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교육은 없는데 일단 공격투자
투자자 절반 이상이 ‘과거 수익률’ 고려
미래 수익률 보장 않는데도 막연한 기대
행동경제학에선 이를 ‘행태적 편의’ 정의
금융교육받더라도 ‘오류’ 범할 수 있어
“영·미처럼 투자·금융 자문업 활성화를”
전통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효용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결정을 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합리적인 금융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금융사고 피해도 줄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인간이 합리적인 금융의사결정을 하고 금융복지를 누리기 위해 금융이해력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금융이해력 향상=합리적인 금융의사결정’의 전제가 틀렸다면? 즉 인간이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다면 아무리 금융교육을 많이 받아도 실제 의사결정은 배운 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 과거 수익률이 미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돈을 잘 벌었으니 앞으로도 수익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이 지난해 11월 성인 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펀드에 투자할 때 해당 펀드나 자산운용사의 ‘과거’ 수익률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행동경제학은 이런 비합리적 행동을 유발하는 심리적 요인을 ‘행태적 편의’라고 한다. 펀드 투자 사례는 유사성이나 스테레오타입에 근거해 판단하는 ‘대표성 편의’ 유형에 속한다.
자신의 예측이나 평가가 정확하다고 생각하거나 투자능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믿는 ‘과잉확신’, 손실이 난 주식은 오래 보유하고 이익이 난 주식은 빨리 매도하는 ‘처분효과’, 다양한 선택지와 정보가 있는데도 주의를 끌거나 활용하기 쉬운 것만 선택하는 ‘제한된 주의’ 유형도 있다.
국내에서 행동경제학이 지적하는 문제점이 있는 금융소비자는 전체의 약 14.4%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소비자의 오류는 쉽게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며, 설령 금융상품이 위험하다는 정보가 공개되어도 이를 무시하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금융이해력을 높이는 교육 못지않게 인간의 행태적 편의를 고려한 정책이나 제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보편화한 ‘신용상담사’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국내의 신용상담사는 연체에 빠진 채무자의 채무조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영국 등의 신용상담사는 개인의 금융활동 전반에 조언과 자문을 해 주고 금융교육, 금융상담, 부채관리 등을 한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은 “국내 금융소비자의 금융 지식은 해외와 비교하면 낮은 편이 아니다”라면서 “기본적인 금융 지식은 필요하지만 모두가 ‘슈퍼개미’가 될 수도 없는 만큼 전문가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개인채무자가 부족한 전문성과 협상력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하는 ‘채무조정교섭업’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일반화한 업종이고 국내에는 비영리단체가 관련 서비스를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19년 10월 ‘소비자신용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채무조정교섭업을 논의 안건에 포함했으나 부처 간 논의 과정에서 이견에 부딪혀 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2017년과 2021년에 각각 제도화한 독립투자자문업자(IFA) 제도와 금융상품자문업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투자자보호재단의 2019년 조사에서 독립투자자문업자 제도를 이용할 의사가 없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7.3%였다. 이들은 ‘신뢰가 가지 않아서’(39.7%), ‘새로 생긴 제도라 불안정할 것 같아서’(19.7%), ‘금융회사 소속 직원보다 (독립투자자문업자의) 전문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10.6%)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처럼 자문업자의 역량을 규정하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투자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단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