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고요한 특허청 심사관 사무실…도대체 무슨 일이?

윤희일 선임기자
지난 15일 오후 3시50분 특허청 9층 융복합기술심사국 사무실 풍경. ‘집중심사시간’인 오전 9시30분~11시, 오후 2~4시는 심사관들이 외부 전화도 받지 않은 채 오로지 특허심사에만 집중한다. 윤희일 선임기자

지난 15일 오후 3시50분 특허청 9층 융복합기술심사국 사무실 풍경. ‘집중심사시간’인 오전 9시30분~11시, 오후 2~4시는 심사관들이 외부 전화도 받지 않은 채 오로지 특허심사에만 집중한다. 윤희일 선임기자

“….”

조용했다. 근무자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의 말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지난 15일 오후 3시50분 대전 서구 정부대전청사 3동 특허청 9층 융복합기술심사국. 칸막이 안 책상에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를 켜놓고 자료를 열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가득했지만, 사무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기업이나 일반인(발명가)이 출원한 특허에 대해 심사를 진행하는 심사관들은 오로지 심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사전에 취재 허가를 받고 사무실에 들어갔지만, 심사관들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오후 4시가 되기를 기다려렸다가 한 심사관을 만났다. 오후 4시는 ‘집중심사시간’이 끝나는 시각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심사 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심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2시간 동안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심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우선 심사에 집중할 수가 있기 때문에 심사의 질이 높어지고 건당 걸리는 심사 기간도 대폭 줄어들었습니다.”(신재철 심사관·53)

인공지능(AI)와 빅데이터 등 첨단분야의 특허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신 심사관은 “AI 및 빅데이터분야 특허에 대한 심사의 경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데 ‘집중심사시간’제도가 시행된 이후 심사에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게 돼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집중심사시간’
특허 심사 품질 높아지고, 속도 빨라지고

지난 9월 16일부터 ‘집중심사시간’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특허청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특허청은 심사관들이 심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전 9시30분부터 11시까지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를 ‘집중심사시간’으로 설정한 뒤 이 시간에는 심사관들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심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난영 특허청 실무관이  지난 16일 오후 특허청 9층 융복합기술심사국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다.  민 실무관은 특허 심사와 관련해 민원인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관련 내용 등을 메모했다가 집중심사시간이 끝난 뒤 해당 심사관에게 전해준다. 윤희일 선임기자

민난영 특허청 실무관이 지난 16일 오후 특허청 9층 융복합기술심사국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다. 민 실무관은 특허 심사와 관련해 민원인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관련 내용 등을 메모했다가 집중심사시간이 끝난 뒤 해당 심사관에게 전해준다. 윤희일 선임기자

특허청은 우선 이 시간대에 심사관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별도의 전담 직원이 받도록 조치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특허청 홈페이지와 심사 관련 통지서의 심사관 연락처를 각 심사과의 대표 전화번호로 변경해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 전담 직원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은 뒤 전화내용을 메모해놨다가 집중근무시간이 끝난 뒤 각 심사관에게 전해준다. 심사관들은 이때부터 특허출원자 등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어 각종 상담에 응한다.

특허청은 또 집중근무시간에는 청장은 물론 국장이나 일반 행정부서 직원들도 심사관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통계나 자료 등 심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자료를 심사관에게 요구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 제도가 시행된지 2개월이 지나면서 심사관들로부터 좋은 반응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양자기술 관련 심사를 진행하는 강민성 심사관(42)은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 특허를 출원한 발명자에 대해 더욱 신경을 쓸 수 있게 되고 높은 질의 심시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면서 “특허청 내부에서 심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면서 심사관으로서 자부심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사기간 중에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여유를 갖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전화상담도 더 원만하게 진행되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특허청 심사관 1명 심사 건수, 외국보다 2~4배 많아

특허청이 이런 제도를 도입한데는 그 배경이 있다. 한국은 미국·중국·일본·EU(유럽연합)과 함께 특허 5대 강국으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한국 특허청의 심사관들은 너무 많은 일에 시달리고 있다. 2020년 기준 한국 특허청 심사관 1명당 연평균 심사처리건수는 206건으로 중국(91건), 미국(73건), EU(58건)에 비해 약 2~4배 많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심사관 1명당 연평균 심사건수는 164건으로 한국에 비해 훨씬 적다.

특허청은 이들에게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하는 경우 밀려드는 특허 등의 심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집중심사시간’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특허 심사관은 물론 상표·디자인 심사관에게도 적용된다. 특허청 직원 1811명 중 심사관은 1160명이다.

서을수 특허청 융복합기술심사국장은 “특허청의 핵심 업무인 심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면서 “아직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특허·상표·디자인에 대한 심사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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