세 감세”라며 “정부는 부자 감세가 아니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감세 혜택은 이윤이 많은 기업일 수록 더 많이 받게 돼 있다”고 했다. 하 교수는 “한 쪽에서 세금을 깎아준다는건 다른 한 쪽에 부담을 더 많이 지운다는 의미”라며 “결국 ‘누구에게 더 부담을 더 지우는 게 맞느냐’에 대한 경제 주체간 형평성 문제인데 이런 부분은 공론장에서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인세 감세가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이 나온다. 하 교수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감세를 한다는 건 감세하면 경제가 성장해 세수가 늘어난다는 논리인데 아마도 80년대 레퍼 곡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정부 주장은 검증되지 않는 논리다. 이런 방식으로 성장이 이뤄질지 알 수 없고 재정 건전성 개선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이상민 전문위원 “대기업 감세 청구서, 결국 국민에게 날아올 것”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전문위원도 감세 비용은 결국 국민에게 청구될 것이라고 본다. 이 전문위원은 “국가의 지출 규모는 정해져 있다. 여기서 법인세를 내리면 내린만큼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 이건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고 했다. 이 전문위원은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사실을 정학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며 “법인세를 내려도 세수가 늘어난다는 주장은 사기”라고 했다.

정부는 법인세 인하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조세 정상화라지만 법인세 인하를 세계적인 추세로 보기는 어렵다. 영국 정부는 현행 19%인 법인세율을 2023년 25%로 올리기로 했고 미국 역시 증세를 추진한다. 이 전문위원은 “글로벌 스탠더드는 증세다. 그동안 전 세계 국가들이 법인 유치를 위해서 법인세를 낮추는 조세 경쟁을 벌이다가 코로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모든 나라가 증세에 합의를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갑자기 한국이 합의를 깬 것”이라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면서 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사적연금 활성화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 전문위원은 “공적연금은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한다. 건강보험 역시 국민 신뢰를 기반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금처럼 사적연금을 우대하고 혜택을 주겠다고 공언하면 공적연금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구재이 소장 “자본시장 공정 과세 노력 훼손”

재정 건전성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건전 재정을 위한 실행 방안은 무성의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재이 납세자권리연구소장은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재정혁신방안들은 과거에 모두 실패했던 대안”이라며 “자산이나 자본이득 증세나 목적세 신설 등 재정 건전성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대책이 없다”고 했다. 구 소장은 “오히려 주식 양도세를 폐지하는 등 그간 자본시장에 대한 공정 과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나원준 교수 “긴축과 동시에 부자감세..미래 세대 포기하겠다는 것”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경제 비전이 시효가 끝난 낙수효과에 머물렀다는 데 아쉬움을 표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노동과 인권, 생태처럼 성장 만큼 중요한 사회적 가치는 모두 제쳐두고 기업의 이윤 추구를 우리가 가야할 방향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며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기에 세금을 깎아주면 저절로 성장한다는 나이브한 구상을 내놨다는 건 윤석열 정부 철학이 얼마나 빈곤한 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 교수는 “대대적인 경제구조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두터운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며 “경제 궤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효과적인 재정집행이 필요한 시기에 긴축과 부자 감세를 추진한다는 건 정부가 미래 세대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 감세와 규제완화에 무게 중심이 실리면서 물가 대책을 비롯한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 교수는 “물가 급격히 오르는 시기에 감세는 시기상으로도 맞지 않다”며 “이 시기에 감세를 한다는 건 대기업 소원수리에 지나지 않는다. 뾰족한 물가 대책이 없다면 줄푸세나 MB노믹스를 꺼낼 게 아니라 차라리 전략적 가격통제 같은 물가 관리 방법을 고민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우석진 교수 “경제 지향점 제시 못해...전경련 보고서 수준”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 경제 주체가 기업만 있는 것도 아닌데 정책들이 과도하게 기업에 편중됐다”며 “그나마 면면을 보면 이행 가능성도 희박하다. 대부분이 법 개정이 필요한데 야당이 협조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 교수는 “기업에 헤택을 몰아주는 정책들을 늘어놨는데 정작 민생 대책은 빠졌고 장기적인 경제 지향점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기업 감세와 규제 완화 부분은 전경련 보고서를 그대로 옮겨 썼다고 해도 무리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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