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사용금지’ 계도기간은 ‘사용허가’···직접 찾아가보니

강한들 기자    김기범 기자
서울 강동구 한 편의점에 지난 21일 일회용 비닐봉지 판매·사용이 금지된다는 것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해당 편의점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강한들 기자

서울 강동구 한 편의점에 지난 21일 일회용 비닐봉지 판매·사용이 금지된다는 것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해당 편의점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강한들 기자

“계도기간이니까 아직 비닐봉지 사용해도 돼요. 하나 필요하세요?”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됐는데 비닐봉지를 아직 사용하고 있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식당, 카페, 편의점 등 대부분 업소 주인들은 환경부가 운영 중인 1년간의 계도기간을 사실상 일회용품 사용을 허용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4일 환경부가 일회용품을 사용 금지한 이후 식당, 카페, 편의점 등에서 금지된 일회용품이 어느 정도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말부터 22일까지 서울 시내 식당, 카페 등 ‘식품접객업’ 업소 12곳과 편의점 28곳 등 ‘종합소매업’ 업소를 방문해 실태를 살펴봤다. 구로구·강동구·동대문구·마포구·서대문구·성동구·용산구·종로구·중구 등에 있는 편의점 28곳 등 ‘종합소매업’ 업소 가운데 일회용 봉지를 제공하지 않는 곳은 5곳뿐이었다. 기존에 일회용품을 사용했던 식당, 카페 등 ‘식품접객업’ 업소 12곳은 전과 마찬가지로 일회용 컵, 빨대 등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환경부는 지난해 연말 식당·카페 등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를 편의점 등 종합소매업에서는 비닐봉지를 ‘사용 금지’하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제도 시행 시점인 지난달 24일을 약 3주 앞두고 환경부는 1년간 ‘계도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계도기간에 대해 ‘참여형 계도’라고 설명하면서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계도기간 부여에 대해 사실상 일회용품 사용 금지가 1년 유예된 것이라며 비판했다.

5대 편의점 28곳 중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점포 23곳

경향신문이 직접 살펴본 서울 강동구·동대문구·마포구·성동구·용산구·중구·종로구 일대의 편의점 28곳 중 ‘금지’된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곳은 5곳에 불과했다.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있는 편의점에는 5대 편의점(GS25, CU, 이마트24, 미니스톱, 세븐일레븐) 모두가 포함돼 있었다.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에서 손님에게 제공한 비닐봉지. 김기범 기자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에서 손님에게 제공한 비닐봉지. 김기범 기자

제도 시행을 앞두고 일부 편의점 본사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 발주 자체를 중단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1년간 계도기간을 시행한다고 발표한 이후, 다시 일회용 비닐봉지 주문이 가능해졌다. 강동구의 한 편의점에서는 배송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일회용 비닐봉지 상자가 바닥에 쌓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계도 기간을 시행하는 것이 알려진 이후 다시 주문이 가능한 상태가 됐다”며 “제도 시행 후 일주일 정도는 공급량을 제한했다가 현재는 예전처럼 필요한 만큼 주문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 편의점 바닥에 아직 뜯지 않은 일회용 비닐봉지가 배송돼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21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 편의점 바닥에 아직 뜯지 않은 일회용 비닐봉지가 배송돼 있다. 강한들 기자

아직 일회용 봉지를 사용 중인 편의점들은 대부분 생분해수지를 사용한 ‘친환경봉지’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생분해수지를 사용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역시 금지하고 있다. 분해 조건이 일반적인 토양이 아니라 약 60도 온도가 유지되는 토양에서 180일은 있어야 하는 등 까다롭기 때문이다.

종량제 봉지·종이봉투만 사용하면서 일회용품 사용 금지에 동참하고 있는 편의점들은 고객의 항의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강동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C 점주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이용자들에게 항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해당 편의점에는 환경부가 배포한 일회용품 금지 기준이 붙어 있었다.

커피 2개 시켰는데, 컵 4개가 나온 곳도··· “제도 유예하며 시장과 소비자에 폐기물 발생 책임 떠넘겨”

지난 19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음료 두 잔을 시켰으나 일회용컵 4개가 나왔다. 강한들 기자

지난 19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음료 두 잔을 시켰으나 일회용컵 4개가 나왔다. 강한들 기자

제도 시행 전과 다르지 않게 일회용 종이컵·플라스틱 컵·플라스틱 빨대·젓는 막대 등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는 식당과 카페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는 커피 두 잔을 플라스틱 일회용 컵 1개, 종이컵 1개를 각각 홀더를 대신하는 종이컵에 담아 주는 사례도 있었다. 구로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손님들이 달라고 하지도 않은 빨대를 인원 수대로 제공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도 시행 전 종이컵을 사용했던 식당 중에서 다회용컵으로 바꾼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서울 구로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손님들에게 제공한 일회용 빨대. 김기범 기자

서울 구로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손님들에게 제공한 일회용 빨대. 김기범 기자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던 강동구 한 식당에서는 지난해부터 다회용 컵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시민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는 탓에 계속 종이컵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환경부는 지난 3월 설명자료에서 “일반 식당에서 다회용 쇠젓가락, 숟가락, 밥그릇을 사용하듯이 다회용 컵도 위생적으로 씻어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편의점·카페·식당 점주들은 법이 바뀌어도 금지된 일회용품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계도기간’이라서 사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마포구의 한 편의점 점주는 “계도기간이니까 일회용 봉지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기자에게 “하나 필요하냐”고 묻기도 했다. 강동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E 점주는 “손님들에게 종량제 봉지, 종이봉투를 먼저 권하지만, 이용자들이 정 원하지 않으면 일회용 봉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사용되던 종이컵. 김기범 기자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사용되던 종이컵. 김기범 기자

22일 기자가 찾은 한 패스트푸드 업체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한다며 플라스틱 빨대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빨대 없이 마실 수 있는 뚜껑을 사용 중”이라며 플라스틱 뚜껑을 제공했다. 플라스틱 뚜껑은 환경부가 사용 금지한 일회용품에 해당하지 않는다. 강한들 기자 사진 크게보기

22일 기자가 찾은 한 패스트푸드 업체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한다며 플라스틱 빨대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빨대 없이 마실 수 있는 뚜껑을 사용 중”이라며 플라스틱 뚜껑을 제공했다. 플라스틱 뚜껑은 환경부가 사용 금지한 일회용품에 해당하지 않는다. 강한들 기자

환경단체들은 계도기간이 사실상 제도 유예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해 환경부가 계도기간을 부여한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1년 전부터 법을 바꾸고 준비해왔던 정책이고, 기업들도 전환 준비를 해오던 과정이었는데 굳이 1년의 계도기간을 둔 것은 사실상 일회용품 감량 정책을 포기한 것”이라며 “일회용품에 적용되는 규제를 계속 유예하며 시장과 소비자에게 폐기물 발생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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