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과 '양질' 사이···기재부 ‘예산 브리핑’ 설득력은

안광호 기자

‘복지 축소’ 예산 당위성 강조···“국회 심의 앞두고 주도권 선점 의도”

[주간경향] “(경제위기에서) 재정 정책은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11일(현지시간) 펴낸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이같이 권고했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재정을 풀어 노인과 청년 등 취약계층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권과 정부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지만, 내년 예산안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야당은 취약계층 예산이 줄었다며 ‘패륜 예산’이라고 주장한다. 기재부는 별도 브리핑까지 열어 쟁점 예산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국회의 본격적인 예산안 심의를 앞둔 시점에서 논란을 차단하고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양질 일자리’ 늘리겠다는 기재부

기획재정부는 10월 11일 ‘2023년 예산안 관련 언론관심 사업’ 브리핑을 열었다. 내년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복지 분야 지출을 줄였다는 야당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자리다. 기재부가 해명에 힘을 쏟은 ‘언론관심’ 사업은 노인·청년일자리,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용산 대통령실 이전 등 6~7개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예산이면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집중 공세를 받은 예산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내년 정부지원 노인일자리 규모는 올해보다 더 늘었다. 전체 일자리 수는 88만3000개로 올해(85만4000개)보다 2만9000개 늘어나고, 예산은 720억원 증가한다. 노인일자리는 크게 공공형과 사회서비스·민간 등 시장형으로 나뉜다. 공공형은 쓰레기 줍기, 잡초 뽑기, 금연 구역 감시, 학교 앞 교통 안전지킴이 등 특별한 자격과 기술이 없어도 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다. 하루 3시간씩 월 최대 30시간을 일하면 27만원을 받는다. 지난해 기준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 평균 연령은 75.1세다. 경력을 고려한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서비스형(월 71만원)과 경쟁력 있는 고숙련·고학력 노인들이 주 대상인 민간형(월평균 119만원) 등은 60대 초중반의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고령자들이 주로 참여하는 유형으로, 창업을 지원하거나 이들을 채용한 고용주를 직접 지원한다.

쟁점은 민간·사회서비스형 등 일자리는 소폭 늘었지만, 공공형 노인일자리 수가 올해 60만8000개에서 내년 54만7000개로 6만1000개 줄어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초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직후 공공형 노인일자리 삭감을 두고 ‘패륜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찾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예산을 줄이면 그분들은 폐지를 주우러 길거리로 나서야 한다. 이것은 패륜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기재부의 해명은 여기에 맞춰졌다. 황순관 기재부 복지안전예산심의관은 “노인일자리는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 문제로, 이번에 질 좋은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 중심으로 약 3만개를 늘렸다”고 했다. ‘질’ 낮은 공공형 일자리보다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방문해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등 임원진들과 노인복지 문제 등에 대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방문해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등 임원진들과 노인복지 문제 등에 대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공공형 일자리 도입 취지’ 도외시 지적도

공공형 노인일자리의 효용가치에 대한 해석 차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 재정을 유지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당국의 입장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일자리와 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04년 도입했다. 공공형 일자리가 매년 늘어난 것도 노인빈곤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2025년 20.6%를 기록하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노인빈곤율(43.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5.3%)을 크게 상회하고,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3.6명에 달한다. 안타깝게도 둘 다 모두 OECD 회원국 중 1위다.

전문가들은 공공형 일자리가 저소득·여성 노인의 빈곤 해소에 기여하고, 지역사회 참여를 늘리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은 지난해 11월 재정포럼 ‘고령자 노동시장에서의 노인일자리 사업의 역할’ 보고서에서 “공공형 일자리는 고령자 노동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고용충격을 일부 상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공공형 일자리의 생계를 위한 일자리로서의 역할은 여성과 저숙련 노동자에게서 특히 크게 나타났다”고 적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지난 4월 ‘노인빈곤과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제언’ 보고서에서 “기초연금과 더불어 노인일자리 사업 등 정부의 직접 일자리 사업에 대한 확대를 통해 시장소득이 증가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공공형 일자리를 줄인 것에 대해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위원장은 “공공형 일자리는 대기자가 10만명에 육박하고 평균 17 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때문에 아예 구직이 어렵다고 보고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노인도 많다. 실제 일자리 수요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다는 의미다. ‘단순 노무 형태의 일자리여서 사회적 효용의 가치가 덜 하다’고 보는 것은 이러한 현장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했다. 기재부가 지난 5월 각 부처에 전달한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 계획안 작성 추가 지침’에서 재량지출 예산의 최소 10%를 의무적으로 삭감하라고 요구했는데, 현실과는 무관하게 이 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가 규모를 늘린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의 정책 보완도 요구된다. 민간기업이 은퇴한 고령자 채용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있고, 채용되더라도 저임금에 장기간 노동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연은 같은 보고서에서 “민간기업의 고령 근로자 수요를 업종별·교육수준별로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구직을 희망하는 고령자에 대해 기업 수요에 맞는 직업교육과 매칭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적었다.

취약층의 한축인 청년 예산도 줄었다.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청년이 5년간 720만원을 적립하면 회사가 1200만원, 정부가 1080만원을 보태 총 3000만원의 목돈을 마련해주는 금융상품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대상 업종을 제조업과 건설업으로 제한하고, 5년 3000만원 적립에서 3년 1800만원으로 축소했다. 사업예산도 올해 2750억원에서 내년에는 164억원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입법조사처는 10월 13일 이슈와 논점 보고서에서 “사업성과가 명확하게 나타난 청년공제는 축소가 아니라 확대하거나 현행처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10월 12일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참여연대 주최로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불법 의혹에 대한 국민감사 청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12일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참여연대 주최로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불법 의혹에 대한 국민감사 청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이전 등 예산안 공방 예고

기재부는 이날 ‘이재명표 대표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 예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국비 지원을 종료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역화폐 사업이 지자체 고유 사업인데다, 사업을 이어갈 지자체의 재정여력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내년 지방교부세는 75조3000억원으로 올해와 비교해 10조2000억원 늘어나고,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순세계잉여금이 매년 32조원 이상 발생하고 있다. 안상열 기재부 행정국방예산심의관은 “상품권의 효과는 지자체에 한정되기 때문에 지자체 고유 사업으로 판단한다. 쟁점이 되는 것은 10% 할인을 지자체가 감당할 수 있냐는 것인데, 스스로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이 실무진의 판단이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증액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역화폐 예산은 특히 경기도 국감에서 주목받았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10월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감에서 ‘국비 지원 없이도 지자체들이 교부세 등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기재부 입장에 대해 “(사업 진행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경기도 관계자는 “지방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취득세가 올해 줄면서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1조6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계하고 있고 내년엔 올해보다 경기침체가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국비가 지원되지 않으면 지역화폐 발행량이나 한도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한 소요 비용에 대해서도 별도 설명했다. 안상열 심의관은 “대통령실 집무실 이전과 관련한 496억원, 관저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변경되면서 공사 면적 증가로 발생한 21억원 등을 직접비용(517억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기존에 대통령실 이전 비용으로 발표한 496억원을 포함해 각 부처 예산(1539억원), 합참 이전 비용 등(7980억원) 총 1조700억원 넘게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 심의관은 “나머지 부대 비용이 조금 있는데 이 비용들은 대통령실 이전과 직접 관련 사업으로 보기 힘들고 무관한 비용들”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이전 예산과 관련해선 시민단체도 검증에 가세했다. 참여연대는 10월 12일 대통령실·국방부·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에 대한 국민감사를 청구하면서 ‘대통령실·관저의 이전 의사결정 과정 직권남용 등 부패행위 및 불법 여부’를 비롯한 4가지를 감사 청구 이유로 거론했다.

국회의 본격적인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열린 이번 기재부의 브리핑은 논란 확산을 차단하고 야당의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예년과 달리 이번 국감에서는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한 상임위원들의 질의와 비판이 유독 많았다. 정부가 경제위기 국면에서 복지 예산을 줄인 것과 대통령실 이전 비용과 관련한 의혹들이 주목을 받았다. 국감 이후 예결위가 본격 가동되면 야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고, 여와 야, 정부와 야당 간의 공방도 치열해질 것이다. 기재부의 이번 언론 관심 예산 브리핑도 야당의 공세를 미리 차단하고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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