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금 18% 올랐는데 협력사는 5%

박상영 기자

상반기 기업별 임금 격차 확대

50대 기업 중 17곳 20%넘게 올라
에쓰오일 83%·LG디플 39% 인상
부품업체 상승률은 한 자릿수
자동차 4.9%, 전자업종 3.1% ↑
역대급 실적, 낙수효과는 못 누려

7월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중인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의 모습.  거제 | 이준헌 기자

7월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중인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의 모습. 거제 | 이준헌 기자

지난해 정유·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의 영업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올해 상반기에 주요 대기업의 임금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 협력업체 임금은 소폭 오르는 데 그쳐서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더 확대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납품대금 연동제 같은 대책이 요구된다.

최근 치솟는 물가 아래 대기업 쪽만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중소·중견기업 노동자의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올 하반기에는 반도체·전자 등 주요 업종마저 성장세가 본격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소·중견기업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더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상반기 임금 20% 넘게 오른 정유·반도체·화학

경향신문이 28일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결산보고서를 통해 매출액 상위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1인당 평균 임금을 전수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 임금은 5416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평균 18.0% 올랐다. 50대 기업 중 올 상반기 임금이 전년 동기보다 20% 넘게 오른 곳만 17곳에 달했다.

이같은 상승폭은 고용노동부가 지난 4일 발표한 올 상반기 100인 이상 사업체의 평균 ‘협약 임금’ 인상률(5.3%)보다 3배 큰 규모다. 협약 임금은 임금 인상률 결정 시 지급하기로 한 임금 기준이기 때문에 하반기 경기 상황이 나빠지면 더 떨어져서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2020년과 2021년에도 협약 임금보다 실제 인상률은 각각 0.6%포인트 더 낮아졌다.

올 상반기에 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배경에는 연초에 성과급 지급 영향이 있다. 코로나19로 2020년 적자를 냈던 정유업체들은 수요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임금 상승 폭이 가장 가팔랐다.

에쓰오일은 올 1~6월에만 1인당 평균 임금이 1억100만원으로 1년 전(5500만원)에 비해 83.6%나 올랐다. SK이노베이션도 상반기만 평균 77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83.3% 뛰었다. 에쓰오일과 SK이노베이션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각각 154.4%와 248.9% 올라 임금 상승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LG디스플레이(39.0%, 5700만원), SK하이닉스(37.3%, 8100만원) 등 전자·반도체 업종 임금 상승폭도 크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3년 만에 흑자 전환을 기념해 올 초 기본급의 600%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상반기만 평균 임금이 4100만원에서 5700만원으로 올랐다. 지난해 12조원대 영업이익을 낸 SK하이닉스도 연초 성과급 지급으로 상반기 임금이 5900만원에서 8100만원으로 뛰었다. 업황 개선 등의 영향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24.5%), LG화학(24.1%) 모두 임금이 20% 넘게 올랐다.

멈춘 낙수효과···중소중견기업 임금은 제자리 걸음

임금 관련 일러스트

임금 관련 일러스트

반면, 대기업들의 협력업체 임금은 찔끔 오르는 데 그쳤다. 경향신문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자동차부품 업종 중소·중견기업 28곳의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전년 대비 올 상반기 평균 임금은 2885만원으로 4.9%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로 현대자동차(4300만원)와 거래하는 규모가 큰 1차 부품협력사인데도 같은 기간 현대차 임금 증가율(13.2%)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자동차부품 중소·중견기업 실적에는 이미 빨간 불이 켜졌다. 이들 기업은 상반기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한 데 비해 영업이익률은 8.9% 줄어들었다. 원재료 가격이 상승한 가운데 판매물량 감소로 물류비 등 고정비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자부품 업종 임금 증가율 역시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낮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자 부품 업종 16곳 중소·중견기업의 상반기 임금(평균 2875만원)의 증가율을 분석해보니 3.1%에 그쳤다.

이들 기업은 주로 삼성전자(5100만원) 등 대기업과 거래하는 규모가 큰 1차 협력사지만 같은 기간 삼성전자 직원 1인당 임금 상승률(6.1%)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업종 자체는 호황이었지만, 물량 증가보다는 최종 판매단가 상승 위주여서 이익은 주로 대기업에 집중됐다. 실제로 16개 중소·중견기업 중 절반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로 적자에 빠졌다.

기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을수록 임금 인상률이 낮아지는 점은 고용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협약 임금 상승률은 1000인 이상 기업은 5.6%, 300인 이상 기업이 5.4%, 100∼299인 기업이 5.1%로 기업 규모에 따라 점점 낮아졌다. 대기업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지만 중소·중견기업으로 이익이 확대되는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고물가에 경기 둔화, 하반기 격차 더 벌어질 수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시장에서 한 시민이 과일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시장에서 한 시민이 과일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전망 또한 좋지 못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원재료 가격이 상승한 데다, 최근 금리마저 빠르게 오르면서 경영난이 예상돼 하반기 임금 인상 폭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자동차 업종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경영 여건이 나빠져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매출이 감소한 국내 완성차 업체가 협력사에 고통 분담을 요구할 경우 이를 외면하기는 힘든 게 현실”이라며 “가격 경쟁력을 위해 제품 단가를 인하하면 협력사들이 임금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연합회는 “국내 생산물량 감소 등으로 완성차업계는 물론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전환 등으로 애로에 처한 국내 1만3000개 부품업체들이 더욱 큰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종도 주요 기업들이 침체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맨서 임금 상승 폭은 하반기에도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말 충북 청주공장 증설 결정을 보류한 상태다. 삼성전자도 올 상반기 설비 투자액을 지난해보다 13.5% 줄이며 속도조절 나섰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량을 늘려야 중소·중견기업 매출도 늘 수 있다”며 “하반기 반도체 업황 둔화로 신규 투자 지연이 예상됨에 따라 관련 중소·중견기업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시범운영을 앞둔 납품대금 연동제에 주요 대기업들도 참여하는 대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게 하는 제도다.

또 저소득층의 경우 필수재 지출 비중이 높아 물가 상승에 따른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 있어 소득보전 방안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그동안 저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임금이 낮아도 충격이 크지 않았지만 이제 물가마저 높아져서 상황이 달라졌다”며 “실질임금 감소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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