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공약 설악산 케이블카, 국책연구기관 등 검토기관 “사업 불가”

김기범 기자

환경연 “케이블카 부정적 영향 커 부적절”

양양군, 보완 전보다 훼손 큰 계획서 제출

생태원·환경과학원·기상과학원 등도 ‘부적절’

장관 “의견 최대한 반영”에 “백지화해야”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국책연구기관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으로 인한 환경 훼손이 지나치게 심각해 사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사실이 확인됐다. 환경부가 보완을 요구했음에도 사업자인 강원 양양군이 오히려 훼손 정도를 키우는 사업계획을 제출하면서 환경영향 검토를 맡은 전문기관들은 일제히 부정적 의견을 제출했다. 환경단체들은 한화진 환경부장관이 공언한 대로 환경부가 전문기관 검토 의견을 반영해 허가 여부를 결정할 경우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은 백지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국무조정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으로부터 제출받은 설악산 케이블카 관련 환경영양평가 재보완서에 대한 검토의견을 보면 연구원은 “자연 원형이 최우선적으로 유지·보전되어야 하는 공간에 자연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큰 삭도(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됨”이라는 의견을 보냈다.

환경영향평가 검토에 있어 국내에서 가장 전문성이 높은 연구기관인 환경연구원(이하 연구원)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개발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힌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설악산 케이블카가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환경연구원과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등의 환경영향평가 검토의견은 주요 개발사업에서 환경부의 허가 여부 결정에 관한 주요 참고자료가 된다. 2019년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해 ‘부동의’ 의견을 내면서 사업을 불허할 때도 전문기관들의 ‘부적절 의견이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다. 한화진 환경부장관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 등에서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진행 중으로 전문기관 검토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방향을 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 검토 대상이 된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는 사업자 양양군이 지난해말 환경부에 제출한 것이다. 환경부는 2021년 4월 양양군에 케이블카 관련 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해 제출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포유류 산양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포유류 산양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연구원은 구체적으로 검토의견에서 사업자가 제출한 보전대책으로는 최우선 보전지역인 설악산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산양 서식지에 시설물이 설치될 경우 산양 서식 및 번식에 큰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환경영향평가 내용이 여러 차례 보완을 거치고도 여전히 미흡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식물 조사가 일부 계절에만 이뤄지면서 봄에 개화하는 식물들에 대한 조사가 누락되었다는 내용 등이다. 최근 경향신문 보도로 드러난 지형변화지수가 더 커지는 점에 대해서도 연구원은 “백두대간 핵심구역 훼손이 과도하게 발생할 것이고, 재보완 전보다 지형훼손이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연구원 외에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기상과학원, 생태원, 환경과학원, 국립공원공단 등이 제출한 검토의견에도 연구원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생태계 영향과 안전성 등에 관한 부정적 내용들이 다수 포함됐다. 먼저 기상과학원은 풍속 자료 관련해 제대로 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초속 수십m의 강풍이 수시로 부는 설악산의 사업예정지에서 양양군이 제출한 풍속 관련 자료로는 승객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에서 확인된 산양의 배설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에서 확인된 산양의 배설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환경과학원은 사업으로 인한 산양의 이동로 단절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상부정류장은 산양서식지 핵심구역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산양 서식지를 피해야 할 경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은 현재보다 수백m가량 낮은 위치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동식물 관련 전문기관인 생태원은 법정보호종에 대한 피해 저감 방안이 미흡해 한층 강화된 보호대책이 필요하며, 상부정류장 및 산책로의 규모 축소 및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립공원공단은 훼손면적이 증가될 우려가 높으므로 훼손 면적 저감 방안이 필요하며 야생동물 서식지가 훼손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특히 검토기관들이 지적한 내용 중 다수는 2015년 8월 국립공원위원회가 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하면서 제시한 조건들과 맞닿아 있다. 당시 국립공원위는 양양군에 산양 등 멸종위기종에 대한 보호대책 수립, 풍속 영향에 대한 안전대책 보완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상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이처럼 전문기관들이 제출한 부정적인 의견이 환경부가 법정기한인 다음달 3일까지 통보해야 하는 환경영향평가 협의 의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업자는 물론 환경단체, 전문가 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환경부는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면 30일 내에 동의, 부동의 등 협의 의견을 통보해야 하며 법정기한 연장은 15일에 한해 한 차례 가능하다. 늦어도 3월 중순에는 환경부의 설악산 케이블카 관련 최종 허가 여부가 판가름 나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환경부는 지방청인 원주지방환경청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사업자인 양양군에 사업 추진이 용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확약서를 양양군·강원도 등에 써주고, 환경영향평가 관련 문서들을 국회 요구에도 비공개하면서 비판을 받아왔다. 환경부는 다른 개발사업 때와는 달리 이번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서와 관련해서는 전문기관들의 검토의견을 국회 요구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사업자와 결탁해 케이블카 사업을 기정사실화해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 추진을 공약한 것도 환경단체들의 의심을 키운 요인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진행되도록 환경부에 확인하겠다고 김진태 강원도지사에게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은주 의원은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에 대한 전문기관들의 검토의견을 종합하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저감할 수 없기 때문에 케이블카 설치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라며 “최우선 보전지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것이 전문기관의 중론인 만큼, 환경부는 부동의 결정을 내리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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