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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과 수확체감의 법칙

새들은 노래하는 것이 아니야. 고통 속에 울부 짖는 거지

시리즈 시작을 알리는 첫에피소드가 제목부터 강렬하다. 아름다운 것 조차 고통으로 보이는 때, 성난 두사람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료=넷플릭스

넷플릭스드라마 <성난 사람들>

자료=넷플릭스

넷플릭스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는 올해 에미상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영화에 오스카상, 음악에 그래미상이 있다면 방송드라마에는 에미상이 있다.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성난 사람들>은 8개부문에 올랐다. 작품, 감독, 각본, 남우주연, 여우주연 등 주요부문을 모두 휩쓸었다.

<성난 사람들>은 한국계 연출가 이성진 감독에 재미교포 스티브 연, 죠셉 리 등 한국계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는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부산, LG전자, 밥솥 같은 한국 지명과 단어는 반가움을 넘어 동질감을 더해준다. 에미상에서 한국계가 두각을 나타낸 건 2022년 <오징어게임> 이후 두번째다.

로드레이지, 질긴 인연의 시작

한국계 대니가 할인마트 계산대 앞에 망설인다. 숯불화로, 일산화탄소 감지기를 반품하기 위해서다. 캐셔는 말한다. “벌써 세번째 반품이예요. 영수증있으세요?” 결국 반품을 하지못하고 터벅터벅 마트를 나온 대니 앞에 하얀색 SUV가 막아선다. 안그래도 화가 나는데 뭐 이런 녀석이 있나. 대니는 하얀색 SUV를 추격한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보복·난폭운전을 하는 로드레이지(Road rage)다. 상대 역시 밀리지 않는다. 알고보니 하얀 색 SUV에는 베트남계 사업가 라우(앨리 윙)이 타고 있다.

자료=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자료=넷플릭스

미국으로 어릴 때 이민온 대니는 건축일을 한다. 돈을 벌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받이에 큰 집을 짓고 부모님, 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실은 이날 그는 자살을 하기 위해 숯을 사러가던 길이었다. 하얀색 SUV에 농락만 당한 대니는 동생 폴에게 말한다. “어떤 자식이 나한테 빵빵 대는 거야. 쫓아가서 혼구멍을 내놨어.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

라우는 자신의 사업체를 대형 마트에 팔려한다. 그 돈을 큰 별장을 사고, 좀 편히 살고 싶다. 예술가인 남편은 무기력하다. 결혼전에는 부모님 모기지를 갚아주고, 결혼해서는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라우는 평생을 주변을 위해 일했다. 자신을 추격하던 SUV를 제대로 엿먹이고 돌아온 라우의 얼굴에는 화로 잔뜩 일그러져 있다. “더 격해지기 전에 심호흡을 하라”는 남편 조니에게 그가 말한다. “2년간 회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오퍼가 없다고 하니 완전 화가 나더라고. 차를 모고 나오는데 왠 남자가(나를 막아섰어)”

성난 사람, 대니와 라우, 두사람의 심리는 똑같다. “뭐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어. 난 진짜 웃는게 지긋지긋해”

아메리칸 드림,그 환상

대니와 라우의 화의 근본은 ‘아메리카 드림’으로 표현되는 ‘성공’이다. 두 사람의 경제적 상황은 다르다. 조니는 여전히 바닥에 가까운 인생에 살고, 라우는 상당한 부를 일군 인생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조금더 높은 곳, 조금더 큰 성공을 원한다. 하지만 성공은 계속해서 커질 수 있을까.

열심히 공사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대니는 마침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큰 집을 짓는다. 잠시 좀 쉬자는 동생 폴에게 대니가 말한다. “8개월간 죽도록 일했지. 하지만 늘어질 때가 아냐 사업을 계속 확장해야지” 동생 폴이 반박한다. “하지만 수확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 좀 늘어져도 돼.”

수확체감의 법칙(Diminishing returns of scale)이란 같은 생산요소를 투입해서 얻는 양은 시간이 지날 수록 감소한다는 법칙이다. 즉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가 한 단위 추가될 때 이로 인해 증가하는 한계생산량은 갈 수록 줄어든다는 뜻이다.

수확체감의 법칙이 경제에 주는 함의

수확체감의 법칙은 경제학 초기 농업이 생산의 핵심이던 시절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에 의해 제안됐다. 데이비드 리카도 등은 자본과 토지의 투입량을 일정하게 하고, 노동 투입량을 증가시키면 생산물 전체는 증가하지만 추가 투입량 1단위에 대한 생산물 증가량은 점차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즉 같은 땅에 같은 비료를 쓰는 상황에서 농부 1명이 일하면 쌀 10가마니를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에 농부 3명을 투입한다고 30가마니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농부 2명을 투입하면 13가마니, 농부 3명을 투입하면 15가마니 씩으로 농부 1인을 투입할 때마다 추가 생산하는 쌀의 양은 감소한다. 이를 경제학자들은 ‘수확이 체감한다’고 표현했다.

수확체감의 법칙을 확대하면 어떤 산업이던지, 심지어 어떤 국가던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이 정체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실제 성숙된 경제구조에서는 똑같은 생산요소를 투입해도 산출량은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는 경향들이 많이 관측된다.

자료=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자료=넷플릭스

수확체감의 법칙은 한계효용(1단위에서 얻는 효용)이 갈 수록 감소한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이루는 기본 개념이 됐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왜 성공을 해도 더 갈망하게 되는 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첫달에 10만원을 벌었다 치자. 이때 느끼는 희열은 대단할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달에도, 세번째달도 10만원을 받으며 3년째 반복된다면 36개월 째 받는 10만원은 거의 희열이 없어진다. 이때는 10만원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야 만족감이 유지될 수 있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성공도 반복되면 만족감이 줄어든다. 때문에 시간일 갈 수록 더큰 성공을 갈망하게 된다. 하지만 영원한 성공이라는게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 큰성공에 대한 집착은 때로 파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쇠고기, 또는 불평불만

폴이 ‘수확체감의 법칙’을 강조하지만 대니는 반박한다. “너희가 모르는게 있어. 이거 다 사라질 수 있어. 건설업은 정신나간 사업이라 예측할 수 없거든!”

요즘 한국사회를 덮친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태를 보면 대니의 말도 일리는 있다. 건설업은 호황기때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불황기때는 한방에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수확체감의 법칙을 생각하지 않은 탐욕은 기업을 더 큰 위기로 몰 수도 있다. 태영건설은 10%이상 수익이 나지않으면 절대수주하지 않는다는 보수적 경영원칙을 갖고 있었지만, 코로나19 시절 PF사업에 욕심을 내면서 손실이 커져 최근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자료=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자료=넷플릭스

영화의 원제 ‘Beef’는 쇠고기라는 뜻과 함께 ‘불만, 불평’이라는 뜻의 속어도 있다. 화난 대니는 “한국 음식에는 주로 쇠고기가 들어간다”고 말한다. Beef의 중의적 의미를 되살린 명장면이다. 한국 사회도 잔뜩 성이 나 있다는 우려를 많이 한다. 이는 종종 ‘묻지마 범죄’로 끝난다. 로드레이지로 시작된 대니와 라우의 질긴 인연은 어디를 향해 달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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