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勞 철저히 배제… 현실성 없는 대책만 내놔

특별취재팀

(3부) 대안을 찾아, 그리고 도발적 제안들… ⑤ 사회적 대화체를 만들자

경향신문이 제안하는 다섯번째 대안은 사회적 대화체를 만드는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우리사회는 위기극복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탈퇴하면서 대표성이 훼손됐다.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를 납득시키기보다는 단기성과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노사정위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화체 기능은 상실했다. 노동계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 들어 대화복원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대화단절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큰 주제가 버겁다면 고용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부터 시작하면 된다. 대화의 손은 정부가 먼저 내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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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12일 내놓은 ‘국가고용전략 2020’의 내용을 접한 노동계는 경악했다.

파견,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확산을 우려하는 여론은 외면한 채 파견업종과 비정규직 사용을 늘렸기 때문이다. ‘질은 상관없이 일자리만 많이 만들면 된다’는 식의 정부대책을 두고 ‘밀실고용전략’(한국노총), ‘비정규직의 만국박람회라도 개최하려는 거냐’(진보신당 논평)는 비판이 쏟아졌다.

노동계가 분노한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고용 문제 해결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작 국가 고용전략을 마련하는 데 당사자인 노동계는 철저히 배제했다. 시쳇말로 ‘왕따’도 이런 왕따는 없다. 민주노총은 물론 한나라당과 정책공조를 해왔던 한국노총도 테이블에 앉지 못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기획정책국장은 “정부에 몇차례 노동계 참여를 요구했지만 끝내 무시당했다”며 “심지어 노사정위원회조차 정책입안 과정에서 소외됐다”고 말했다. 임동수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고용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인 만큼 정부가 참여요청을 했다면 의견을 피력할 용의가 있었지만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말했다.

갈수록 악화되는 고용문제를 풀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당사자인 노동계와 대화·협력 없이 만들어진 대책이 생산현장에서 통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는 ‘식물위원회’나 다름없다. 외환위기로 노사정의 대화 테이블이 마련된 지 13년이 됐지만 갈등과 불신의 골은 더 깊어졌다.

3자간의 상호불신 역사는 노사정 대화의 첫 단추를 채우기도 전에 시작됐다. 외환위기 이후 1998년 1월15일 노사정위원회가 구성됐고, 그해 2월6일 교원·공무원노조를 합법화하는 대신 정리해고와 파견근로를 법제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사회협약이 타결됐다. 하지만 정부는 민주노총이 대의원 추인 절차를 밟기도 전에 사회협약을 발표해버렸다. 곧바로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사회협약을 부결시켰고, 당시 배석범 위원장 직무대행 등 지도부는 총사퇴했다. 최영기 전 노동연구원장(경기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협약이 노동계의 추인을 밟기 전에 정부가 미리 기정사실화한 것이 문제”라면서 “추인과정에서 합의가 뒤집힐 수 있다며 조바심을 낸 것이 노·정 불신의 싹을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노동계가 진통 끝에 수용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는 신속히 법제화된 반면 부당노동행위 처벌, 교원·공무원노조 합법화 등은 지연됐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돌이켜보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도 노사정위원회를 위기극복이나 구조조정을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하려 했던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노사대화의 기대감이 컸던 참여정부 때에도 마찬가지다. 2003년 9월 노동부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 일을 꼬이게 했다.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장은 “노동부의 발표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참여정부의 당초 구상과 다른 내용이어서 의문이 많았다”며 “노사정위원회가 정상화되면 주도권을 상실할 것을 노동부가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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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골이 깊어지면서 노동계 일각에선 노사정위 참여를 ‘투항주의’로 몰아붙이는 강경파가 득세했다. 노동계에 비교적 ‘우호’적인 참여정부 하에서 노사관계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며 허송세월했고 이러는 사이 비정규직, 파견근로 등 불안정 노동은 급속히 확산됐다. 당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사정 복귀를 추진했지만 2005년 2월 대의원 대회가 폭력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후 민주노총 지도부의 리더십은 급속히 약화됐다.

대화주체들의 대표성 논란도 의미있는 대화를 어렵게 한다. 사용자단체의 경우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걸림돌이다. 최영기 전 원장은 “사회적 대화가 잘되는 나라들은 사용자단체의 리더십이 강해 합의내용이 산업 전체에 효력을 미치는 구조”라며 “반면 국내에서는 정책생산 능력과 발언권이 강한 삼성이 노사문제에서 비켜나 있어 대화의 효율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경우 노조조직률이 10%대에 불과한 데다 산별체제로 전환을 했지만 ‘무늬만 산별’이라는 약점이 지적된다. 박명준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동아시아학부 전임연구원은 “기업별 체제의 잔재가 남은 상황에서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국가, 산업, 지역 노동시장의 고용문제와 관련한 관심을 끌어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긴박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던 98년과 달리 정부와 사용자가 대화테이블을 만들 만한 이유가 딱히 없고, 노동운동 세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노동계에 대한 여론의 관심과 지지도 예전같지 않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노사정 대화가 필요하다는 당위론은 늘 있지만 노사간 힘의 균형이 무너져 있어 정부나 사용자가 대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업과 정부가 노동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현 국면에서는 대화가 진행되기 어렵다”면서도 “노동운동이 고용문제의 사회의제화에 성공하면 정부와 기업도 압력을 느껴 대화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서의동·권재현·김지환(경제부), 전병역(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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