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고금리=침체’ 공식 깨고 미국만 호황…글로벌 ‘각자도생’ 시대로

이윤주 기자

미국 연준, 기준금리 연 5.25~5.50% ‘최대’로 올렸지만 물가 상승 둔화·고용률 지표 양호·성장률 전망치 웃돌아 ‘골디락스’ 낙관론 부상
중국, 부동산발 채무불이행 위기와 미·중 갈등에 부양책도 안 먹혀…유럽 경제 우등생 독일은 2분기 연속 역성장·올 성장률 마이너스 전망, 유럽 전체 악영향
한국, 고금리·고유가·고환율 ‘3중고 쓰나미’ 속 중국 더딘 경기회복에 수출 부진…경기 부양·가계 부채 양날의 칼 위에선 정부, 정책 운신 폭 좁아

최근 세계 경제의 가장 큰 화두를 꼽으라면 ‘고금리에도 잘나가는 미국과 그렇지 못한 다른 나라들’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초부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필두로 주요국들이 모두 강한 긴축에 들어갔다. 긴축 초기에는 ‘물가 잡기’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같은 방향으로 전력질주했다. 하지만 긴축 2년째에 접어들자 국가별 펀더멘털(기초체력) 차이에 따라 성장률의 흐름, 물가의 둔화 속도 등이 제각각 달리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어느 나라도 기축통화국인 미국만큼의 호황을 누리는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달러의 ‘수퍼강세’도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 경제가 미국의 이례적 호황 아래 각자도생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골디락스’냐 ‘결국 침체’냐

연준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7월까지 1년4개월간 쉼 없이 기준금리를 올렸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연 5.25∼5.50%에 도달했다. 고금리의 충격으로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결과는 예상을 크게 빗나가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안정적으로 둔화하고, 고용은 여전히 양호하며 경제성장률도 전망치를 웃돌고 있다. 연준은 지난 9월 경제 전망에서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6월 1.0%에서 2.1%로 대폭 올려잡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기준 한국(1.5%)과 일본(1.8%)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웃도는 수치다.

미국 경제가 예상 밖 양호한 회복세를 지속하자 경기 침체를 우려하던 목소리는 이제 ‘연착륙’ ‘골디락스’(물가를 안정시키면서 경기 침체도 피하는 이상적 경제상황)가 올 것이란 낙관론으로 대체되고 있다.

미국이 가파른 금리 인상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로는 물가상승률이 둔화하면서 실질구매력이 회복되는 효과를 낳고, 물가가 떨어지니 긴축도 머지않아 끝날 것이란 전망에 소비심리도 살아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1%로 절대적이다. 여기에 실업률이 급등하지 않고 순조롭게 노동시장의 과열이 가라앉고 있다는 점, 코로나19 사태 때 정부가 과감하게 펼친 재정정책이 여전히 가계소득을 보전하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점 등이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경기 침체를 동반하지 않으면서 물가를 끌어내린 경험은 거의 없다. 미국도 끈질긴 물가를 더 끌어내리기 위해 경기 침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거나, 혹은 시차를 두고 고금리의 여파가 나타나면서 결국은 침체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미국의 소비가 예상보다 탄탄한 흐름을 보이면 이것이 고물가를 장기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물가 안정을 우선 목표로 두고 있는 연준이 더 강한 긴축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최근 연준이 고금리 장기화 방침을 선언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되는데, 올해 여름 배럴당 70달러대였던 국제유가가 최근 90달러대를 웃도는 것 역시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주요한 변수로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유가와 함께 미국 사상 최초의 자동차 노조 동시 파업, 미국 연방 정부의 셧다운 우려, 그리고 학자금 대출 상환 재개 등이 미국 경제의 4대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김성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미국 경제가 내년 연착륙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중국과 유럽 경제가 부진한 상황이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하강 위험을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연착륙의 성공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고 밝혔다.

한국, 멀어지는 상저하고

반면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들은 경기 회복세가 둔화하고 있는데,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 2%대 초반까지 내려와 선진국 가운데서는 비교적 빠른 안정세를 보였지만, 역시 최근 오르고 있는 국제유가가 변수로 대기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최근 수출과 내수가 동반 부진에 빠지면서 정부가 기대한 ‘상저하고’ 흐름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인데, 중국의 경기 둔화와 반도체 업황 부진의 부정적 영향에서 아직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월 한국의 전체 교역액 및 총 수출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 20.9%, 19.6%로 높다. 중국이 올해 들어 경제활동 재개를 선언하면서 대중국 수출도 함께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중국 경제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라 기대했던 수출 개선 효과가 지연되고 있다.

올 2분기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전기 대비 0.6%를 기록해 플러스 성장을 유지했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줄어든 데 따른 ‘불황형 성장’의 모습을 보였다. 또 그간 성장률을 뒷받침하던 민간소비도 주춤하면서 하반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가 올해 1.4% 성장할 것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은 1.3%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전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일본에 못 미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소비 둔화 가능성, 중국의 경기 부진 등을 감안하면 한국 수출은 지난해 하반기 부진했던 기저효과를 기대하더라도 연말까지 마이너스 증가율을 지속할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기 둔화를 감안해 긴축 기조를 종료하고 경기 부양으로 정책 방향을 틀기에는 물가 수준이나 늘어나는 가계부채가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통화당국도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이다.

중국, 부동산 위기에 ‘더블딥’

중국은 최근 성장세에 급제동이 걸렸다. 중국은 오랜 기간 세계 제조업의 최대 생산기지이자 수출시장으로 자리 잡은 나라여서, 중국의 경기 침체는 중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주변국 경제에도 파급력이 큰 변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GDP가 1% 하락할 경우 전 세계 경제성장률을 0.3%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발생 당시 강력한 폐쇄정책을 썼던 중국이 연초 경제활동 재개를 선언하면서, 중국 경제가 모처럼 온기를 누릴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중국은 반짝 좋았다가 급격히 둔화하는 모습을 보여 ‘더블딥’ 침체에 빠진 상태다. 중국은 2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6.3%를 기록했지만, 7월 들어 수출이 14.5% 감소하고, 생산자물가(-4.4%)와 소비자물가(-0.3%)가 동시에 마이너스 전환하는 등 경기가 빠르게 냉각됐다.

8월에는 일부 경기 지표가 개선되면서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기대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불안을 거두기 어렵다. 중국 정부가 부양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시장을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연이어 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한 데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중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경제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이 같은 우려는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 시장에서 급속히 자금을 빼서 나가는 흐름을 보더라도 확인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중국 주식 및 채권을 보유한 금액이 지난 8월 490억달러 유출돼 2015년 12월 이후 최대 규모로 감소했다.

한·중과 달리 일본은 성장세가 돋보인다. 잃어버린 30년, 장기 저성장의 대표 국가로 인식되던 일본은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1.5%를 기록했다. 일본은행은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용인하고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엔저를 감수하면서 원·엔 환율은 800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다만 성장률 자체는 약진하고 있지만, 수출 등 외수에 의한 것으로 민간소비 등 내수는 그만큼 살아나지 못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 경제 강국 독일 ‘휘청’

유로존도 휘청이고 있다. 유로존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0.0%, 2분기에도 0.1%에 그쳐 사실상 성장이 멈춰있는 상태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3%로 같은 기간 3.7%까지 내려온 미국에 비해서도 여전히 고물가 상황이 심각하다. 유럽지역은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인접해 있어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수입비용이 더 크게 올랐다. 또 고물가 장기화로 소비가 가라앉고, 또 대외 수요 부진으로 제조업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점도 경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유럽 경제의 우등생이었던 독일이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경기 침체에 빠진 것이 유럽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4분기부터 2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해 ‘기술적 침체’에 진입한 뒤, 올 2분기에도 제로 성장에 그쳐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IMF는 올해 독일의 경제성장률을 -0.3%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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