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 두고 ‘과거 환경부’와 싸우는 ‘현재 환경부’

강한들 기자    김기범 기자
강원 양양군이 추진 중인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일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공

강원 양양군이 추진 중인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일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공

“국립공원위원회 부대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재보완이 필요했다.”

환경부는 2021년 강원 양양군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 요구 취소’를 청구하자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2년이 채 되지 않은 지난 27일. 환경부는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에 대해 ‘조건부 동의(협의)’를 내줬다.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환경부의 견해는 정권에 따라 180도 바뀌었다.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에서 확인된 산양의 배설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에서 확인된 산양의 배설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과거 환경부’ VS ‘현재 환경부’

‘과거 환경부’와 ‘현재 환경부’간 의견이 가장 크게 갈리는 지점은 2015년 국립공원위원회가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국립공원 현상변경안에 대해 조건부 동의를 내주면서 요구한 조건을 양양군이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에서 충족했는지다.

이번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 협의를 맡은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양양군 사업계획이 국립공원위가 제시했던 조건을 만족했다고 설명한다. 김정환 원주청장은 지난 27일 기자와 통화에서 “(국립공원위 조건이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에서) 충족이 됐다고 봤다. (조건부 협의 의견을 통해) 추가적인 보완 대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환경부는 달랐다. 원주청이 2021년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제출했던 답변서에는 “(보완서에서) 국립공원위원회 부대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이 사건 평가서를 검토한 결과 부대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이 상태로 사업이 시행될 경우에는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당시 원주청은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국립공원위가 내건 조건인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상부정류장 주변 식물보호대책, 탐방로 회피대책 등’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명시했다. 이어 “사업예정지의 동·식물상, 지형 등 환경현황에 대한 조사 및 그에 따른 영향예측이 미흡”하며 “환경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호·저감방안이 적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전문기관들은 ‘과거 환경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번 재보완서에 대해 한국환경연구원 등 전문기관들은 대체로 양양군이 탐방로 회피 대책 강화, 멸종위기 산양 보호대책 수립, 시설 안전대책 보완 등에서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환경영향평가서의 일부 내용과 전문기관들의 검토의견 등은 양양군의 사업계획이 재보완하기 이전보다 오히려 더 설악산을 훼손한다고 본다.

전문기관들은 대체로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 ‘산양 서식지 핵심 구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양군의 ‘산양 행동권’에 대한 재보완서상의 추론에 ‘과학적 합리성’이 결여됐다고 봤다. 보존 가치가 높은 희귀 식물에 대한 조사가 부실할 뿐 아니라 상부 정류장, 중간 지주 지점에 아고산성 수목이 다수 포함됐지만, 훼손 대책이 제시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의 전체 사업 면적 토공량이 보완서보다 1.32배 더 많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원주지방환경청장은 구두로만 부대조건을 만족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각 조건을 어떻게 만족했는지 국립공원위원회에 보고하고, 동시에 국민에 공개해야 한다”며 “비공개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서도 사회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포유류 산양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포유류 산양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한화진 환경부 장관 “국립공원 생태계 훼손되면 인간 생존마저 위협”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허가를 내준 다음 날인 28일 서울신문 지면에는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기고가 실렸다. 한 장관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미래, 국립공원’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국립공원은) 생태계 보전과 생물 다양성 증진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생태계의 ‘보고’”라며 “이곳의 생태계가 훼손되면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받는다”라고 적었다.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은 이날 논평에서 “‘한화진 환경부’가 전날 결정한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설치사업 ‘조건부 협의’ 결정이 바로 국립공원에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남기는 결정”이라며 “장관이 불과 하루 만에 국립공원의 가치와 의미를 논한 것은 후안무치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 28일자 지면에 실린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미래, 국립공원’이라는 제목의 기고. 서울신문 갈무리

서울신문 28일자 지면에 실린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미래, 국립공원’이라는 제목의 기고. 서울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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