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노사 대화채널인 사회경제협의회 건물에는 회의공간이 여러 곳 있다.
이곳에서 크고 작은 업종 내 노사현안들이 수시로 논의된다. 노사정 중앙이 쓰는 2층 공간은 합의서를 주고받고 사진을 찍는 요식행위의 공간일 뿐 주요 사안들은 업종별 협의에서 대부분 타결된다. 허리가 그만큼 튼튼하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의 노사정위원회는 ‘여의도 대화’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중앙의 합의가 여의도만 벗어나면 효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성공 모델이 필요하다.” 노사정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노사정 대화가 복원되기 위해선 크고 작은 분야에서 성공 경험을 많이 쌓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실상 가동중단 상태인 노사정 대화가 이른 시일 내 복원되기 쉽지 않은 만큼 업종, 지역 차원에서 중위 수준의 노사정 간 대화를 활성화해 물꼬를 트자는 것이다.
몇몇 업종·지역별 대화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들도 있었다. 보건의료노조는 2004년 첫 산별교섭을 성사시킨 뒤 2007년 정규직이 임금인상분의 30%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비용으로 쓰도록 하는 ‘의미있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노사정 합의가 아니라 산별노사 간 합의였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노사의 자율적인 합의로 해법을 도출한 사례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참여정부 때부터 의료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의료 등 공공성이 큰 산업의 경우 고용의제가 복지도 확충하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어 노조가 역량을 모으고 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유럽처럼 중앙차원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엔 노사문화나 정부의 포용력이 부족한 상태”라며 “형편이 괜찮은 업종에서 산별차원의 대화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2 지방선거 이후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노사 간 대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 경남도본부는 해마다 경상남도와 함께 ‘민생민주경남회의’를 통해 고용대책 등을 협의하고 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 이후엔 대화체를 민주도정협의회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경남도본부는 지방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내년 경남도 예산에 비정규직 지원센터 설립예산 2억원, 보호자 없는 병원을 위한 예산 12억원을 반영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성대 민주노총 경남도본부 사무처장은 “그간 도를 상대로 청년일자리 확충, 간병인·간호사 확충, 돌봄노동자 교통수당 인상,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제기해왔다”며 “도정협의회가 꾸려지면 야 4당과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야권 단일후보가 당선된 경기 고양시 등에서도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지역 노사민정위원회 구성이 추진되고 있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는 “중앙차원의 여건도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양 갖추기에 급급한 대화 채널을 만드는 것보다 지역·업종별 대화를 활성화해 자연스럽게 중앙의 대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