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패권 경쟁 가속···'등 터지지 않을' 전략은

안광호 기자

시진핑 3연임 확정·한국의 칩4 참여로 불확실성 커져

[주간경향] 미국과 중국의 첨단기술 패권 전쟁이 날로 격해지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첨단기술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미국의 잇따른 수출통제 조치를 두고 중국의 반발이 크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확정으로 양국 간 대립이 더 심화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미중 경쟁과 갈등 구도에서 한국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한국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대응 전략은 뭘까.

미중 기술패권 경쟁 가속···'등 터지지 않을' 전략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 가속···'등 터지지 않을' 전략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 가속화

미국은 중국을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0월 12일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은) 국제질서를 재형성할 수 있는 경제, 외교, 군사, 기술적인 능력과 함께 그럴 의도도 가진 유일한 경쟁자이며, 효율적인 경쟁을 통해 중국을 경쟁에서 능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정부는 앞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우뚝 섬)를 견제하려는 수출통제 조치도 내놨다. 미국 상무부가 10월 7일 내놓은 이 조치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 확보를 막고자 미국기업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이다. 특히 중국 내 생산시설이 중국 기업 소유인 경우 ‘거부 추정 원칙(수출 승인 거부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의미)’이 적용돼 수출이 전면 금지되고, 외국 기업이 소유한 생산시설의 경우에는 개별 심사로 결정된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군사적 용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최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미가 크다. 국내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내 공장을 두고 반도체를 생산 중이다. 중국 공장을 업그레이드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1년간 건별 허가를 받지 않아도 장비를 수입할 수 있도록 유예 조치를 받은 상태다.

미국의 이 같은 조치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반응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10월 23일(현지시간) “TSMC가 미국의 대중국 수출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인 비런 테크놀로지의 첨단 반도체 위탁생산을 멈춘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비런 테크놀로지 생산품이 미국의 수출규제 대상에 해당하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우선적으로 제품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는 미국은 중국 견제와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위한 ‘칩4’(팹4·Fab4) 구성 등 동맹국들과의 연합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봉쇄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23일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확정 이후 중국의 이른바 ‘과학기술 자강론’이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시 주석은 10월 16일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실현을 가속해 관건적 핵심기술 공방전에서 결연히 승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발언에서 ‘투쟁’이란 단어는 17차례나 등장했다. 미국과의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월 6일(현지시간) 뉴욕주 포킵시의 정보기술(IT) 기업 IBM 연구센터를 찾아 연설하고 있다. IBM은 이날 반도체 제조와 연구 개발을 위해 허드슨밸리 지역에 10년간 200억달러(28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포킵시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월 6일(현지시간) 뉴욕주 포킵시의 정보기술(IT) 기업 IBM 연구센터를 찾아 연설하고 있다. IBM은 이날 반도체 제조와 연구 개발을 위해 허드슨밸리 지역에 10년간 200억달러(28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포킵시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배제 동맹’ 칩4의 함의

중국은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에 반발하면서 동시에 칩4로 대변되는 ‘중국 배제 동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공산이 크다. 특히 한국이 미국 중심의 칩4에 참여하는 상황을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월 18일 보도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칩4 동맹 가입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4개국이 긴밀히 협의하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윤정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 정부는 팹4로 상징되는 중국 배제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중대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자국 내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중신궈지·세계 5위)와 2위 파운드리 업체인 화훙반도체(6위) 등을 보유한 시스템 반도체 강국이어서 미국의 제재에도 일부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기업이 선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기술력과 점유율이 취약하다. 한국의 칩4 참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1993년부터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매출 기준) 1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D램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2.70%, SK하이닉스가 28.60%, 마이크론(미국)이 22.80%를 기록했다.

중국이 한국의 칩4 참여를 두고 보복에 나설 수도 있다. 반도체 원자재 공급망을 지렛대 삼아 중국에 배타적인 공급망에 참여하는 국가나 기업을 대상으로 수출규제 등 압박에 나설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핵심광물 최대 수입국은 중국이었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비중은 리튬 58%, 희토류 54%, 마그네슘 85% 등으로 한국의 대중 수입 비중이 75% 이상인 것만 수백여종에 달한다.

때문에 칩4 참여를 대외변수와 불확실성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금지 조치, 중국의 보복 조치 등과 같이 한국의 취약한 부문을 위협하는 상황을 예방하는 수단으로 써야 한다. 한국은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생산 역량,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 반도체 기업과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지만 팹리스(반도체 제조공정 중 설계와 개발 전문 회사)와 극자외선(EUV)·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같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종) 역량 부족, 인재 부족 등의 약점도 상존한다. 즉 이들 영역은 단기간에 추격하거나 월등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대외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망 교란 등 경제안보 이슈가 불거지면 칩4라는 협의체를 우산 삼아 시간을 벌거나 협력을 구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18일 베이징에서 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2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18일 베이징에서 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2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1년 유예’ 이후 대비책 마련 중요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낀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민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7일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장 경계현 사장은 평택 캠퍼스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과 기업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부 쪽에)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중국에 먼저 이해를 구하고 미국과 협상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 주요 공급체인 PC와 스마트폰 등 수요가 줄면서 시장 자체가 위축돼 있는데, 미중 갈등과 한국의 칩4 참여 등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은 1280억달러였다. 이중 중국 수출이 502억달러로, 전체의 약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포함하면 60% 수준에 이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0% 이상이다.

당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출통제 대상에서 1년간 유예되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지만 1년 뒤에도 계속 적용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중국에 장기간 투자를 했고 규모 또한 미국보다 훨씬 크다. 10월 24일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1997년부터 2020년까지 삼성전자가 중국에 세운 공장시설이나 판매법인 등 투자 규모는 170억6000만달러인 반면 미국 투자 금액은 38억달러에 그친다. 삼성전자는 1996년 중국 쑤저우에 D램 후공정 시설을 구축한 데 이어 2006년에는 상하이에 반도체·디스플레이 판매법인을 설립했다. 2012년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건설하며 투자를 확대해왔다. SK하이닉스는 미국에는 공장이 없고 중국에만 249억달러를 투자했다. 2005년 중국 우시에 D램 공장을 설립해 2019년 생산라인과 후공정 확장 공사를 진행했다. 앞서 2013년에는 중국 충칭에 낸드 후공정 시설을 구축했고, 2018년에는 아날로그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건설에도 착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에서 1년 유예 조치를 받은 것은 정부가 국내 반도체 업계의 우려를 미국 정부에 전달해 결과적으로 수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유예기간 연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이다. 미중 간 경쟁과 대립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를 상정하고 유예기간 내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반도체 방패’ 만들어야

지난 10월 12일 세종국책연구단지에서 ‘기술패권 경쟁 시대의 경제안보 전략’이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기획재정부 등이 글로벌 첨단기술 경쟁 속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주제 발표에 나선 김양희 대구대 교수는 최근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상황을 ‘경제와 안보의 불가분 시대 도래’로 진단했다. 그는 “반도체 지원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중국희토그룹 출범 등의 경제안보 조치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개별 현안에 단편적·일회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을 수립해 원칙적이고 일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형 반도체 방패’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반도체 방패론은 대만의 TSMC와 같이 반도체 기술 우위를 가진 생산거점을 자국 내 보유하고 있으면, 외부의 위협에 직면하더라도 미국과 서방이 대만의 안보에 적극 개입해 보호해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를 한국 상황에 대입하자는 의미다. 윤정현 위원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포함해 중국이나 외부 세력의 공급망 교란이나 제재 위협이 가해질 때를 가정해보자.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그들의 위협이 단순히 한국 산업 위협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시킬 수 있도록 단기간에 대체가 불가능한 반도체 우위 품목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 시장점유율에서 TSMC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파운드리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도 중요하지만 이미 앞서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 특히 초미세 공정에서도 ‘초격차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53.4%로 1위, 삼성전자가 16.5%로 2위다. 윤정현 위원은 “단순한 기술 초격차가 아닌 생산량, 안정적 수율의 초격차가 중요하다”며 “이것이 실질적 시장 지배력과 대체 불가능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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