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세요…앞으로 우리가 하겠습니다" 로봇에 투자하는 완성차 업체

고영득 기자

로봇에 공들이는 완성차 업체…미래 모빌리티 ‘무한 경쟁’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과 직립 보행 로봇 ‘아틀라스’가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와 마주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6월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완료하면서 로봇 시장 선점을 위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 제공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과 직립 보행 로봇 ‘아틀라스’가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와 마주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6월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완료하면서 로봇 시장 선점을 위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 제공

테슬라 머스크 “우리는 로봇 회사”
현대차 ‘도심항공 사업’ 활용 준비
포드·GM·도요타 등도 적극 투자

시장 규모, 자율주행보다 더 커져
연평균 32% 성장 ‘2025년 209조’
산업 위한 제도·법률 정비 ‘숙제’

키 172㎝, 몸무게 56㎏. 날씬하면서도 다부진 체형이다. 눈과 코, 입은 보이지 않는다.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 같지만, 어디까지나 ‘로봇’이다. 영화 속 태권V나 건담, 월E, 범블비처럼 강철 옷을 입은 로봇들이 이질감을 가질 만한 존재다. 정체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내년에 시제품으로 선보이겠다고 공언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테슬라봇’이다.

머스크는 지난 8월 ‘인공지능(AI) 데이’에서 테슬라봇을 공개했다. 실체가 아닌 이미지였다. 머스크는 테슬라 차량의 자율주행 기술과 슈퍼컴퓨터 시스템을 탑재한 테슬라봇이 위험하면서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들을 대신 해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 차량은 완전 자율주행 컴퓨터가 달린, 어느 정도 지각이 있는 바퀴 달린 로봇이기 때문에 테슬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봇 회사”라고 강조했다. 투자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쇼맨십’이란 비판이 따랐다. 그래도 머스크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왜 로봇에 촉각을 곤두세우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완성차 업체들의 로봇 각축전

자동차 제조사들의 로봇 시장 진출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아시모’는 2000년 일본 자동차 업체 혼다가 내놓은 2족 보행 로봇이다. 혼다는 2019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는 AI 기술로 최적의 경로를 찾아 움직이는 ‘패스봇’을 선보였다. 도요타는 2017년 원격 조작 휴머노이드 로봇 ‘T-HR3’에 이어 2019년 도쿄모터쇼에서 자율주행차와 고객 사이를 오가며 물품을 전달하는 로봇 ‘마이크로 팔레트’를 공개했다.

미국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도 CES에서 배송용 로봇을 선보였고, GM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로봇 우주비행사 ‘로보노트2’를 공동 개발하기도 했다. 중국의 전기차 스타트업인 샤오펑은 최근 카메라와 라이다(빛으로 주변 물체와 거리를 감지하는 장치)로 환경을 식별하고 운행 경로를 탐색하는 로봇 말 ‘샤오바이룽’의 시제품을 공개했다.

2018년 로봇 전담팀을 꾸린 현대차그룹도 관련 기술을 쌓으면서 전통적인 자동차 업체에서 벗어나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본격적으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 건 지난 6월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하면서다. 거래 당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가치는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로 평가됐다. 정의선 회장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이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력이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목적기반모빌리티(PBV)와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로봇들이 재난 구호, 치안, 보건 등 공공 영역에서 활약해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신차를 개발하며 닦아온 역량이 로봇 기획과 제작, 운영에 그대로 녹아들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의 로봇 시장 진출은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현대차그룹의 장점인 글로벌 양산 능력과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기술력과 결합하면 로봇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이 반할 만하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개를 닮은 4족 보행 로봇 ‘스폿’과 사람처럼 두 발로 움직이는 ‘아틀라스’, 창고·물류 시설에 특화된 ‘스트레치’를 보유하고 있다. 스폿은 이미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 투입됐다. 현대차그룹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첫 번째 협력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기존 스폿에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이 개발한 ‘AI 프로세싱 서비스 유닛’을 접목해 기능을 강화했다. 스폿은 출입구의 개폐를 확인하고 고온 위험, 외부인 무단침입 등을 감지한다. 또 AI 기반의 내비게이션을 활용해 정해진 영역을 자율적으로 순찰한다.

지난해 6월 출시된 스폿은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처음 상용화한 로봇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4족 보행 로봇 중 가장 뛰어난 기능을 자랑한다. 가격은 약 9000만원으로 수백대가 산업 현장에서 활약 중이다. 몸체 카메라를 이용해 지형을 인지하며 균형을 잡고 지형에 맞춰 보폭을 조절할 수 있다. 계단도 손쉽게 오른다.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할 수 있고 바퀴를 장착한 로봇보다 이동성이 뛰어나 화학 공장, 원자력 시설 등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위험 구역을 점검하는 데 유용하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2016년 공개한 직립 보행 로봇 아틀라스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인정받고 있다. 150㎝의 신장과 80㎏의 무게로 초당 1.5m 속도로 이동한다. 장애물을 가볍게 뛰어넘고 물구나무를 서는가 하면 체조 기술의 하나인 백플립(뒤로 공중제비)도 완벽한 착지로 소화한다. 지난 6월엔 방탄소년단과 함께 춤추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아틀라스는 연구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아직은 상용화 계획이 없다.

포클레인처럼 생긴 스트레치는 23㎏에 달하는 상자를 시간당 800개 옮길 수 있는 로봇이다. 내년 하반기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스트레치는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기존 로봇과 달리 스스로 학습하며 여러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한다.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0일 온라인 미디어 간담회에서 “매년 5000억개 이상의 상자가 사람들에 의해 수동으로 옮겨진다”며 “끊임없는 반복과 과중한 부하로 창고 업무 중 부상이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작업인데 스트레치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폿이나 스트레치는 전기차·수소차와 도심항공모빌리티 같은 신기술을 융합한 친환경 물류·배송 사업을 추진 중인 현대차그룹의 전략에도 안성맞춤인 로봇이다.

테슬라봇

테슬라봇

■일자리가 줄어든다?

머스크는 차와 로봇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준 영화 <트랜스포머>를 의식한 듯, 테슬라봇의 개발 코드명을 ‘옵티머스’로 정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들어가는 라이다와 카메라 등 각종 센서, AI를 활용한 사물 지각 능력은 자율주행차나 도심항공모빌리티에 꼭 필요한 기술들이다. 이에 완성차 업체들은 사업 영역을 무한대로 넓혀줄 로봇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시장도 밝다. 2017년 245억달러(26조7000억원) 수준이던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연평균 32%의 성장률을 보여 2025년엔 1772억달러(약 209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자율주행차, 드론 등 로봇 기술이 적용된 다른 산업 제품을 제외한 서비스·물류·제조 로봇만을 따진 규모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이 추산한 2030년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600억달러)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일각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와 관련해 자동차 및 로봇 제조사들은 다른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고 로봇이 단순 노동이나 사고 위험이 큰 작업을 대신 해줄 것이라고 낙관한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달 13일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국회 모빌리티 포럼’ 세미나에 참석해 “사람이 해야 할 어려운 일을 로봇이 대체할 것이고 그 로봇을 유지하고 정비하는 데 많은 소프트웨어 전문가와 엔지니어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일자리 감소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의원들이 함께한 이날 세미나에서는 로봇 스폿이 등장해 기량을 뽐내기도 했다. 정 회장이 대기업 총수로는 이례적으로 국회 포럼에 참석한 것을 두고 로봇 산업 성장에 필요한 제도 정비, 재정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행 도로교통법 등을 따른다면 스폿은 물론 음식배달 로봇조차 도로와 보행로를 다닐 수 없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로봇공학과 교수는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전환되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며 “(정치권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세계를 선도할 좋은 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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