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전자’ 악몽에 “곡소리도 안 나와”…투자 손실 서로 위로하는 채팅방도

이유진 기자

주가 하락에 개미들 한숨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코스피가 장 중 한때 2400선 아래로 떨어진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코스피가 장 중 한때 2400선 아래로 떨어진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대장주’ 삼성전자 반토막에
“주식 거래 앱을 지워버렸다”

서학개미·코인 투자자도 울상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더라”
빚내 투자한 ‘영끌족’ 타격 커

“아홉 시가 되니까 사무실이 조용해지더라고요. 진짜 한숨 소리밖에 안 났어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 김모씨(29)는 17일 오전 9시 증권시장 개장 때의 사무실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김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회사 사람들 대화 주제의 절반이 주식 얘기였는데, 지금은 주식의 ‘주’자만 꺼내도 분위기가 싸해진다”면서 “이제는 곡소리도 안 나오는 것 같다. 점심시간에 보통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데, 요즘은 ‘한 푼이라도 아껴야 된다’며 구내식당으로 다들 몰려간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공포로 이날 국내 주식 ‘대장주’로 꼽히는 삼성전자 주가가 2020년 11월10일 이후 1년7개월여 만에 장중 6만원선 아래로 내려가는 등 하락장이 본격화하면서 ‘동학개미’의 시름이 깊어졌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금리 인상 등 악재까지 겹친 탓에 특히 빚을 내서 투자한 ‘2030 영끌족’의 타격이 크다. 일부 투자자들은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위로방’을 만들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지난해 초부터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했다는 직장인 이모씨(32)는 최근 주식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이씨는 “원래도 ‘장투(장기투자)’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당장 주식을 처분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반토막 난 주가를 보면 속이 상하는 건 마찬가지라 앱을 그냥 지워버렸다”고 했다. 그는 “물가 올랐다고 점심값 1000원, 2000원에 벌벌 떠는데, 당장 ‘물 탈’ 돈도 없다”고 했다. 올 들어 주가가 25% 안팎 떨어진 카카오 주주 A씨(30)는 “1000만원 넘게 손실을 보고 있는데 눈 딱 감고 손절할까 고민”이라며 “내년 초에 전세가 만료돼서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주식에 물린 돈이 큰 데다 대출금리도 오른다고 해서 그 생각만 하면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했다.

해외주식과 가상자산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연준이 전날 0.75%포인트라는 큰 폭의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드러내자 16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2021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주요 지지선인 3만선 아래로 떨어졌다. 가상통화 대장주 비트코인도 이날 미국 증시 급락 여파로 자산 가치를 방어하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2만달러선 붕괴 직전에 놓였다.

테슬라 등 미국 주식을 보유 중이라는 취업준비생 김모씨(26)는 “주식 안 하면 바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솔직히 후회된다”며 “나름 열심히 공부하면서 투자했다고 생각하는데, 취직도 안 되고 경기는 더 나빠진다고 해서 우울하다”고 말했다. 이번 하락장에서 “차 한 대 값을 날렸다”는 코인 투자자 B씨(37)는 “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는 말이 꼭 맞다”며 “루나 사태도 그렇고 가상자산 시장 자체가 붕괴될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오늘부터 파 심어서 재배해 먹고, 찬물 샤워만 하겠다’ ‘업무시간에 일 안 하고 주식했으니 농땡이 친 시간만큼의 연봉을 주식으로 상쇄했다’ 등 최근 상황을 자조하는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일부 투자자들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투자 손실에 대한 극복 방법과 위로의 말을 공유하기도 했다. ‘주식·비트코인 망한 사람들을 위한 방’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분들을 위한 방’ ‘호구 위로방’ 등 다양한 이름의 채팅방이 생겨났다.

한 채팅방에서는 누군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자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야 한다. 하락장이 있으면 상승장도 있는 법이니 너무 절망하지 마라” “나는 과거에 더 큰 돈을 잃어봤는데, 결국엔 죽지 않고 잘 버텨내는 게 중요하더라” 등 위로의 말이 이어졌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 손해를 입고 있는 투자자들은 우울감이나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과거 ‘한강 가자’는 말이 유행어처럼 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SNS를 통해 투자자들끼리 위로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대처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위로방’은 일종의 동맹치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문가들이나 제3자가 하는 말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위로를 주고받는 게 집단치료 중에는 효과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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