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10년 새 2배 치솟는데 정부·지자체 ‘관리 뒷전’

류인하 기자

작년 151만가구 넘어…지자체 4곳 중 1곳만 조례 제정

전담 인력 없고 예산 부족해 철거 난항

정부가 나서 관리체계 개선을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는 한낮에도 사람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오랜 세월 이곳에 살아온 주민들은 대부분 노인이 됐고,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집은 ‘빈집’으로 방치됐다. 가끔 자손들이 빈집을 찾기는 하지만 주말에 잠깐 머물 뿐이다. 팔릴 만한 집이 아니어서 사려는 사람도 없다.

“(한 집에) 몇 식구씩 살다가 자손들 떠나면 노인들 대부분이 혼자니 그렇게 계시다 돌아가시면 끝이에요.”

동산면에서 20년 넘게 ‘동남상회’를 운영해온 A씨는 지난 1일 “우리 슈퍼를 찾는 사람들은 강릉 가는 여행객이 전부”라고 말했다. 동남상회는 동산면에 있는 유일한 상점이다. 주민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다보니 슈퍼까지 물건을 사러 오지도 않는다.

“어르신들은 ‘이동슈퍼(생필품을 싣고 집집마다 방문하는 트럭)’를 많이 쓰시죠.”

빈집, 10년 새 2배 치솟는데 정부·지자체 ‘관리 뒷전’

과거 3곳이나 있었던 초등학교는 현재 1곳밖에 남지 않았다. 학생 수는 380명 남짓이다. 가장 가까운 중학교는 학생과 교사의 비율이 1 대 1이다. 12명 학생을 교사 11명이 가르친다.

A씨는 “여기가 서울과 가까운 데다 강릉, 홍천이 멀지 않다보니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전부 시내로 나간다”면서 “어린아이들을 못 본 지도 꽤 됐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은 2019년 기준 한국전력 사용량에 따른 빈집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매월 사용량이 최근 12개월 이상 10Kwh 이하인 상태로 지속되면 빈집으로 추정한다. 동산면은 10Kwh 이하 전력사용량 기준으로 빈집 비율이 17.36%에 달한다. 나머지 2~5위는 전남·전북이다. 청년이 떠나고, 노인만 남은 지방의 농어촌 지역은 노인 1명이 숨지면 빈집 1곳이 늘어난다.

‘빈집’ 전국 1위 동산면

통계청 주택총조사 집계결과에 따르면 2020년 전국의 빈집은 151만1306가구다. 불과 10년 사이 빈집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2010년 전국의 빈집은 79만3848가구였다. 12개월 이상 비어있어 사실상 주택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집 역시 2005년 19만929가구에서 2020년 38만7326가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빈집을 관리해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빈집 관련 예산을 배정하고,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조례제정이 필수적이지만 전국 지자체의 4곳 중 1곳이 조례 등 정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관련 예산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1일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전국 288개 기초지자체(시·군·구) 가운데 54개 지역(24%)이 빈집 관련 조례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응답하지 않은 지자체까지 포함하면 27%가 관련 조례가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지역 가운데 180개 지역(80%)은 올해 빈집 실태조사를 완료했거나 실시 중인 것으로 나타나 법으로 실태조사 의무화를 강제한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다. 다만 조사에 따른 빈집 정비계획 수립률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152개(66.7%) 지역만 빈집 정비계획 수립을 완료했거나 올해 수립 예정이다. 결국 나머지 76개(33.3%) 지역은 빈집 현황 파악을 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현황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 지자체가 빈집 전담인력을 배치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빈집관리 업무가 부수업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천 미추홀구와 경북 포항시 정도만 별도의 전담조직이 있었다. 주택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빈집관리까지 맡거나, 민원 등 일반행정을 담당하는 부서가 빈집관리 업무을 맡는 등 지자체별로 관리조직이 제각각이었다. 교통, 건축, 인허가, 도시재생 등 여러 부서가 빈집 관련 업무를 나눠서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조사를 맡은 국토연구원은 “아직까지 많은 지역에서 빈집 관련 업무가 독자적인 사무영역으로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세종시는 빈집 업무를 맡은 직원이 빈집 업무 외 평균 6개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경남 3.4개, 충북 2.9개, 경북 2.7개 순이었다.

전국에서 빈집이 가장 많은 전남·전북은 직원 1인당 각각 2.3개, 1.6개의 별도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빈집, 10년 새 2배 치솟는데 정부·지자체 ‘관리 뒷전’

빈집 조례조차 없는 지자체 수두룩

빈집 관련 예산 역시 적었다. 정부의 지원 역시 전무한 곳이 많았다. 2022년 기준 시·군·구가 빈집 관련 사업에 투입하는 예산은 연평균 2억8000만원에 불과했다. 이 중 철거비용 예산은 3.5% 정도가 배당됐는데 이는 당장 철거가 시급한 4등급 빈집 철거비용의 20.9%에 불과하다. 즉 한 해 배정된 예산으로는 4등급 빈집 5개 중 1개만 철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통상 빈집 한 채를 철거하는 데 2500만원 정도 비용이 들어간다.

빈집 관련 예산은 광주(5억4950만원)와 전북(5억1541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대전(6000만원)이 가장 적었다(시·군·구 평균값 환산).

충북 증평 수현마을에 있는 빈집.

충북 증평 수현마을에 있는 빈집.

빈집 관리를 지자체에만 맡겨두는 것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빈집 관련 시·군·구 예산 중 국비지원 비율은 평균 4% 수준으로 매우 낮다. 이마저도 도시재생공모사업, 농어촌생활환경정비사업, 도시재생기금사업 등 개별 지자체가 공모해 지원받는 방식으로 일관된 예산 확보가 가능하지 않다. 2021년 기준 지방정부 일반 재정 세입예산의 26%가 중앙정부 보조금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가 빈집 관련 예산배정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빈집 정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국비지원사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국토연구원은 “지역의 빈집관리 정책역량을 약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이원화된 빈집관리체계, 계획과 집행사업 간 연계부족, 재정 및 인력에 대한 지원대책 부족 등 빈집관리 정책 자체가 갖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시·군·구 자치사무 일변도로 규정된 현행 빈집 관리체계를 개선해 중앙정부가 지방의 정책 집행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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