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의 기업본색
※대한민국보다 대한민국 기업이 더 유명한 세상입니다. 어느새 수 십조원을 굴리고 수 만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밖에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상영의 ‘기업본색’은 기업의 딱딱한 보도자료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공시자료의 수많은 숫자 안에 가려진 진실을 추적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22일 베트남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그랜드 오픈식 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노이(베트남)/정유미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22일 베트남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그랜드 오픈식 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노이(베트남)/정유미 기자

1년에 두 번,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반기보고서와 사업보고서가 공개되는 날이면 대기업 총수들이 보수를 얼마나 받았는지 다루는 기사가 쏟아진다. 어느 대기업 총수가 100억원을 넘게 받았는지, 지난해와 비교해 누가 가장 많이 연봉이 올랐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일례로 국내 재계 서열 6위인 롯데그룹을 이끄는 신동빈 회장은 올해 상반기 도합 112억5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그러나 재벌 가운데 최고 연봉을 찍은 신 회장의 보수가 적절한지를 놓고 이견을 제시하거나 산정 방식을 공개하라고 따져 묻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세계 최고급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손꼽히는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연봉으로 4900만 달러(약 610억원)를 받았다. 다만 쿡 CEO는 연봉을 50%가량 자진 삭감했다. 이런 결정은 “애플의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보수가 과도하다”는 투자자들의 지적을 수용한 조치였다. 지난해 애플의 주가는 23% 하락했는데, 주주들의 반발을 받아들여 연봉을 대폭 줄였다.

어느 기업의 어떤 경영자가 얼마만큼 연봉을 받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이 때문에 주요 국가들은 기업이 어떻게 임원의 보수를 책정했는지 자세히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에도 그런 제도가 없는 게 아니다. 임원 보수는 크게 급여와 상여,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이익, 기타소득으로 나뉜다. 기업은 공시를 통해 각각 항목에 대한 산정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이 산정 기준을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치고 있다.

롯데지주의 경우에도 올해 상반기 신 회장에게 19억1500만원의 급여를 지급하면서 “주주총회에서 승인한 임원 보수 한도 내에서 직급, 근속년수, 직책 유무, 회사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산정했다”고만 설명했다. 공시 내용만으로는 직무나 직급, 기여도 등의 항목별 구성비나 평가 방법, 결과 등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적에 비례하지 않는 보수 산정

신 회장은 지난해 경영 성과급 명목으로도 26억1700만원의 상여금을 받았다. 롯데지주는 “매출액, 영업이익 등 회사의 경영 성과와 리더십, 윤리경영, 기타 회사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사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최근 주요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잇달아 롯데지주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낮췄다. 지난 6월 한국신용평가는 롯데지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A ‘부정적’에서 AA- ‘안정적’으로 변경하면서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수익성이 떨어진 데다 계열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자금 지출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증권위원회(SEC)는 2006년부터 상장법인 임원 보수를 공시할 때 임원의 성과에 따른 것인지, 업황 개선에 따른 효과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같은 업종 경쟁사의 매출, 영업이익 등의 성과도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개별 임원 성과 목표와 실제 달성 현황 등을 제시하지 못하면 SEC의 심사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의 임원 보수 내역과 산정 방식 설명은 수십 페이지에 달하기도 한다.

SEC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지난해 8월 보수와 성과 간의 관계에 관한 공시 규정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상장사는 최근 5개 회계연도의 임원 보수와 재무성과 지표에 관한 사항을 공개해야 한다. 임원 보수와 제시된 재무 지표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직원 월급보다 수백배가 많은 임원 보수의 고액화 현상에 대한 세간의 문제 제기를 반영한 결과다. 팀 쿡이 연봉을 자진 삭감한 것도 이런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등기 임원보다 더 많이 받는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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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보수 산정 기준에 더해 계열사 여러 곳에서 임원을 겸직하는 점도 총수 일가의 보수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올해 상반기 신 회장은 롯데지주뿐 아니라 롯데케미칼·롯데쇼핑·롯데칠성음료·호텔롯데·롯데웰푸드·롯데물산 등 무려 6개 계열사에서 임금을 받았다. 총 112억5400만원을 수령한 신 회장의 연봉은 국내 재계 총수 중 유일하게 100억원을 넘겼다. 앞서 신 회장은 2019년 무려 9곳의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임금을 받았다가 과다 겸직이 논란이 되자 계열사 4곳에 사임계를 제출하기도 했다.

계열사 여러 곳에서 임원을 맡으면 원만한 업무수행에 걸림돌이 된다. 지난 3년간 신 회장의 롯데지주 이사회 출석률은 평균 52.5%(2019년 36.4%, 2021년 44%, 2022년 77%)에 그쳤다. 다른 이사들의 출석률이 대부분 100%에 가까운 점을 고려하면 저조한 성적이다. 주요 계열사인 롯데케미칼 이사회 참석률도 3년 평균 64%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주총 시즌이면 국민연금을 비롯해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과다 겸직 등을 이유로 신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곤 했다.

총수 일가에게만 과도하게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사례도 있다. 이들은 미등기 임원이면서 등기 임원보다 더 높은 보수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주사인 CJ㈜에서만 106억원을 받았다. 이 회장은 미등기 임원이면서도 등기 임원인 김홍기 대표이사(34억원) 보다 보수 규모가 약 3배 컸다. 이 회장은 CJ ENM에서도 미등기임원이었지만 강호성 대표(18억5000만원) 보다 2배 넘게 더 받았다. 역시 미등기 임원으로 있는 CJ제일제당에서도 72억9400만원을 받으며 등기 임원보다 높은 보수를 수령했다.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부회장도 지난해 CJ ENM에서 강 대표보다 2배가 넘는 40억8100만원을 받았다. 의결권 자문사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다른 임원들과 비교해 지배주주 일가 임원에게만 과도하게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합리성과 공정성이 결여됐다”며 올해 CJ ENM 주총에서 이사 보수한도를 늘리는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권고했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지난해 하이트진로에서 53억8000만원을 받았다. 7억4000만원을 받은 김인규 대표보다 7배나 더 보수가 높았다. 5개 계열사에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인 박 회장뿐 아니라 두 아들과 조카·사촌까지 일가 친척도 국내 계열사 15곳 중 7곳에 미등기 임원으로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이처럼 최근 1년간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는 경우는 178건으로 전년보다 2건 늘었다.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상 의사결정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경영 성과에 크게 상관없이 고액의 보수를 챙기는 구조다.

유죄 판결받고도 수십억원 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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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들은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 중이거나 취업제한 처분을 받고도 회사에서 수십억원의 임금을 받았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인 상황에서 지난해 회사에서 72억원이 넘는 소득을 얻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취업제한 기간인 지난해 55억원이 넘는 근로소득을 거뒀다. 이해욱 디엘(DL) 회장도 총수일가 사익편취 혐의로 재판 중이지만 지난해 회사에서 받은 임금이 36억원을 넘겼다.

2011년 6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 사진

2011년 6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 사진

전문가들은 보수체계 개선을 위해 주주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보수지급계획을 주총에서 승인받는 형태인 ‘세이온페이(Say on pay)’ 제도가 거론된다. 2013년 이 제도를 도입한 영국은 보수 정책 찬성표가 50% 미달 시 전년도에 승인받은 보수 정책을 사용하거나 임시 주총을 열어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 미국도 경영진이 3년에 최소 1회 이상 보수 수령을 놓고 주총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2013년 임원 개별보수 공시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 가까이 되지만 실제 공시 내용을 보면 정확히 어떻게 보수금액이 계산되었는지 알기 어렵다”며 “세이온페이 제도를 도입해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주총에서 주주들이 질의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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