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속지 않으려 ‘공부 찾아 삼만리’…부동산, 이젠 ‘제도권 교육’으로 이뤄져야

권정혁·유희곤 기자

③ 또 다른 전세사기 예방하려면

[법률·부동산·금융, 얼마나 아십니까] 깡통전세 속지 않으려 ‘공부 찾아 삼만리’…부동산, 이젠 ‘제도권 교육’으로 이뤄져야

“22%.”

경향신문이 지난 6월20일부터 7월1일까지 2030세대 2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률)·부(동산)·금(융) 모의고사’에서 주택 임차인(세입자)의 대항력 발생 시기와 조건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 비율이다(8월9일자 1·8·9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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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인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전입신고)을 하면 확정일자를 받게 되는데, 대항력은 다음날 발생한다. 만약 임차인이 이사를 오면서 전입신고를 하는 날 임대인(집주인)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집주인의 채무불이행 등으로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 은행(금융기관)의 근저당권이 임차인의 임차권(전세권)보다 우선한다.

젊은 세대는 부모에게서 독립하면서 임차인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세 들어 사는 집이 넘어가더라도 주거권과 재산권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대항력 발생 시점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특히 올해는 상반기에 불거진 인천 전세사기 사건으로 세입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지만 2030세대 10명 중 8명은 여전히 임차인의 대항력 발생 시기를 정확히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무부처 국토부, 전문가 양성 초점 일반시민 대상 교육 없어
시민들 지자체·시민단체·기업·공인중개사 학원 특강에 몰려
핀란드 등 해외선 교과과정서 ‘부동산 계약·생활 법률’ 배워

법·부·금 중 교육 부처 불분명한 부동산

한 시민이 인터넷등기소에서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열람하고 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입주예정 주택의 소유권 및 채권·채무 관계 등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한 시민이 인터넷등기소에서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열람하고 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입주예정 주택의 소유권 및 채권·채무 관계 등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나쁜 집주인들은 주로 사회 초년생들인 피해자들이 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점을 악용했다. 인천 부평에 사는 20대 직장인 A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본 후 뒤늦게 알게 된 부동산 관련 법과 제도가 많다”면서 “예컨대 ‘최우선변제금’이 뭔지도 모르고 전세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우선변제금은 임차인 보호를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로, 살던 집이 경매(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세입자가 앞서 배당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다.

2년차 직장인 B씨는 전형적인 ‘동시진행’ 사기 피해를 당했다. 동시진행은 임대인이 전세계약과 매매계약을 동시에 진행하는 사기 수법이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매매가 이상으로 받은 다음 무자본 갭투자를 하려는 소위 ‘바지 집주인’에게 명의를 넘기고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B씨가 지난해 임차(전세)계약을 한 집은 얼마 후 송모씨(사망 당시 27)로 소유권이 이전됐는데, 송씨가 지난해 12월 돌연 사망하자 B씨는 전세금을 돌려받을 길이 막혔다. 송씨는 인천 미추홀구에 빌라와 오피스텔 등 60여채를 보유한 갭투자자여서 B씨와 같은 피해자가 많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동산 분야는 일반 시민, 특히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할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이 없다. 법률 교육은 관련 법이 제정돼 법무부가 담당하고 있다. 금융 분야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서민금융진흥원 등 공공기관과 민간 금융사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부동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부동산 관련 교육 프로그램은 없다. 부동산 관련 교육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국토종합계획의 수립 및 조정, 국토의 보전·이용·개발, 도시·도로 및 주택의 건설, 해안 및 간척, 육운·철도 및 항공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있다(대통령령 ‘국토교통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3조).

국토부는 ‘부동산거래분석기획단’을 지난해 12월 ‘부동산소비자보호기획단’으로 개편해 부동산 거래 단계에서의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했지만 사전 예방을 위한 교육은 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예방 및 구제 차원에서 ‘찾아가는 전세피해 상담버스’를 지난 4월부터 운영하고 있지만 상설 교육 프로그램은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부동산 관련 교육은 전문가 양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국토부 소관 법률인 ‘주거기본법’은 “주거복지 등 주거정책의 수립·추진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주거권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복지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을 지원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국토부 산하기관인 국토인재개발원도 국토부 소속 공무원,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공무원, 관계기관 임직원 등의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훈련을 담당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이 국민적 관심사인데도 제도권의 부동산 기초 교육 과정은 사실상 전무하다”면서 “계약과정에서 ‘역전세’나 ‘깡통전세’ 등 피해를 막기 위해 일반 시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이해하고 토지대장이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볼 수 있도록 기초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공부하러 삼만리…사분오열 교육

시민들은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산발적으로 실시하는 부동산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경기 수원시는 지난 16일 장안구청에서 ‘내 보증금, 알아야 지킨다’를 주제로 전세사기 예방 교육을 했다. 전세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 거짓 전세계약으로 보증금을 가로채는 ‘가짜 임대인’ 사례를 소개하고 사기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한 부동산 기초지식을 전달했다. 참석자는 100여명이었다. 수원시는 연말까지 이런 순회 교육을 권역별로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 각 자치구도 올해부터 전세사기 예방 특강을 하고 있다.

청년 비영리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은 2013년부터 매년 약 80회씩 청년주거 기초교육을 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10대 후반 청소년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지난 10일과 11일에는 용산구 청년 1인 세대주를 대상으로 안전한 매물 찾는 법, 세입자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분쟁 해결법 등 기초 주거교육을 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부동산 관련 지식을 미리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전세계약 등을 해 답답했다는 청년 수강생이 많다”고 말했다.

일부 민간기업도 전세사기 예방교육을 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 5~7월 8개 지점 문화센터에서 전세사기 예방법 특강을 진행했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은 지난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내 전세금 지키기’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학원이 개설하는 전세사기 예방 특강을 찾는 시민들도 있다. A학원은 지난 6월부터 8월 말까지 7회에 걸쳐 ‘전세사기 예방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7일 연 ‘전세사기 예방 특강’에는 시민 30여명이 참석해 전세사고에 취약한 매물을 선별하는 법, 전세계약 전후로 생길 수 있는 분쟁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이날 특강에 참석한 조서우씨(23)는 “부동산 계약은 큰돈이 오가는 일이다 보니 부동산과 뗄 수 없는 법률이나 계약 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해 알아보러 왔다”고 말했다. 박모씨(35)는 “전세계약을 할 때 중개사들이 알아서 서류구비나 절차를 처리해주다 보니 어떤 내용을 면밀히 확인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면서 “부동산 계약 과정에 대해 전문적이고 자세히 익혀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인 김희경씨(54)는 “지금까지 특별한 사고는 없었지만 공인중개사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 왔다”면서 “세입자와의 계약 과정에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임대사업자인 이모씨(43)는 “세입자의 불법 전대(임차인의 임차)로 소송을 진행 중”이라면서 “임대인 입장에서도 분쟁 발생 시 도움될 수 있는 지식을 배울 필요를 느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부동산 교육을 명목으로 진행된 강의에서 불의의 사기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할 사례도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문병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울의 한 부동산 아카데미 원장 이모씨(53)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유튜브와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치른 후 “투자금을 주면 부동산 투자를 해 수익금을 나눠 주겠다”며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수강생 30여명에게서 약 3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유사수신행위를 하고 새로운 피해자의 투자금을 기존 피해자의 원금과 수익금 지급에 사용하는 ‘돌려막기 방식’을 사용했다”면서 중형을 선고했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는 “부동산 투자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아 투자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으로서 기획부동산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출처가 불분명한 부동산 정보는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학교에서부터 가르치는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자체·시민단체·민간기업 등의 부동산 교육 과정이 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제도권 내 교육 프로그램이 정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동산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관련 교육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오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22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산에서 아파트 등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4.6%에 이른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2 주요국 가계금융자산 비교’ 자료를 보면 국내 가계자산에서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비중은 64.4%로 미국(28.5%), 일본(37.0%), 영국(46.2%)보다 높고 호주(61.2%)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학계에서는 핀란드를 부동산 교육 선진국 중 하나로 꼽는다. 핀란드 법 관련 선택 과목의 세부 내용에는 ‘부동산 관련 계약법’이 포함돼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시의성이 높거나 실생활과 관련 있는 7가지 분야를 선택과목으로 두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동산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독일 베를린주 등도 교과 과정에 부동산과 계약 관련 법률을 다루고 있다.

정상우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대부분 국가들이 사회과 교과과정에 부동산을 비롯한 생활 법률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계약, 주거와 관련된 내용을 특히 중시하는 반면 국내 법률 교육은 준법정신 함양이나 범죄예방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새로운 수요에 맞춰 직장 및 지역과 연계한 부동산 법률 강의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청년층의 수요나 관심이 높고, 부동산 투자 사기도 증가세인 만큼 상설화한 프로그램으로 기초적인 부동산 관련 지식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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