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벽’ 부술 법교육 지원법엔 무관심…위원회는 존폐기로

유희곤 기자

(4) 법은 가까워질 수 있을까

[법률·부동산·금융, 얼마나 아십니까] ‘무지의 벽’ 부술 법교육 지원법엔 무관심…위원회는 존폐기로

“경찰에서 수사한 (온라인 살인예고) 게시글만 400여건인데 (작성자) 상당수가 10대라고 합니다. 매년 법교육을 한다고 들었는데 흉악범죄 교육을 강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법교육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가지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현안질의에서 주고받은 대화이다. 조 의원은 최근 잇따르는 흉악범죄의 철저한 수사와 예방, 관련 법령 개정의 필요성 등을 언급하면서 사전 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한 장관도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미성년자도 필요하면 구속하고 있다”는 한 장관의 발언에 초점을 맞췄다.

법무부 직원도 잘 모르는 법교육지원법

법조계서도 “법교육지원법, 있는지도 몰랐다”
보수 정권선 ‘준법’, 진보 정권선 ‘인권’ 강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 열거한 법교육 목적
국가 운영 원리·국민 기본적 권리로 바꿔야”

“그런 법이 있었어?”

1990년대 말 임관해 20년간 검사 생활을 하고 이 중 약 7년을 법무부에서 보낸 한 변호사는 ‘법교육지원법을 알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기자가 만난 다른 전·현직 법무부 직원 중에도 법교육지원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법교육지원법은 2008년 3월28일 제정되고, 그해 6월29일 시행됐다. 앞서 법무부는 2004년 11월 법 교육을 추진하기로 결의하고 이듬해 3월 본격적인 법교육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월에는 법교육 추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6대 연구과제를 제시했다.

법교육지원법은 그 목적(제1조)을 “법교육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자율과 조화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법의식을 함양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이해하는 건전한 민주시민을 육성하여 법치주의 구현에 이바지함”으로 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법교육지원법에 따라 법교육 프로그램, 법교육 출장강연, 법교육 테마파크로서 법체험관과 법연수관으로 구성된 솔로몬로파크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교육지원법 자체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김현철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8년 논문에서 “법교육지원법은 정부 주도 법교육의 법률적 근거로서 역할을 하고 민간의 법교육 연구 및 교육활동을 위한 인프라 형성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법무부의 법교육 예산은 2008년 9억원에서 지난해 44억원, 올해 84억원으로 15년 만에 9배 이상 증가했다. 솔로몬로파크도 2008년 1월 대전, 2016년 7월 부산, 올 6월 광주 등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법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법교육지원법은 2008년 제정 이후 15년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법무부는 2015년 ‘법교육지원법 개정 방향 및 내용 연구’를 외부 정책연구과제(용역)로 발주해 그 결과를 “법 개정의 기초자료로 삼고 법교육 종합 발전방안 수립에 활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개정안은 발의하지 않았다.

언론의 관심도 작다. 경향신문이 한국언론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 카인즈’에서 등록 언론사(54개)의 2000년부터 지난 27일까지 기사를 검색한 결과 ‘법교육지원법’이 포함된 기사는 24건뿐이었다. 이마저도 “충남대 법률센터가 대학 최초로 법무부 법문화진흥센터로 지정됐다”는 2019년 11월 기사가 마지막이었다.

전문가들은 법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법과 인권 교육을 동시에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보수 정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준법정신 등 법 교육이, 진보 정권에서는 인권 교육이 강조된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포럼 운영위원과 법무부 법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허종렬 서울교대 명예교수는 “인권위는 국내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법무부는 인권 교육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면서 “인권 교육은 법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져야 실효성이 있고, 나의 권리가 조금 제약돼도 상대방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차원의 준법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교육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현철 교수는 “법교육지원법은 목적 조항에서 헌법의 많은 가치 중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을 담고 있다”면서 “법이 개정된다면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국가의 운영 원리와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교육지원법 개정 방향 및 내용 연구’ 정책연구과제 연구책임자인 정상우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학교’와 ‘사회’로 구분한 법교육을 교육 대상에 따라 ‘청소년’과 ‘시민’으로 구분하는 내용으로 법교육지원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교육위원회 폐지 대비해야”

행안부 ‘정부위원회’ 폐지·통합 대상 된 법교육위
“연 2회밖에 안 열려 운영실적 저조…단순 자문만
의견 종합 ‘소통 창구’ 기능…대체 방안 검토를”

폐지 절차를 밟고 있는 법교육위원회를 대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교육지원법은 제4조에서 “법교육에 관한 주요 정책 수립, 사업 추진, 예산의 효율적인 운영 등을 심의”하는 법교육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9월7일 정부 위원회 636개 중 불필요한 246개(약 39%)를 폐지·통합하겠다고 밝혔다. 법교육위원회도 폐지 대상으로, 관련 법안이 지난 3월21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유인규 법사위 전문위원은 법률안 검토보고서에서 “법교육위원회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2회밖에 열리지 않을 정도로 운영 실적이 저조했고 성격도 단순 자문인 만큼 (위원회 폐지) 취지는 타당하다”면서도 “정기적으로 회의가 열리고 있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여러 의견을 종합하는 소통 창구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은 만큼 (대체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낸 정필운 한국교원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도 “법무부는 ‘법교육’의 ‘교육’ 분야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면서 “법교육위원회가 폐지되더라도 법무부가 외부 전문가나 현장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교육위원회 폐지가 확정되면 내부적인 기준을 세우고 필요한 수단을 마련할 예정이고 이를 계기로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 있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차

1. 법·부·금, 2030 모의고사
2.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하는 사회생활
3. 또 다른 전세사기 예방하려면
4. 법은 가까워질 수 있을까
5. 교육은 없는데 일단 공격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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