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와 와규, 요리법 달라도 맛은 좋아…한·일 ‘기업가치 제고’ 차이 나도 비슷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지난해 700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했다. 오고 가는 사람이 늘다 보니 일식은 이제 일상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먹는 현지 음식은 한국식 일본 요리와 다르다. 고기요리는 더욱 그렇다. 한국의 고기요리는 주로 불판에 구어 소금에 찍어 먹는 반면 일본의 고기요리는 고기 본연보다 간장 소스의 향이 가득하다. 스키야키는 간장과 설탕으로 만든 다래 소스에 소고기와 야채를 넣어 자작하게 졸여 먹는다. 한국의 불고기도 양념에 재워 먹지만, 스키야키의 ‘단짠’ 맛에 비교하기 힘들다.

일본 증시가 뜨겁다. 닛케이225는 1989년 12월29일 고점 38957을 극복하고, 4만도 넘어섰었다. 일본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4배이지만, 한국 증시의 PBR은 여전히 1배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일본 증시의 강세 배경은 두 가지다. 엔화 약세와 디플레이션 탈출로 대변되는 우호적 매크로 환경이 출발점이지만, 일본 증시 상승에 불을 지른 모멘텀은 2023년 발표한 도쿄증권거래소의 기업가치 재고 방안이다. 한국 정부도 이를 성공 사례로 인지하고 정책으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2월26일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1월에 금융위원회가 발표했던 개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발표 이후 자동차와 은행, 지주사 주가가 출렁였지만 3월 들어 다시 이들 기업의 주가는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두 나라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방향은 유사하다. PBR이 낮은 기업들이 저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기업가치 우수기업에 대한 시장평가 및 투자를 유도하는 지원책과 지수를 개발하는 등 얼핏 보면 비슷한 듯하다. 마치 동일한 고기요리를 내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념의 강도가 다르다. 무엇보다 일본의 기업가치 제고 방안은 저평가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할 수 있다는 강제조항이 담겨 있다. 한국은 기업 자율에 맡겼다. 자율과 강제의 차이만큼 정책 실효성에서 차이가 크다. 시장의 비판을 의식한 정책당국은 5월로 앞당겨진 가이드라인에 밸류업과 관련한 벌칙 내용을 추가할 거라는 의견도 내비쳤지만, 일본의 정책 강도에 미치지는 못한다. 기준 미달 ‘좀비기업’들의 상장폐지 절차를 단축하는 방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업 전반에 걸쳐 의무조항을 밀어붙이기에는 기업이 지닌 체력 자체가 다르다. 무엇보다 일본 기업에 비하면 주주환원 확대 여력이 크지 않다. 한국의 순현금을 보유한 저평가 기업 비중은 34%로 일본의 71%에 비해 현저히 낮다.

증시로 향한 수급 강도도 다르다. 일본 서점에서 경제·투자 관련 코너에 가면 ‘NISA’라는 단어가 가득하다. ‘NISA’는 ‘Nippon Individual Savings Account’의 약자로 이미 한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Nippon이란 명사만 빼면, ISA라는 동일 명칭이다. 2024년 1월 도입된 신NISA의 열풍이 불면서 2024년 일본 증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투자 한도를 크게 늘리고 비과세 기간이 5년에서 무기한으로 늘어난 점이 인기를 끄는 배경이다.

ISA란 동일한 상품을 인지하고 있는 한국 정책당국 역시 일본 사례를 도입하려 한다. 납입 한도를 키우고, 배당·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 한도도 확대하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기존 ISA 계좌는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 이상인 고액 자산가는 가입이 불가능했지만, 재편안에서는 가능해진다. 비과세는 아니더라도 종합과세가 아닌 14% 세율로 분리과세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계획일 뿐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ISA 납입금과 비과세 한도를 늘리는 내용이 담긴 조세특례법 개정안은 처리되지 않았다. ISA 비과세 확대는 곧 부자감세라는 정치권의 시각이 발목을 잡고 있다. 가계의 투자 여력도 차이가 크다. 일본 가계의 현금성 자산 비중은 35%인 데 비해, 한국은 15%에 불과하다.

고기(저평가)를 어떻게 요리할지(정책)에 있어 차이가 여전하다. 일본은 양념이 강하다. 기업의 체력이 강하다 보니 벌칙이 있고, 가계의 현금 여력도 크다 보니 정책 효과도 뚜렷하다. 반면, 한국은 기업이나 가계나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 한우와 와규의 차이만큼 요리법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맛있다는 것은 같다. 기업이 잘되어 돈을 벌고, 번 돈을 재투자하고 남은 현금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에게 돌려주면 된다. 두 나라의 정책 속도에 차이가 있더라도 내놓은 요리가 맛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을 거라 보는 이유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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